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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원재 Aug 29. 2022

<모퉁이>

우연과 필연 사이의 만남들, 대화들, 삶들.

신선 감독의 데뷔작인 <모퉁이>는 감독님의 이름답게 신선한 영화였다. 어딘지 홍상수 감독의 그늘이 생각나는 형식이긴 하지만 오마주 혹은 표절이 아닌, 주제를 나타내기에 적합한 형식으로 채택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홍상수 감독은 우연이 만들어낸 세계(혹은 영화)를 포착하려는 시도를 주로 보여준다면, 이 <모퉁이>는 우연과 필연이었던 것들이 마주하는 창으로서의 카메라가 보인다. 그렇기에 카메라는 움직인다. 홍상수가 멈추어서 초대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모퉁이>는 인물 사이를 빙빙 돈다. 


 <모퉁이>는 몇 가지 우연이 반복되다가 결국 하나의 골목, 개미집 앞으로 모이는 필연으로 끝나는 영화다. ‘개미집’의 주변에는 우연히 성원이 들렸던 카페가 있고 그곳은 공교롭게도 병수가 펜을 두고 간 카페이기도 하다. 이 둘은 골목길 모퉁이에서 우연히(후에 밝혀지지만 또는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마주함은 마치 카페에 두고 간 병수의 펜처럼 어긋나게 반복된다. 이들의 대화처럼, 계속 에둘러갈 수밖에 없는 만남은 한 모퉁이에서 시작된다.


 ‘병수’는 분명 펜으로 시나리오를 쓴다. 그 시나리오와 성원-중순의 대화는 서로 겹치게 되는데, 이 영화를 모호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이것은 홍상수처럼 영화에 대한 영화인 것인지, 병수의 시나리오는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그들의 실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의도적으로 장면과 시나리오에 대한 내레이션을 겹치게 만듦으로써 이 세계를 영화적 세계로 불러온다. 


 분명 ‘일기장에나 써 놓을 영화들’이 있다. 그러나 <모퉁이>가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만약 이 영화가 병수의 시나리오라면, 결말부에 덧칠해진 개미집에서의 행복한 ‘만남’은 곧 화해를 성공한 병수의 결말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만남은 끝없이 미끄러지고, 이내 중심을 잃고 배회하곤 하지만 결국 그 모퉁이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죽었다고 했던’ 개미집 사장님은 돌아왔고, 병수 또한 돌아와 즐겁게 어깨동무를 하며 술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가능했을 것이다. 난 이 결말이 참 마음에 든다.


   이 영화의 독특한 요소는 ‘규정’이라는 인물이다. 이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규정은 성원과 중순, 그리고 병수가 모이는 하나의 중심이기도 하다. 규정이란 인물은 병수와 대비된다. 성원과 중순에게 병수는 지난 10년간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지만 등장하고, 규정은 성원, 중순과는 종종 연락을 하고 지냈던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이름만 남겨진 채 등장하지 않는 인물과, 인물들의 관계에서 사실상 없었던 인물이 등장하는 <모퉁이>는 그 모순된 만남을 영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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