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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호 상하이 May 25. 2024

중국에 오면 미녀가 되는 까닭

상하이에서 만난 말 2화

중국 생활을 시작하고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헝디엔으로 여행을 갔다. 진나라,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 등 현재 중국 역사에서 존재감 있는 나라의 궁궐과 저잣거리가 세트장으로 재현되어 있는 테마파크다. 실제로 곳곳마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영화나 드라마 촬영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역사 덕후가 아닌 나에게도 흥미로운 곳이었다. 학창 시절 외우기에 급급했던 그 많은 나라의 특징과 차이가 눈에 보이기도 했다. 역시 백문이불여일견이야 하던 순간 내 귀에 꽂히는 소리가 있었으니 바로 메이뉘, 미녀, 美女였다.


헝디엔横店 청나라 고궁에서 서태후가 좋아했다는 열기구


"미녀美女 / Beauty 얼굴과 체형, 비율 등의 외모가 전체적으로 빼어나게 예쁜 여자."


지나가는 나를 보며 전통복장 체험을 하고 가라고 호객행위를 하는 아주머니가 뱉은 단어에 웃음이 났다. 이 단어가 귀에 들어왔던 첫 번째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겨우 '니하오' 하나 듣고 말할 줄 아는 상태로 중국에 왔을 때, 이상한 단어를 하나 감지했다. 식당이나 상점에서 나를 부를 때 한결같이 부르는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메이뉘美女." 아름다울 '미美'에 여자 '여女'가 합쳐진 그 단어. 자꾸 나를 부를 때 "메이뉘"라고 부르는 것. 한 분만 그러셨다면 립서비스인가 보다 했을 텐데 가는 곳마다 미녀라고 불러대는 통에 '하, 나라마다 미의 기준이 다르다더니, 내가 여기선 좀 괜찮은가' 하며 으쓱했다. 이곳에서 메이뉘美女는 대부분의 여성을 부를 때 쓰는 일반적인 호칭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말이다.



현지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예전에는 여성을 부를 때 '샤오지에小姐' 같은 단어를 썼었는데, 지금은 그 단어에는 존중의 의미는 없는 편이라 언제부터인가 "메이뉘美女"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고 이 단어는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어 보편적으로 모두 쓰이는 것 같다고. 굳이 비교해 보자면 예전에 쓰였다는 '샤오지에小姐'는 한국에서 김양, 박양, 또는 아가씨 같은 옛날 호칭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성인 여성은 모두 메이뉘, 미녀로 불린다. 덧붙이면 식당에서도 종업원을 부를 때 중국어 책에 나오는 '푸우웬服务员‘이라는 단어를 쓰면 다소 예의가 없게 느껴져서 차라리 '라오반老板’이나 여성에게는 '메이뉘美女’, 남성에게는 '슈와이거帅哥(미남)'를 쓰는 것을 추천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쓰이는 수많은 중국어 책의 식당 편에는 종업원을 부를 때 푸우웬을 쓰라고 가르치는데 그게 사실 현장에서는 그다지 예의 있는 표현은 아니라는 것. 그렇다고 그 단어 쓰면 큰일 난다는 아니지만 보다 격식 있게 쓰고 싶다면 '라오반'이나 '메이뉘' '슈와이거'를 쓰거나 아예 손을 들고 '니하오'하는 것이 좋다는 것. 실제로 주변 테이블을 보면 '라오반', '메이뉘', '슈와이거', '니하오'가 더 많이 쓰였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도 한국에서 '종업원!'하고 부르기보다 '여기요', '이모님', '사장님' 정도를 더 많이 쓰지 않는가. 종업원~, 알바~ 하고 부르면 예의 없기는 마찬가지니.



한국에서는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라는 노래가 한창 인기 있었던 때를 제외하곤 잘 쓰지 않던 '미녀'라는 단어는 중국에서 듣는 만큼 많이 쓰는 단어가 되었다. 처음엔 원래 알고 있던 뜻과 기준 때문에 미녀라는 단어를 듣고 쓰는 것이 참 남사스럽기도 했다. 전지현, 송혜교, 한소희, 그리고 뉴진스 정도는 되어야 그 단어를 가질 자격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이 높은 K뷰티의 기준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녀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외형적인 초점이 강한 단어라, 지금도 검색해보면 비키니를 입은 몸매 좋은 여성들의 사진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처음 그 단어를 듣던 날 내가 느낀 여러가지 감정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당시 내 사전의 '미녀'는 한국사회에서 배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 단어는 일상이 되었다. 듣고 부르는 것이 익숙해져 여성분들을 만날 때마다 메이뉘라는 단어가 술술 나온다. 어르신들에게도 메이뉘~하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이 단어를 쓰는 마음도 변했다. 응당 호칭으로서 가볍게 쓰는 단어는 아니다. 아름다울 미에 대한 내 생각이 변하고 커지고 아름다움의 의미는 확장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다 미녀 아닌가. 우리말 '아름다움'의 아름은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래서 아름다움의 속뜻은 사실 '나다움'이라는 것. 그렇다면 나답게 사는 모두는 사실 '미녀'이고 '미남'이고 '미인'인 것이다. 아름답다는 말을 만든 선조들의 지혜가 참 멋지고 힙하다. (힙하다의 의미도 나는 자기다움이라 생각한다.) 호칭을 바꿔 부르다 보니, 마음가짐도 변했다. 우리는 모두 미녀다.


상하이 난징시루(2021)



*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와, (여자)아이들의 Nxde 누드로 인해 기존의 아가씨, 누드라는 단어를 대하는 대중들의 시선이 변하고 검색창의 데이터도 변했다고 한다. 실제로 (여자)아이들의 소연은 누드라는 단어가 퇴폐적으로만 사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작곡했다고. 인간의 사고가 단어를 만들고, 또 단어가 우리의 사고의 틀을 만들어 간다. '미녀'라는 단어의 뜻이 확장된 경험을 공유하고자 이 글을 썼다.



*상하이 이야기 외에 중국 생활을 하는 외국인이자 이방인으로서 도시의 일부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누군가에게 조금의 응원이 되길 바라며. <톰 소여의 모험>에 버금가는 이야기라고 자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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