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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원재 Aug 29. 2022

<썸머 필름을 타고>

영화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일본판 포스터, -우리들의 청춘은 걸작이다-는 카피가 인상적이다.


 <썸머 필름을 타고>가 7월 20일에 개봉을 했다. 이 영화는 영화부에 소속된 한 학생이 사무라이 영화를 찍어나가는 영화다. 영화는 시간과 층위를 과거-현재-미래로 부여하고 사무라이의 시대에서 로맨스의 시대, 그리고 영화가 사라진 시대로 나누면서 동시에 영화를 촬영하는 매체가 필름-디지털(스마트폰)-증강현실로 달라져가는 것을 보면서 영화의 미래는 무엇일까를 질문하고 있기도 한 그런 영화다. 


 <썸머 필름을 타고>는 영화를 제작해나가는 장면을 서사로 구성하는데, 영화 제작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는 주인공의 영리한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좋은 영화를 만들어가는 창작자의 고민을 그대로 전해받는 느낌이 든다. 자신이 생각하는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린타로'여야만 했으며, 린타로가 아닌 이상 영화를 촬영조차 안 하겠다는 타협심 없는 완고한 모습이나 영화를 찍는 내내 각본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연기 디렉팅을 하고 액션까지 제대로 검수받는 모습들은 진지한 작가로서의 감독을 보여준다. 이는 정말 고등학생이란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프로페셔널한 모습이다.


린타로(좌)와 맨발 감독(우)이 영화를 보며 연구하는 장면. 정말 진지한 사무라이 영화의 팬으로서, 감독으로서, 배우로서 임하는 자세가 돋보이는 장면


영화 속 영화들이 표방하고 있는 주제답게, '청춘'을 직접적으로 내세우며 영화 촬영을 둘러싼 모든 갈등이나 사건은 학생들로만 이루어진다. 선생님, 어른은 의도적으로 배제된 채 청춘들만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담기고 있다. 영화 속 영화부가 만드는 <좋아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잖아>, <무사의 청춘>은 이런 이야기를 대변하듯 일본 청춘의 요소, 클리셰들을 담아낸다. 이 영화에서 철 지난 '사무라이'가 배합되어 있다는 것은 굉장히 독특하기도 하다. 


 이 영화 속에서 맨발 감독이 영화를 찍는 것 중에 가장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녀가 영화를 찍는 내내 각본을 수정한다는 것이고, 영화 마지막에는 이미 완결될 엔딩을 다시 찍는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듯이 말이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 린타로는 사실 일본 청춘의 대표 클리셰가 된, 타임슬립 캐릭터이다.(천문부의 킥보드가 읽고 있던 소설이 바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였다.) 린타로는 이미 확정된 미래에 영화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존재다. 이 정보는 린타로의 미래 친구로부터도 전달된다. 미래에는 30초 이상의 긴 영상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말이다. 영화는 사라질 것이다. 엉뚱하게도 영화가 사라진 미래에서 온 소년은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이는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영화가 사라진 시대에서 다시 영화를 재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맨발 감독은 <무사의 청춘>을 찍는 중에 끊임없이 각본을 수정하고 대사를 수정한다. 영화가 사라진 시대라는 말을 듣고 영화를 더 이상 찍지 않으려고 하지만 미래에 남길 영화를 찍는다는 마음으로 다시 촬영하기 시작한다. 촬영이 끝나고, 후반기 작업에 들어가게 되고 감독은 하나의 결말을 정한다. 


 영화가 학교 축제에서 본격적으로 상영되기 시작할 무렵, 맨발 감독은 어떤 고민에 빠진다. 과연 맞나? 사무라이 영화가 정면으로 베지 않는다니, 그게 괜찮을까 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결국 맨발 감독은 영화 상영을 멈춘다. 그리고 그 멈춘 자리에서, 영화는 다시 시작된다.


 왕가위 감독의 일화가 생각나기도 한다. <아비정전>을 공개할 당시, 공개 직전까지 필름을 편집하고 있다고 했던가. 필름 시절의 영화들은 종종 영화 상영 중에 필름을 다르게 이어 붙여서 편집하기도 했다.(<시네마 천국>이나 <바스터즈>에서도 이런 것들을 볼 수 있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고 나서는 사실 후반기 작업이 모두 끝난 하드디스크가 배급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썸머 필름을 타고!>의 <무사의 청춘>역시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영화이므로, 상영 중 재편집은 불가능했다.  

 

 맨발 감독은 그래서 스크린 아래에 다시 영화를 재촬영하기 시작한다. 사무라이의 검도 아니고 빗자루를 들고서, 카메라가 아닌 사람들의 눈으로 영화에 대한 단호한 고백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절대로 사라지게 하지 않을 거라는 굳센 결심으로 영화를 다시 시작한다. 필름으로 찍지도 않는 영화인 주제에, 영화 제목이 '썸머 필름을 타고'인 이유는 이렇게 필름으로 재편집하듯 영화를 다시 시작하는 결말의 부분과 맞닿아 있다.


 좋은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를 계속 되뇌게 만든다는 얘기가 있다. 영화광이라면 눈에 계속 아른거리는 그런 영화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관객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감독, 제작의 입장에서의 영화에 대한 사랑 고백이다. 끊임없이 다시 쓸 수밖에 없고, 상영되는 그 순간까지도 아직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무사의 청춘>을 찍는 감독 그리고 7명의 동료들. 7인의 사무라이가 지키는 영화인 걸까? 팀-업 장르로서의 속성도 가져왔다.


 자신의 영화를 1차적으로 보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감독일 것이다.(이러한 부분에서 영화는 관객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텍스트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답게 복합적이고 그물 같아서 텍스트를 만드는 창작자조차 미처 발견하지 못한 방식으로 뻗어나가는데, 그걸 일차적으로 다시 해결해나가려고 하는 것은 감독일 것이다. 그는 생산자임과 동시에 수용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생산자는 곧 관객이 되고 다시 생산자가 되면서 텍스트와 진지한 싸움을 전개한다.  

 

 창작자는 과거의 작품들에게서 영향을 받거나 동시대의 다른 작품에서도 영향을 받고 자신의 삶과 경험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맨발 감독은 사무라이 영화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고 영화부의 다른 학생들의 로맨스 영화에도 영향을 받으며 린타로, 킥보드, 블루하와이와의 관계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동시에 자신의 오리지널리티 한 사무라이 영화의 각본을 완성시키려 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계속된다. 창작자의 입장에서든, 수용자의 입장에서든 계속되어야만 한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그런 사랑 고백을 '필름을 타고' 멋들어지게 해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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