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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세아 Feb 25. 2020

결혼이라는 관계에서 너와 나

내가 불완전한 사람인 것처럼, 그도 그렇다.



내가 불완전한 사람인 것처럼, 남편도 그렇다.



결혼생활 동안 몇 번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이 말을 되뇌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기에 함께 있지 않지도 모른다.


결혼해서야 알게 된 나의 우둔함과 치졸함에 내가 스스로 실망을 했듯이, 그도 자신의 모든 모습이 자랑스럽지만은 않을 거다. 가끔은 미안하고 또 가끔은 스스로가 부끄럽겠지. 다행히도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오늘의 분노가 내일의 측은함으로 바뀌었다. 








나도 여느 새신부와 다를 바 없이 사랑받는 결혼을 했다. 누가 봐도 바보 같은 내 모습까지 귀여워해 주는 남자였다. 가 왜 좋냐고 물어보면 예뻐서 라고 답하던 사람이었다. 는 스물여덟이었고, 남편은 스물아홉이었다.


나름의 순애보가 있긴 했지만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선듯 서로의 손을 잡은 것은, 눈이 멀만한 사랑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낯간지러운 것을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남편은 그저 나를 놓칠까 봐 불안해서 곁에 잡아두고 싶어 했다.

남편은 알았다. 결혼하지 않으면 나는 언제나 그랬듯 훌쩍 떠날 사람임을. 우리는 여행을 떠난 길 위에서 만났고, 그는 나를 꽤 오랫동안 친구로 지켜봤으니까.


내가 결혼을 결심했던 것은 그의 사랑이 영원할 것임을 믿어서라던가 그가 기댈만한 버팀목이 돼줄 것 같아 보였다거나 하는 이유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그저 나는 스물여덟이 되도록 내 의지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결혼 후에 내 인생이 크게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다.

가 내렸던 선택은 옳 그르 책임며 살아왔고, 결혼도 책임질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고 속단했다.

나를 과대평가했거나, 남들 다하는 결혼이니 만만하게 봤거나, 혹은 둘 다 였을 것이다.


나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아는 데는 고작 한 번의 명절이면 충분했다.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나는 누구보다 무력했다. 그리고 이어진 임신과 남편의 고시 준비 선언으로 어느날 내가 외벌이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내 선택이 성급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남편은 사귈 때부터 고시를 준비했었다.

무언가를 진득하게 하는 성격은 아니었던지라 애초에 그의 합격을 확신하고 만났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는 공부기간이 길어지자 오로지 나에게 청혼하기 위하여 대기업에 취직을 했, 나는 에 대한 미안함 마음 한편 남아 있었다.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냐고 이혼하자는 이야기를 꺼낼까 고민도 했다. 내가 만약 그랬다면, 남편이 끝까지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고집을 피울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표면적으로 심각하게 반대를 하지 했다.

결국 나는 이러다가 붙으면 잘된 거고, 아니라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 그의 결정에간섭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 큰 성인 두 명이 함께 살아가는데
단지 결혼을 했다고,
누가 누구를 책임지라고
따져 물을 수는 없었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는 거지, 남편에게 나와 아이를 먹여 살리라고 강요한다면 그것도 의 인생에게는 폭력과 다를 바 없 느껴졌을 테니까. 나도 남의 돈을 번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그도 나 못지않게 회사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모든 가치관이 실제 생활과 일치하기는 어려운 법이라, 나에게 현실은 가혹했다. 함께 낳은 아이를 혼자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는 그의 사랑 믿지 못했다.

나는 나의 선택을 책임지기 위해서 하고 싶은 일도, 살고 싶은 방식도, 내 모든 자유와 시간을 포기하고 살고 있는데,

그는 떻게 럴 수 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후 남편이 회사로 돌아가기 전까지, 그로 인해서 힘들던 2년은 나에게 후유증을 남겼다. 

많은 감정의 상처와 미래에 대한 함이 남, 술 한잔 입에 못 대던 나는 점점 술이 늘 힘든 직장생활로 낭만과 감성을 잃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무책임하다고 책망하지는 않았다.
단지 우리는 같은 사람이 아니고,
결혼이라는 약속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조금 더 미래를 바라보고, 조금 더 안정적인 삶을 욕심낸 것이 잘못이라고 탓할 수만은 없다.

나는 그를 비난하는 대신에,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은 나를 만나 결혼한 것이라는 이 사람이 언젠가 가족을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하는 날이 오기를, 그래서 가끔은 내가 기댈 곳이 되기를 다리 살기로 했다.








우리는 아직 함께 있다.



결혼이라는 것은 같은 조각배를 타고 있는 전우와 같아서 운명을 함께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이 흘러간다는 건 혼자 힘으로 해냈다거나 한 사람만의 인내가 있어서가 아니라, 눈에 보이건, 보이지 않건 상방도 노력했기 때문이고 생각한다.


몇 번의 위기에도 찌그러지지 않은 모양새를 간직하며 결혼생활을 해면서 나는 깨달다.

나 혼자만  안간힘 쓰며 노를 저었다고 생각했는데,  자리에서 돌지 않고 시간이라는 강물에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은, 반대편에 있는 그 사람도 어디에선가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티가 나건 나지 않았건, 집 밖에서건 집 안에서건, 아니면 현실적이건 감정적이건 어떤 면이던 편도 분명히 지금껏 희생하고 있을 거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까지 함께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므로 완벽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욕심이다. 떤 날은 싸우고, 어떤 날은 실망하지만 그래도 나는 오늘도 균형을 맞추어 노를 저으며 나의 할 일을 한다.  그도 처럼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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