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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호 상하이 Oct 16. 2023

[1화] 사람 울리는 무시무시한 중국 택배

不怕慢 只怕站 : 부파만, 쯜파짠

중국어에는 성조가 있고 내가 그간 배워온 한자가 아닌 보다 쉽게 단순화된 간체를 쓴다. 도서관은 튜슈관图书馆이라 읽으며, 얼마냐고 묻고 싶으면 뚜어샤오치엔多少钱, 모르겠으면 팅부동听不懂 워슬와이궈런我是外国人(못 알아듣습니다. 저는 외국인입니다.)하고 말하면 된다. 


중국에 '살러' 처음 왔을 때 딱 내 언어의 방에 있는 것들이었다. 의도치 않은 중국어 미니멀리즘으로 중국 생활을 시작했다. 무식한 것이 용감이었는지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는지, 함께 가는 이가 의지가 되어서인지, 전혀 모르는 언어가 사용되는 나라에서의 삶이 그렇게 걱정되진 않았다. 미소와 몸짓이 있지 않나. 비언어적인 요소가 의사소통을 차지하는 비율이 반 이상이라며 겁을 먹진 않았다.


'사랑해'를 의미하는 워아이니


그러나 알아듣지 못하는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오고 가고 사고 먹고... 기초적인 인간 생활을 하지 못하는 순간이 이어지니 마음의 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외국 생활이 그렇지 뭐. 처음이니 그래. 점점 나아질 거야 라는 위로의 이야기가 감당할 수 없을 속도였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마음을 실을 도구가 마땅치 않으니 마치 기차를 놓치고 발을 동동 구르는 승객처럼 안절부절이었다. 마침 스마트폰이 생활 곳곳에 들어오기 시작하던 때라 물건을 살 때는 그나마 나았다. 가격표가 적혀 있었고 나는 QR코드를 가져다 대면 그만이었다. 봉지가 필요하냐는 물음에 어버버 하다가 필요하다는 '야오要'와 이미 가지고 있어요라는 뜻의 '요우有'를 헷갈려 말과 동작이 따로 놀기도 했지만 그건 양반이었다. 택시를 탈 때도 괜찮았다. 앱으로 택시를 잡으면 되고 차번호를 잘 보고 있다가 손을 흔들면 되었다. 탑승한 뒤에는 본인 확인을 위해 내 핸드폰 뒷자리 번호를 우렁차게 외치고 나면 상황 종료. 기사님이 말을 시키면 할 수 있는 것까지 대답하고 그 이상은 배시시 웃으며 '팅부동听不懂' 하고 못 알아듣는다며 정체를 밝히면 그만이었다. 앱으로 하면 되는 것들은 언어의 장벽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몰라유....난 감자일뿐인디유..?

그렇게 눈치껏 재주껏 요리조리 상황을 모면해 가며 중국어를 못해도 이 삶을 연명하다가 가장 좌절감을 느낀 첫 번째 순간이 바로 '택배'였다. 전자상거래가 활발한 이곳은 택배 천국이었는데 택배가 도착하기 전 꼭 기사님이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지금은 문자나, 앱으로 도착 알림이 대체되었다.) 어디에 두었다. 도착했다 정도의 의미는 알아들었는데,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겨서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면 등꼴이 오싹, 식은땀이 흘렀다. 일 분 일초가 바쁜 택배 기사님은 다급하고 높은 목소리로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어야 알려드리지. 기사님은 그렇게 메아리 없는 상대방에게 뭐라 뭐라 하시다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어진 후에야 통화가 끝났음을 알았다. 그리고 갑자기 서러워졌다. 내가 택배 하나 내 맘대로 못 받다니! 갑자기 중국 생활이 싫어졌다. 그리고 다 큰 어른은 울어버렸다. 



배워본 적 없는 중국어를 못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건데 뭐가 서러웠을까. 답답할 순 있지만 그 상황에서 '배움'을 택해도 되는데, 나는 왜 '서러움'과 '짜증'을 택했을까. 그제야 알게 되었다. 성인으로서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며 당당하게 살아오던 이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을 만나자 자존심의 스크래치가 났다는 걸. 자존심 세고 교만한 성인은 긍정의 힘으로 이겨보겠노라 했으나 이건 그래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환경에서 필요한 것은 '낮은 마음'이지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아니라는 걸. 지금 생각하면 너무 우습지만 당시엔 정말 심각했다. '쿨'이 사회의 미덕처럼 여겨지니 쿨한 척하고 살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잘해야 한다'와 '나는 잘하는 사람'이라는 마음이 뿌리 깊게 똬리를 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나의 방어기제가 '울음'이라는 것도. 그렇게 서러움을 느끼고 그런 나를 보고 분석하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시원해졌다. 이윽고 배우면 되지, 이제 알아가면 되지, 이 상황에서 뭐라고 하는지 미리 좀 알아두어야겠다 하는 해결책이 보였다. 그렇게 자존심 세고 교만한 성인은 새로운 곳에서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마음을 얻었다.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객관적인 일 다음에는 저마다의 주관적인 감정과 평이 딸려온다. 그러나 그 후자는 절대로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 일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의 그릇, 높이, 재질에 따라 저마다 다른 감정과 생각이 일어난다. 그래서 마음 관리를 잘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것과 비교해보기도 하고, 내 마음의 평이 나를 해치는 것이라면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 후 나는 조금 더디지만 중국어를 배웠다. 정식으로 배우기보다 길에서 많이 들었다. 식당에서 종원업들이 하는 이야기를 따라 해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아주 유창하진 않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기에는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중국어 실력을 가지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연차에 비하면 언어가 그렇게 유창한 것이 아니라서 부끄러울 때도 많지만, 여전히 새로운 상황을 만나면 당황하기도 하지만, 택배를 받지 못해 서러웠던 그때와 마음은 다르다. 새로운 상황이 재밌다. 내가 뭘 몰랐는지가 아니라, 오늘 내가 뭘 배웠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은 잘 보듬어 주고, 오늘도 배움 앞에 나를 맡긴다. 그리고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의 여유와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스스로를 응원하고 있다는 점도 큰 부분일 것이다. 못하는 것에 집중해 주저앉거나 슬퍼하거나 우울해하고 있기에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 한숨을 쉬든, 울든, 웃든, 각자의 방어기제는 5초면 충분하다. 그리고 움직이자.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 不怕慢 只怕站 : 부파만, 쯜파짠 búpà màn zhǐpà zhàn 늦는 것을 두려워 말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라.




*상하이 이야기 외에 중국 생활을 하는 외국인이자 이방인으로서 도시의 일부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종종 풀어내보고자 합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누군가에게 조금의 응원이 되길 바라며. <톰 소여의 모험>에 버금가는 이야기라고 자부하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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