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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세아 Feb 22. 2020

외벌이 하는 엄마가 되니까

못난 사람은 아닌데, 상황이 그렇게 만들더라



조금 심술이 낫던 것도 같다.

주변에 있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을 보면서 말이다.


만삭이 가까워 오도록 그치지 않았던 입덧으로 새벽녘까지 접히지 않은 배를 움켜잡고 변기통 앞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서 헛구역질을 하며 밤을 지새워도, 아침이 오면 나는 다크서클 가득한 눈을 비비고 또 비벼 멀쩡한 옷을 입고 회사에 출근하는 날이 흔했다.


아이를 낳고선 임신 때의 일은 오히려 추억이었다. 갓난쟁이를 떼놓는 일은 내 몸 일부를 놓고 다니는 느낌이었고, 아이가 아플 때는 맡길 데가 없어 발을 동동 굴렸다.

허겁지겁 견디던 하루하루는 깜깜한 동굴 안의 브레이크 고장 난 고속 기차처럼 사방을 쾅쾅 부딪히며 달리는 중이었다. 집에 있던, 회사에 있던 귀에서는 이명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보이지 않는 벽에 도착한 고속 기차는 엄청난 진공파를 날리며 폭발했다.

남편의 고시공부 준비 선언이었다.



졸지에 나는 서른 남짓 나이에
갓난아기를 독박 육아해야 하는
외벌이 가장이 되었다.



그 후 2년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만 벌기도 힘들고 갓난아이를 키우기도 힘든데 이 모든 걸 혼자 하는 건 지금 상상해도 불가능한 일이라, 내가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뎠는지 잘 모르겠다.

시댁에서 아시면 번듯한 아들이 가장 노릇 못하는 거 아시고 역정을 내실께 뻔했고, 친정에서 아시면 사위 잘못 들여서 딸 골병든다고 냉가슴 앓이를 하실까 봐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 채로 남편은 회사에 나가지 않게 됐다.

그렇게 결혼 후, 내 생의 최대의 암흑기가 찾아왔다.


남편은 밤 12시가 다 돼서 집에 들어고 둘 다 너무도 지친 상태로 싸우다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남편도 나름대로는 고민도 많고 힘들지 않겠냐고, 분명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우리 가족은 건강하니까 그것만 해도 감사해야 한다고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결혼을 책임지는 건 당연 것이고, 곧 남편이 합격해서 상황안정될 거라고 계속해서 합리화해보기도 했.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아이도,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무겁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겁이 났으며, 아이의 울음소리로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연이어 이어졌다.

혼자 돈을 벌면서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가 인내심 가득하고 성숙한 어른이 되는 줄 알았지만, 나는 그냥 외로운 사람이었다. 나의 짐을 버거워하는 엄살쟁이였다.


나는 위태로웠다.

지인을 만나면 남편이 내가 버는 건 내가 쓰라고 했다는 말이나, 힘들면 그만두라고 했다는 말을 들으며 무렇지 않게 그러냐고 맞장구 쳐주는 게 날이 갈수록 힘들어졌다. 

집에서 살림하는 게 얼마나 갑갑하고 힘든 줄 아냐고, 누가 들어도 일상적인 푸념하는 말에는 정말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무언가가 목구멍에서 뜨끈거렸다.



남들과 비교하는 못난 사람이 아닌데,
나는 선택을 한 거지
억울한 사고를 당한 게 아닌데,
뭐가 그리 서러웠을까.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야지 이해해야지 하다가 패하기 일수였던 나 내가 그릇이 작아서, 그리고 이해심이 모자라서 그렇다 생각했었다. 

아마도 돌이켜보면 가벼운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살았던 것 같다.


무엇인가 그 시간에 대한 성과가 있었다면 돌이켜 보는 지금, 내 감정이 조금이라도 미화됐을까?

일 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을 두 번 치르고, 높은 경쟁률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신 그를 위로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간 뒷바라지한 내가 위로받아야 하는 건지 실랑이할 새도 없이 남편은 다시금 미래가 불안한 사기업으로 돌아갔다.


나로서는 더 이상 최선을 다할 수 없었을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후회는 따라왔다. 가 뒷바라지를 잘 못해서? 아니 처음부터 말렸어야 했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아이는 밤에 깨지 않고 잠을 자고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그래 아이를 이 정도 키워냈으면,
그래도 먹고 살만큼 가계를 이끌었으면,
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생계를 책임 절박 정으로 성에는 하나도 맞지 않았던 직장생활 십 년 동안 하서 달린 '기획팀 팀장'과 '차장' 딱지를 떼내고 몇 달째 백수가  내가 스스로 생각해 볼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렇게  나태한 하루를 보내도  만한 자격이 있다.

아니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은 행복할 자격이 있다.

그러니 조바심 느끼지 않고 잠시 쉬어도 되지 않을까?


시험기간이 지나고 티비를 보다 화들짝 놀라는 기분으로 불안하게 놀고 있는 아마추어 백수인 나, 언제쯤 마음의 짐이 덜어져 편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실은 자격을 논하기 전에, 내가 더 못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나는 나를 스스로 돌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내가 못난 사람이 되기를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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