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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세아 Dec 13. 2019

부족한 엄마가 되기 싫어서 오늘도 선택을 한다

한글도 안 뗀 아이를 데리고 일 년이나 여행을 떠나도 될까?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서 내년에 국제학교에 입학할 초등학생을 데리고 온 엄마를 우연히 만났다. 아이는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를 한다고 들었다. 아이는 너무 대견하고, 그 아이의 엄마는 존경스러웠다.

 그에 비에 일 년 뒤면 학교에 들어갈 내 딸은 한글은 겨우 가나다를 읽고, 하나 더 큰 수를 배우고 있다. 그럼에도 후회와 불안함은 없다. 왜 나는 이런 딸을 데리고 초등학교 입학 준비 대신 세계일년살이를 택했을까?   




완벽한 엄마는 바라지도 않는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엄마라는 나의 자리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회사에서 일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눈치를 배우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일찍 승진을 했던 것처럼, 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돋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최소한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눕지도 자지도 않고 온몸을 비틀어 짜내며 그 여린 목소리로 이유모를 울음을 그치지 않을 때부터, 무엇인가 잘못 돼었음을 느꼈다. 울음소리가 똑같은 것 같아도,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엄마는 안다는데, 나는 아무리 들어도 구분해내지 못했으니까.


  내 스스로는 부족한 사람이어도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왔고 그렇게 사는 건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런데 엄마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 엄마는 조금이라도 부족한 사람이면 안되었다.

 그건 밤새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한숨도 못 잤던 몇 달을 견디지 못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졌던 그때, 그래도 이유식은 유기농 재료를 사다가 엄마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내 주위의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깨달았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를 탓할 시간도 없었다. 그때 우리는 젊은 신혼부부였고 당장 내가 집을 나가 돈을 벌지 않으면 분유값보다 모자란 수입이 들어오시기였다.

 나는 복직을 선택했고, 아이는 대신 키워줄 것도 아닌 남이 뭐라고 하든 간에 주문한 이유식을 먹으며 컸다.


그러나 이유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 마음이 아팠던 일은 생후 만 6개월, 그러니까 혼자서는 앉지도 못하는 내 목숨과도 같은 아이가 하루 9시간을 꼬박 어린이집에 있다 사실이었다.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어느 날 부여된 엄마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한 명의 인격체를 길러내기 위하여 아무리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것 아무것도 을 거라고 느꼈던 것이 말이다.


 아이를 키우며 내린 모든 결정은, 모두 처음 해보는 선택이었다. 어떻게 해야 훌륭하게 자라는지, 어떠한 경험치도 없는 나는 몸이 두 개라도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육아서적을 읽고 자녀교육을 들으며,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안정애착을 위하여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아이가 아무리 짜증을 내도 절대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이성적으로 단호하게 훈육했고, 나를 위해선 일 년에 미용실 한번 못 가고 옷 한 벌 못 살 정도로 쓰면서 오로지 아이를 위해 돈을 벌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노력했어도 아이가 커가면 커 갈수록 완벽한 엄마는 될 수 없었다. 아니 나는 누가 봐도 너무도 부족한 엄마였다. 남부럽지 않게 모든 것을 지원해주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내 탓이 됐다. 유치원에 가도록 기저귀를 못 떼는 것도 일하는 엄마 탓, 반에서 혼자만 이름을 못 쓰는 것도 바쁜 엄마 탓이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엄마로 다시 태어난 나는, 다른 워킹맘들에게는 힘들지 않냐며 잘하고 있다고 응원하곤 했다.

사실 아이를 키우면서 생활비를 번다는 것은, 잘 해내던 잘 해내지 않던 그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 스스로에게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잘 되지 않다.

남에게는 어떤 말을 들어도 상처 받지 않았던 나지만, 퇴근하고 허겁지겁 달려간 어린이집에서 삐진 얼굴로 한참을 혼자 놀았다고 말하는 딸을 보면서 내 가슴속에는 나를 향한 자책으로 시퍼렇게 멍이 들어갔다.   


 그러면서 나는 항상 고민했다. 무엇이 최선일까.  

아이가 원하는 것과 사회적으로 부모의 욕심으로써 아이에게 주는 것은 너무도 달라, 자기가 입고 있는 패딩의 가치가 얼마인지 아이는 전혀 알지 못한다. 나는 나와 아이가 함께 하지 못한 귀중한 시간의 가치를 아이도 모르는 곳에 쓰고 싶지 않았다. 간단하게 말해 아이를 위한 내 희생과 고통은 고작 그런 물건들로 대체될 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새 옷과 새 장난감 대신 내가 아이를 위해서 가장 간절하게 준비하고자 했던 것은 집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오롯이 아이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내 에너지가 닿는 데까지는 애착관계를 위해 썼고, 나머지 시간도 순전히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놀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길었던 선택의 과정에서, 내가 부족한 엄마로서 아이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아이의 정서를 살피는데 최선을 다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아이로 하여금 본인이 스스로 행복을 느낄 줄 알며, 그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학원과 학습지는 하지 않았는데,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바라본 아이의 성향으로 볼 때 활동적인 딸아이는 학습하는 것을 너무 힘들어했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고 하는데 내 아이에게는 그때가 오지 않았구나 생각하며  그저 월령에 맞게 성장하는지만 바라보았다. 아이가 친구를 보며 가게 해달라고 조르는 발레와 수영만 아이가 하고 싶은 만큼 배웠을 뿐이다.

그래서 결국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주변의 시선에 굴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는 결국 일곱 살이 다 돼서도 글을 모는 아이가 됐다.


 그러나 내 아이는 글을 읽는 대신, 알록달록한 그림을 그리고, 한 편의 동화를 창작해서 남에게 들려줄 수 있으며,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그 상황과 후회를 동반한 본인의 복잡한 마음을 설명할 줄 안다. 아는 친구가 아무도 없는 새로운 유치원에 가서도 곧잘 어울려 놀고, 새로운 놀이 방식을 제안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기대하지 않은 부분까지 더 잘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아이를 평가하는 존재가 아니라 응원하는 존재기 때문에 나는 그저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고 있다. 한글은 세계일년살이를 하는 동안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천천히 가르칠 생각이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엄마가 되기 싫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기준에서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다.

 그래서 선택한 세계일년살이는 앞으로의 일 년간 지낼 다양한 나라들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아이가 겪게 해주는 새로운 경험이다.

 긴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이에게 힘든 순간들이 닥쳐와 그게 전부 같을 때, 세상은 너무도 넓고 너는 어디로 가서든지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니까 지금 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괴로운 일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좌절하거나 우울감에 빠지지 않도록, 평생을 간직할 마음의 힘을 길러주고 싶다. 그리고 다양한 나라의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언어는 두려움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수단임을, 교육이 아닌 몸으로 가르쳐주고 싶다.


내가 애를 두고 일을 하러 다닐 때 수많은 말을 했던 사람들처럼 이번에도 누군가는 아이를 걱정하며 엄마가 어떻게 그러냐고 나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한창 중요한 시기에 무슨 엄마가 그렇게 하냐고.


그러나 아마도 괜찮을 거다. 그들이 살아오면서 느꼈던 인생의 테두리 안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아이에게 내손으로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왔던 것처럼, 지금도 나는 아이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있고 내가 내리는 결정은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고려한 선택이 틀림이 없다고 믿고 싶다.


어떤 아이에게 어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무슨 훌륭한 어른이 되냐고 그냥 아무나 되라고. 맞는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완벽한 엄마는 아니지만, 아이가 자랐을 때 나를 그저 그런 엄마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그걸로 되었다.





처음 보는 아이와도 금방 친해지는 활달한 성격의 일곱 살 아이, 로숲이는 세계 일년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스케줄 매니저로, 아빠는 짐꾼과 보디가드로 함께 다니고 있습니다.
로숲 TV :: rosoup https://youtu.be/fpIR1AfLTq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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