[타이베이, 점심 <1>]
자칭 타칭 미식의 나라인 대만 사람들에게 가끔 물어보곤 합니다. '해외에 있다 오면 무슨 음식이 제일 먹고 싶니?'
이 질문의 요지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아닙니다. 어찌보면 대만인들의 전형적인 입맛 기준으로 가장 보편적인 음식이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이지요. '대만의 대표 음식이 머야?'라는 질문과는 약간 다릅니다. 대표 음식을 물어보면 아마 화려한 음식들이 나올 터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왠지 대만 사람들의 일상 속의 소울 푸드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우리도 해외여행가서 현지 음식이 물릴 때쯤 '한국 돌아가자마자 000부터 먹을거야!'라 '다짐'해 보지 않나요? 그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일 수도 있지만 가장 한국적인, 한국인의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에 대한 희구 아니겠습니까. 김치일 수도, 된장찌개일 수도 있습니다. 시원한 물냉면일 수도, 해장국일 수도 있겠네요. 기본적으로 입맛 돌게 하는 음식입니다.
아 제가 너무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음식만 나열한 것일까요? 젊은 분들은 다른 음식일 수도 있을 것 같고 어찌 보면 이런 게 없을 수도 있겠네요. 요즘엔 해외에서도 사실 한국 음식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곳들이 많을 터이니까요.
표본이 많진 않았지만 귀국 후 첫번째로 먹고 싶은 음식으로 얘기한 것들이 생각보다 다양하진 않더군요. 그렇죠, 근데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우리도 같은 질문에 대한 음식은 꽤 몇가지로 추려질 것 같아요. 감성과 문화를 공유한 사람들끼리의 소울 푸드는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5~6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육면, 탕칭차이, 전주나이차, 루러우판, 떠우화, 딴삥 등등이요. 모두 고개를 주억거릴 만한 대만하면 떠오르는 음식들입니다. 화려한 음식은 아니지만 대만인의 일상 속에서 가장 접하기 쉬운 음식들이지요. 나머지 음식에 대해서는 차차 얘기하리고 하고 하여간 그래서 오늘 점심을 정했습니다. 우육면과 탕칭차이로요.
대만의 랜드마크 101 근처 빌딩에 사무실이 있습니다. 점심은 사무실에서 나와 10여분 걸어가면 나오는 먹자골목에서 해결합니다. 우싱제(吳興街)라는 거리입니다. 그곳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우육면 집이 있습니다.
대만에서 지내다 보면 각자 자기만의 우육면집이 하나 정도는 생기게 마련입니다. 각 집마다 우육면 맛이나 특징이 다르니까요. 김치찌개집마다 김치찌개 맛이 다른 것처럼요. 제 우육면집은 여기입니다. 다팡우육면(大方牛肋麵). 대만계 미국인인 엔비디아 CEO, 젠슨 황(黃仁勳)이 대만에 와서 들렀다는 우육면집(牛耳精緻麵館)도 가봤지만 제 입맛에는 다팡이 최고네요.
우육면은 보통 2가지로 나뉩니다. 홍샤오(紅燒)우육면과 칭둔(清燉)우육면 이렇게요. 비주얼면에서 쉽게 구별됩니다. 홍샤오우육면은 짙은 갈색과 붉은 색 사이 어딘가의 색깔입니다. 칭둔우육면은 맑은 국물이고요. 맛도 꽤 다릅니다. 홍샤오는 팔각, 계피 등의 향신료 맛이 가득하지요. 칭둔은 담백하고 깔끔한 갈비탕 국물 맛입니다. 대만에서 일반적인 우육면하면 보통 홍샤오우육면을 얘기합니다.
다팡우육면집의 대표 우육면은 칭둔, 즉 맑은 국물의 우육면입니다. 메뉴판에 이미 '우리 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맑은 우육면((招牌精燉牛肉麵)'이라고 강조돼 있네요. 식당에 들어가면, 아니 입구 밖에서부터 꽤 고소한 소고기 국물 향이 퍼져 있습니다. 자극적인 냄새는 아니지만 입맛은 자극합니다. 크지 않은 식당인데 점심에는 길 밖에 기다리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숨겨져 있는 로컬 맛집이죠.
제가 이 집의 우육면을 좋아하는 이유가 몇가지 있는데 우선 국물이 한국인 입맛에 그만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갈비탕 국물 바로 그맛입니다. 고소합니다. 국물에 살짝 떠있는 기름기도 진득한 텁텁한 기름기가 아니라 감칠맛 그대로의 맑은 기름입니다.
면발은 어쩜 이리 탱글탱글할까요. 대만 면집들의 면발이야 우리나라 면발보다 쫄깃쫄깃하긴 한데 이 집의 면발은 대만에서 먹어본 어떤 면발보다도 탱탱합니다. 대만에서는 이러한 식감을 QQ로 표현하는데 딱 그 표현이 맞습니다.
사실 이 식당 이름은 그냥 우육면집이라고 돼 있진 않습니다. 정확히 번역하자면 '소갈비면집'이에요. 그 이유가 사실 여기에 있습니다. 우육면에는 보통 소고기가 꽤 크게 몇 덩어리 함께 나옵니다. 이 집 우육면에 담겨 나오는 고기는 소갈비입니다. 소갈비 근막이 붙어 있는 부위인데요. 소갈비 식감이 아주 쫀득거립니다. 그렇다고 질긴 게 아니에요. 한입 베어물면 육즙과 국물 향이 함께 어우러집니다. 적당한 지방기가 풍미를 더합니다. 고기 결도 살아있습니다.
보통 평범한 우육면집의 고기는 솔직히 실망스러운 데가 많습니다. 아니 유명한 우육면 식당이라 해도 탕 안에 들어가 있는 고기가 만족스러운 곳이 많지 않았습니다. 모르겠어요. 그게 대만사람들이 선호하는 고기 식감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질긴 곳도 많았고 뭉턱뭉턱 크기로 들어가 있는 고기가 텁텁해서, 고기 좋아하는 제가 안먹고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이집의 우육면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한가지 더 있습니다. 탕안에 들어가 있는 채소에요. 우리로 치면 상추잎 같은 야채가 들어가 있습니다. 국물에 들어가 있는데도 채소 본연의 아삭아삭한 식감이 여전합니다. 야채 특유의 향과 국물 향이 함께 베어 나오고요.
사실 그래서 우육면과 함께 꼭 함께 시키는 음식이 2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바로 데친 채소, 탕칭차이(湯青菜)입니다. 대만인들이 해외여행 갔다 오면 먹고 싶다는 음식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아주 일반적인 대만 음식입니다. 이 집의 탕칭차이도 일품입니다. 국물에 들어가 있는데도 식감이 여전하기에 믿고 시킵니다.
식당마다 데치는 채소 종류는 다양합니다. 상추, 청경채, 시금치 등등이요. 이집에서는 상추를 데치는 것 같아요. 상추를 데친 다음에 따듯한 육수를 약간 적셔서 내옵니다. 짜지 않은 육수 맛에 아삭아삭함이 살아있기에 곁들여 나오는 반찬으로 시키는데 사실 나오자마자 이것먼저 먹으며 식욕을 돋굽니다.
그다음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는 바로 만두에요. 물론 개인마다 좋아하는 만두 종류는 다르죠. 지극히 제 개인적인 판단 기준에 따르면 이 집 만두는 소위 '미쳤어요.' 기계로 밀가루를 쳐대는 게 아니라 손으로 만드는 손만두임을 강조하는데요. 딱 2가지가 있습니다. 양배추 만두와 부추 만두에요. 전 양배추 만두를 좋아히지만 어느 것 주문해도 후회하진 않을 맛입니다.
이 집 만두는 주문해서 바로 나왔을 때 먹는 것보다 약 5분 정도 이후 먹는 게 가장 좋은 시점입니다. 좀 식은 다음 먹는 게 훨씬 맛있어요. 적당히 식으면 만두피와 속 식감이 훨씬 더 쫀득하고 아삭합니다. 그 식감은 정말 훌륭합니다. 양념도 적당해서 간장을 찍어먹을 필요가 없어요. 우육면 한 그릇을 다 먹고 나서도 만두를 10개 정도는 더 먹게 됩니다. 분명 배부른데 손이 계속 가요.
이외에 이 집 메뉴판에 있는 어떤 것도 주문해서 실패한 적은 없습니다. 비빔면은 우육면 대신 간혹 주문하는 매력있는 면요리입니다. 조림말린두부도 좋습니다. 피단과 순두부, 오이무침, 말린두부채, 미역줄거리 반찬도 자꾸 손이 가는 음식입니다.
다시 우육면 얘기로 돌아와 볼까요. 우육면이 대만의 대표 흔한 일상 음식이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대만의 근현대 역사와 함께 시작된 것이니 생각보다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중국 대륙에서 공산당에 패한 국민당군이 1949년 대만으로 이동했는데 당시 대만으로 넘어온 군인들이 본토에서 먹던 음식 레시피에 대만 특유의 풍미를 합쳐 오늘날의 대만 우육면이 만들어졌다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중국에서 넘어온 국민당군인들이 만든 음식이 대만 우육면이라는 설이 유력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쓰촨식 우육면'이라고 합니다. 대만 남부 가오슝의 강산이란 지역에서 쓰촨식 우육면이 생겼는데 이는 강산에 공군 기지가 있던 데 기인합니다. 강산 공군 기지에는 쓰촨 지역에서 넘어온 공군 군인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고향의 풍미를 그리워해 고향의 맛을 더한 우육면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쓰촨식 우육면은 대만 음식이지 중국 대륙의 쓰촨 지방 음식이 아니라고 합니다.
1949년 이전에 대만에는 우육면이 보편적인 음식이 아니라는 점은 대만인들이 소고기를 금기시하는 풍습이 있던 데서 연원을 찾고 있습니다. 아예 먹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청나라 시기 자료에 따르면 대만에도 소도살장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소를 사적으로 도살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법령이 있었는데 이는 대만에서 소를 잡아 식용했다는 반증이겠지요.
하지만 그만큼 소고기가 널리 식용화가 되진 않았다고 해석하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이는 대만이 농경사회였기에 농경문화에서 소가 차지하는 중요성에 근거할 터이지요. 소는 농사를 짓는데 중요한 노동력을 제공해 주었고 가족과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와 연관되어 대만에는 '소고기와 개고기를 먹지 않으면 명예와 성공을 얻을 수 있고 먹으면 지옥에 간다'는 속담도 있다고 하네요. 아마 농경사회에서 소를 보호하기 위한 속담 장치였겠지요.
종교적으로도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대만인들이 믿는 도교에는 계율이 불교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4가지를 먹지 않는다는 계율이 있습니다. 그 4가지는 소고기, 개고기, 숭어, 기러기입니다. 첫번째로 언급된 것이 소고기인데 이를 강조하기 위해 '우도경(牛圖經)이라는 그림책을 만들어 먹지 말라는 계율을 전파했습니다. 이렇게 도교에서 소를 먹지 않는 데는 노자가 험준한 관문을 통과할 때 도움을 준 게 소였고 이를 기리기 위해 먹지 않게 됐다는군요.
이렇다 보니 1949년 이전에는 소고기를 많이 먹진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육면 또한 대만에서 근현대 역사 이전에 존재하던 음식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오늘날엔 우육면 대회가 있을 정도로 대만에서 우육면은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그 대회가 '타이베이국제우육면축제'입니다. 2005년부터 시작했는데 올해로 21회네요. 우승한 우육면 식당 앞에는 자랑스레 상패를 걸어두더라구요.
대만의 대표 컵라면 또한 우육면 컵라면입니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의 이름은 만한대찬(滿漢大餐). 우육면답게 고기가 뭉턱하게 큰 녀석들이 몇 덩이 담겨 있습니다. 만한대찬이란 이름은 아무래도 만한전석(滿漢全席)에서 따 왔을 터. 만한전석이란 청나라 연회요리로 만주족 요리와 한족 요리를 섞어 100가지 이상의 각종 요리를 내오는 것으로 중국에서 가장 화려한 요리라 하면 만한전석이라 표현하곤 합니다. 가장 심플한 패스트푸드인 컵라면에 만한대찬이란 이름을 붙이다니, 우육면에 대한 성찬일까요.
그래서 그런지 우육면을 점심으로 식당에서 나오는 길, 만한전석 음식을 먹은 양 뿌듯합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는 입가심으로 세븐일레븐에 들릅니다. 일종의 식사후 통과의례입니다. 세븐 커피가 나름 일품입니다.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콩을 이용한다는 얘기도 있네요. 회사 동료와 항상 이렇게 커피를 마십니다. 그 친구는 아아 특대로 전 아아 중간 크기로. 더운 여름을 이렇게 점심을 뿌듯하게 먹으며 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