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입술이 터져서 들어왔다.
담임교사와 학부모간의 폭력에 대한 시각 차이에 대해서
하나밖에 없는 딸이 입술이 터져서 들어왔다.
찢어진 입술에 피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어떻게 다쳤냐고 물어봤더니
"화장실에서 모르는 애한테 맞았어"라는 대답.
얌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또래에 비해 마르고 왜소한 덩치에
더군다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키우는 동안 폭력적인 행동을 보인적은 없었기에
시비가 붙어서 싸운 건 아니라는 이야기가 사실이라 가정해 보면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모르는 아이의 과격한 행동이나 실수.
두 번째는 타겟을 딸아이로 잡고 괴롭힌 경우.
실수로 맞은 거라면 입술이 터져도 백번 양보해서 주의를 주고 사과를 받으면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때린 아이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실수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거니까.
그리고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이 어떤 실수를 해야 입술이 터질 정도로 맞을 수 있을까?
혹시나 내가 어떤 신호를 무시한 건 아닌지 나중에 더 큰 문제로 발전될 수 있는 것을 그냥 넘기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주변 친구 엄마들에게 자문을 구해서 일단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담임교사에게 조심스럽게 자초지종을 묻는 톡을 보냈다.
그리고 집단 괴롭힘의 가능성이 있는지 학교생활이나 교우관계에 문제가 없는지도 여쭈는 짧은 내용을 덧붙였였다.
선생님께서는 다음날 아침에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조치하겠다고 톡으로 문자를 주셨고,
죄송하지만 살펴봐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 후 일주일간 연락이 없었다.
아이가 자기를 때린 아이의 인상착의, 입었던 옷 등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학교에는 cctv가 있으니 누가 때린 것인지
찾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선생님을 믿었었는데
아무 연락이 없자 나는 아이에게 다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선생님이 학교에서 때린 애 마주치면 다시 말하래"
그랬다. 그게 선생님이 말한 조치의 전부였다.
그러고 딱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에, 종례시간이 끝나고 방과 후를 기다리던 딸에게 전화가 왔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양호실에 왔어"
무릎이 어떻게 아프냐고 물어보니 축구를 하다가 남자아이가 공을 따라가면서 자기를 밀치고 밟고 갔다는 것이다. 아까 양호실에 왔었는데 너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어서 다시 왔다고 했다.
일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학교로 데리러 가야 하는지 판단이 서질 않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학기 중 처음으로 먼저 전화를 드린 거였다.
선생님께서는 별로 크게 다치지 않았고, 병원을 가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셨다.
전화를 한 김에 화장실에서 맞은 사건을 말씀드리며 아이는 모르지만 선생님께서 따로 알아보신 게 없냐고 여쭤봤더니, 인상착의를 다른선생님들께 여쭤봤는데 너무 일반적이라서 못찾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되묻길 때린아이를 찾아야 하는거냐고 일주일이 지나서 때린 아이를 이제 와서 찾지는 못한다는 말.
그리고 한 가지 더 오늘 밀친 남자아이가 사과를 하지 않아서, 종례 때 다시 불러서 사과를 시켰는데 우리 아이가 사과를 듣고도 대답을 안 했다면서
사과를 받는 것도 용기라는 말을 덧붙였다.
반 아이들이 많고, 이 정도로 다치는 일은 부지기수라서
이렇게 양쪽 부모에게 따로 연락하지 않고 완만하게 넘어가는 걸까?
그렇다면 이 두건의 사건이 성인에게 일어났고, 상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경찰이 이런식으로 중재를 한다면 옳은 행동일까? 다친 사람에게 사과를 받는 것도 용기라는 말을 하면서.
솔직히 이쯤 되니 이 젊은 여선생님이 상황을 대하는 기준이 보여 길게 이야기하는 것이 소용이 없을 것이라 판단이 된 후 나는 통화를 끊었고,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는 별로 다치지 않았다는 선생님의 말과는 다르게
한쪽 무릎에는 손바닥보다 큰 면적으로 무릎의 살이 갈려서 거즈가 젖을 정도로 피가 나고 있었고,
반대쪽 무릎과 한쪽 팔꿈치도 쓸린 찰과상으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피부과에서는 상처가 깊어서 흉터가 남을 수 있어 2주간 매일 드레싱과 레이저치료를 해야 한다고, 그리고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다시 정형외과에 가니 넘어질 때 팔을 엇디뎠는지 팔목을 밟았는지 모르겠지만
인대가 늘어나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일을 그냥 넘어갈지 아이에게 물었을 때,
아이는 자기를 밀친 남자아이가 자기가 넘어진 것을 보고도 사과하거나 일으켜 세워주거나 어쩔 줄 몰라하는 당황의 제스처를 전혀 보이지 않았고,
친구들이 와서 걱정해 주면서 양호실 같이 가주냐고 물어볼 때에도 그 아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종례시간에 선생님이 강제로 시켜서 건방진 말투로 사과를 했기 때문에
자기는 그 남자아이에게 아직도 화가 나고 상처가 너무 아파서 지금은 사과를 받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나는 유난스러운 엄마가 되기 싫어서
우리 아이가 맞으면 내가 나서서 그쪽 부모님께 괜찮다고 말을 하면서
아이에게 사과를 받고 싶은지 따로 묻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아이가 다른 애와 부딪혀서 울고 있으면
실수로 다치게 했어도 사과를 꼭 해야 한다고 아이에게 가르치면서 내가 대신 사과했다.
그런데 아이는 그것이 이중잣대라고 생각을 했는지 양쪽 모든 상황에서 억울하다고 울었다.
'왜 내가 실수하면 사과를 해야 하는데, 다른 아이의 실수로 내가 아플 때는 사과를 받지 못하나'
어떻게 보면 아이입장에서는 당연한 생각인데, 나는 여러 번 아이의 감정을 무시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리고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는 자랐고, 아이의 생각은 명확했다.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때렸어도 맞은 사람이 아프면 사과를 해야 한다.
그리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말로만 하는 사과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건 피해자의 배려이지 의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
나는 아이의 생각을 지지해 주기로 굳게 마음을 먹고, 선생님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가 이만큼 다쳐서 병원에서 깁스를 했으며,
밀친 아이에게 다시 한번 설명을 해서 진심 어린 말투로 사과를 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서 화장실 폭력사건의 용의자를 못 찾는다고 하셨으니
교무회의에서 전달하셔서 전반 아이들에게 폭력에 대한 주의를 주라는 것.
이 두 가지 요구였다.
담임교사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괜찮다고
내 아이가 괜찮지는 않다는 것을 수많은 경험으로 알고 있고
이 두건의 상해사건으로 온몸이 다친 딸에게, 나 마저 아이의 입장을 대변해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또다시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졸지에 예민한 엄마가 되어서 불편한 내 감정은 엄마인 내가 처리해야 되는 감정이지,
그것을 이유로 무턱대고 아이에게 네가 이해하고 넘어가라고 한다면 그것도 폭력이다.
어찌 됐거나 아이는 사과를 받았고,
그 남자아이는
실수로 남을 다치게 했을 때에도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화장실 폭력사건은 학생들에게 '화장실에서 팔을 휘두르지 말라'를 문구를 각반 알림장에 전달하는 것으로
담임교사는 사건을 마무리 지었고,
나는 최대한 격식을 차려 감사인사에 예의를 담아 담임교사에게 전달했다.
잘된 결말인지, 아니면 또 다른 사건의 중간 과정에 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엄마, 아니 부모의 역할은 상황에 따라서 계속 배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의 담임교사도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