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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원재 Dec 01. 2022

영화 비평 쓰기

국어 교육에서 영화 비평을 다뤄야 하는 이유 찾기

 "영화 비평 쓰기"는 정말 재미있는 글쓰기 주제다. 교수님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유로운 글쓰기로 수업을 진행하면 영화 비평문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텍스트 장르-일종의 장르적 글쓰기의 관점에서 본다면-라고 한다. 게다가 다른 글에 비해서 수월하게 쓰는 만큼 어느정도 퀄리티를 보장하는 글이기에, 교수님 입장에서도 비평 쓰기는 매력적인 수업 활동 방식이라고 한다.

 이것은 비단 성인 학습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중등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비평 쓰기'가 활발해지면서 꽤나 많은 영화 비평 쓰기 활동이 제시되고 있고 연구 주제가 되고 있다. 또한, 외국인을 대상으로하는 한국어 교육의 영역에서 영화 비평 쓰기 활동 등도 문화 교육적 차원에서 권장하고 있는 방식이다.

 흥미로운 점은 학교 수업 시간에 우리가 주로 다루었던 것은 소설과 시라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의 일환으로 영화 교육이 있지만(문화예술강사사업으로 영화, 국악, 미술, 무용 등 많은 문화예술들이 학교 교육으로 들어오고 있다.) 결국 작품을 보고 비평하고 생각해 보는 것은 국어 교육의 영역 안에서 주로 이루어져 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제대로' 보는 방법도 모르면서(물론 여기서 '제대로'라는 표현이 부적절함을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의도한 바는, 영상 매체에 대한 문식성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현재 국어 교육의 틀을 일컫는 것이다.) 비평은 쓰려고 하는 것이다.

 이 현상이 틀렸다거나 잘못된 현상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비평이 무엇인지 물어보기 위한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가 된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시와 소설에 대한 비평문을 작성하라고 하면 어려움을 보이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글을 쓰는 게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 그렇다고? 그럴싸한 분석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학생은 영화 비평을 과제로 내주면 오히려 쉽게 써내려간다. 영화 비평을 작성하는 것에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며 그 결과물 또한 만족스럽고 괜찮다고 하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초중등12년 간의 교육을 마치는 동안 받은 영상 매체에 대한 문식성 교육은 많지 않고, 소설과 시 등 인쇄 매체를 주로 접하며 공부했고 시험을 쳐온 것이다. 그러나 막상 비평은 영상 매체에 더욱 친숙함을 느끼고 심지어 잘 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교육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의도된 행위임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독특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김대행(2001)의 날카로운 현대 사회의 지식 구조의 변화에 대한 시각을 살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미래 사회 지식이 혁신성, 유용성, 조작성, 응용성에 있다는 것이다.(김대행, "국문학의 문화론 시각을 위하여", 국문학과 문화, 15쪽) 영화 비평의 본질을 지식 구조에서 찾는다고 한다면 바로 이러한 지식 구조의 변화가 이미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문제 해결이라는 핵심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어떻게 취합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지식은 여기서 명제적이고 형식적이라기 보다는 유용해야하고 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쉽게말해서 기출문제 위주로 풀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세계의 지식이 이미 문제 해결을 위한 지식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몇 가지 경전을 읽고 외우는 것이 과거 시험 제도였고, 그것이 그 시대에 필요한 지식의 구성 방식이었다. 이론이 세운 테두리에 세계를 끼워 넣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와서 예송논쟁을 낡은 투쟁으로 바라보는 것은 지식의 틀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에는 성리학이 세계의 진리요, 그것이 세계의 중심이었다. 그들이 보는 세계는 이와 기의 두가지로 이루어진 것이며, 고정불변의 진리적 세계관이었다. 그깟 상복입는게 뭐 중요해!가 아니고 그것이 그들의 세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거기에 있기에 오른다는 식의 등반은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는 세계가 되었다. 상대주의적 경향이 강해지고 어떤 것도 고정 불변의 실체가 아님을 알게 되면서 우린 지식 그 자체의 탐구보다는 현상적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 공부를 하지만, 자신이 비즈니스 장면에서 쓸 말을 공부하는 것인지, 친구와 담소를 즐기기 위해서인지, 영화를 더 재밌게 보기 위해서인지에 따라 다른 전략과 방법을 세울 것이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정보와 이론, 방법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헬스 하는 법'을 그냥 구글에 검색한다고 치자. 당신은 그 순간 망망대해를 떠도는 표류자가 될 것이다. 헬스라는 용어의 모호함을 지적하는 사람부터, 보디빌딩을 위한 운동법, 몸의 기능을 위한 펑셔널 트레이닝, 해부학, 스포츠생리학, 영양학 등 각각의 영역에서 공부한 사람들의 온갖 고급 정보가 물건을 잘못 쌓아 놓고 억지로 닫은 수납장을 다시 열어버린 듯이, 콸콸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난색을 한번 표하곤, 다시 허겁지겁 주워 담곤 닫게 될 것이다.

 도서관의 책을 000총류부터 900의 역사까지 다 읽는다고 해보자. 당신은 000을 벗어나지도 못한 채로 포기하고 말 것이다. 결국 지식은 문제 해결을 위해 취합하는 것, 즉 자신의 관점에서 지식을 응용하고 조작하며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미 2000년대 초반에 이러한 지식의 본질을 꿰뚫고 국문학 연구와 국문학 교육 연구에서의 시각의 변화를 역설한 김대행 선생님의 논의는, 굉장히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관점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는 말과 영화 비평 쓰기는 무슨 연관이 있는가? 우리는 이미 이러한 지식의 변화를 내재하고 있다. 서점에서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끄는 현상은 단순히 사람들이 교양이 없다고 얘기할 만한 것이 아니다. 세상을 풀어나가는 하나의 방법론을 자기 나름대로 구조화시키려는 노력인 것이다. 영화 비평 쓰기가 익숙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 있다.

 좋은 영화는, 하나의 지식이 구조화 되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에서 인간의 사고구조를 닮아 있다. 영화 촬영은 시간 순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글로 따지면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이 가장 늦게 촬영되기도 하고, 결론 부분이 가장 먼저 촬영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서론과 결론을 동시에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 뿐이랴. 왕가위 감독은 일단 촬영을 시작하고서 대본을 만들기도 했고 홍상수 감독도 각본을 그날그날 새롭게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 이것이 곧 애드리브에 관대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촬영은 뒤죽박죽이지만 포스트 프로덕션을 거친 영화는 우리 곁에 하나의 서사적 구조를 가진 구조물로 전달된다.

 우린 정말 시간과 공간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위치는 지구에서는 좌표로 표시될 수 있지만 태양계를 벗어나 은하 단위, 관측가능한 우주의 단위로 넘어가면 인식할 수 없다.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시간 만큼만 인식 가능하다. 숫자가 커질 수록 머리는 그 시간을 이해할 수 없다. 몇 억 광년 쯤 떨어진 별의 거리와 시간을 정말 인식할 수 있을까?

 즉 인간의 사고는 굉장히 상대적이며 주관적인 것이다. 영화는 이것과 닮아있다. 카메라의 시점과 선택된 서사적 구조들의 결합물. 이것이 영화다. 그러나 인간은 언어라는 세계를 담는 그릇을 통해 구조를 이해하고 보여주지 않는 것들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소쉬르로부터 촉발된 구조주의적 인식을 통해 우리는 보이는 것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영화는 뒤죽박죽 섞인 세계를 특정 시점에 의해 재현된 이미지와 그 이미지의 배열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층위를 부여하는 일상적 사고 과정에 가까워 보인다. 영화 비평 쓰기는 이러한 사고를 언어라는 그릇을 통해 포착하려는 우리의 언어적 행동이자 문제에 대한 지식을 구조화 시키는 과정이다. 오히려 정교하게 짜인 텍스트보다 영상을 파악하기 쉬운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즉 하나의 영화를 파악한다는 것은, 문제를 찾고 풀어내는 과정이다. 문제 풀이 위주 학습에 익숙한 우리 학생들이 오히려 잘하는 분야인 것이다. 영화 텍스트는 이런 차원에서 비평 쓰기의 대상이 되고 국어 교육에서 다루어야 하는 대상이 된다. 관점을 먼저 세우고 방법을 찾고 결론을 도출해 내는 현대 사회의 지식 구성 과정을 익히는 것이다. 이는 곧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회용 빨대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 같은 처방적이고 선언적인 주장이 아니라 '환경 문제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무엇인가'를 묻는 가치 지향적 교육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참고문헌>

김대행(2001), "국문학의 문화론 시각을 위하여", 국문학과 문화, 7~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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