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22일: 인생은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영화로 꼽히는 작품이 있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 La Vita E Bella'이다. 홀로코스트 한가운데에서 피어나는 부성애를 다루고 있는 영화는, 악의 현장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악의 주체도 인간이지만, 그 악을 이기는 주체도 인간이라는, 다소 역설적이며 또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인생이 그리 아름답기만 할까?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알 수 없는, 정답이 없는 길을 가는 것이 인생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의 다양한 인생이 존재한다. 어느 것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그 많고 다양한 인생 이야기 가운데,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조금은 불행하고, 우울하고, 서글픈 인생 이야기를 모아보았다. 누군가는 사라진 과거의 영광에 메여 현재와 미래를 희생하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자유와 생명을 희생당하며, 또 누군가는 편견과 잘못된 선택으로 낭떠러지로 향해 간다. 그러나, 비록 그들의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하기 어려울지라도, 답이 없는 길을 걸어가는 모든 인생의 주인공들은 용감한 사람들임을 잊지 말자.
감독 빌리 와일더 Billy Wilder
각본 찰스 브래킷 Charles Brackett, 빌리 와일더 Billy Wilder, D.M. 마쉬먼 주니어 D.M. Marshman Jr.
출연 윌리엄 홀든 William Holden, 글로리아 스완슨 Gloria Swanson,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 Erich von Stroheim, 낸시 올슨 Nancy Olson
새벽 5시, 로스앤젤레스의 선셋대로 위를 경찰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고 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살인사건이 발생한 선셋대로 10086번지. 대저택의 수영장에 한 남자의 시체가 떠올라있다. 등에 두 번, 배에 한 번 총을 맞은 남자는, 언론에 의해 이 살인사건의 진실이 가려지기 전에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자 독백을 시작한다.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고 있는 조 길리스는 생활비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 작업하는 시나리오는 퇴짜를 맞기 일쑤고, 자신의 발이 되어주는 차의 할부금을 내지 못해 차를 빼앗길 상황에 처해 있다. 파라마운트사에 찾아가 어떻게든 자신의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자 노력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결국 할리우드를 떠나 교정일을 보려고 결심하던 그때, 조는 맞은편 도로에서 자신의 차량을 압수하러 오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따돌리고자 차를 몰기 시작한다. 그러다 바퀴에 펑크가 나고, 낯선 길가로 접어들게 된다. 그곳에서 버려진 듯 보이는 차고를 발견한 조는, 그곳에 자신의 차를 숨겨두기로 한다. 그러나 차고 뒤쪽의 대저택은 무성영화 시대의 대배우 노마 데스몬드의 집이었고, 노마는 조가 시나리오 작가인 것을 알자, 자신이 몇 년 동안 집필했던 시나리오를 손봐달라고 한다. 자신의 전성기 때 영광에 싸여 현실과는 담을 쌓고 살고 있는 노마는 조가 손보고 있는 시나리오를 통해 다시 관객에게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조는 그렇게 그 저택에 머물며 노마의 작업을 손보고 어느새 그녀의 애정과 관심의 대상이 되어간다.
영화는 시작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할리우드에 있는 한 대저택의 수영장에 떠있는 살인사건의 희생자로부터 사건의 진상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인 그는, 한 여배우의 세상에 발을 들이면서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게 된다. 무성영화 시대 최고의 스타였던 노마 데스몬드는 유성영화로의 전환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한물 간 스타가 되고 만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과거의 영광 가운데 살며 현실과 담을 쌓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 물론 그녀가 선택한 삶이겠지만,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이자 무성영화 시절 영화감독이자 그녀의 집사인 맥스에게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을 조작하고, 그녀의 곁에 담을 둘러치고 빠져나오지 못할 세계에 가둔 것은 어쩌면 그이지 않았을까? 한때의 인기와 영광과 환희에 함몰돼 자신을 잃어버린 어느 여배우의 이야기, 그리고 그녀의 희생양이 된 남자의 이야기.
감독 마크 로마넥 Mark Romanek
각본 알렉스 갈란드 Alex Garland
출연 캐리 멀리건 Carey Mulligan, 앤드류 가필드 Andrew Garfield, 키이라 나이틀리 Keira Knightley, 샐리 호킨스 Sally Hawkins, 샬롯 램플링 Charlotte Rampling
1952년 획기적인 의학의 발전이 이루어지며 이전에는 치료할 수 없었던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1967년에는 인간의 기대수명이 100세를 초과하게 된다. 간병인인 캐시는 수술실 안 침대에 누워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토미를 바라보며 헤일셤과 코티지 시절을 회상한다. 1978년의 헤일셤. 기숙학교인 이곳에 어린 캐시, 토미, 그리고 루스가 있다. 아이들이 한참 공놀이를 하던 중 공이 학교를 둘러 쳐진 울타리 밖으로 넘어가고, 공을 쫓아가던 토미는 공이 울타리 밖으로 나가자 그냥 돌아온다. 새로 부임한 루시 선생님은 이를 지켜본 뒤, 아이들에게 왜 토미가 공을 가져오지 않았는지 물어보고, 아이들은 울타리가 학교의 경계선이며, 그걸 넘어갔을 때에 어떤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갖가지 소문을 이야기한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던 토미는 가끔 화를 주체하지 못해 몸부림을 치기도 하는데, 캐시는 그런 토미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아이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어느 날 루시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아무도 너희에게 해주지 않는 이야기가 있는데, 너희는 자라면 장기를 기증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이 말에 누구도 동요하거나 반항하는 듯 보이는 이는 없다. 이 일로 인해 루시는 학교를 떠나게 된다. 한편, 캐시의 친구인 루스는 토미와 캐시의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을 지켜보다, 토미에게 접근하고, 토미와 루스는 그때부터 헤일셤을 졸업한 이후까지 연인이 된다. 1985년, 헤일셤을 졸업한 캐시, 토미, 루스는 농장 건물들이 모여있는 코티지로 옮겨진다. 그곳에서 기증자가 될 때까지 생활하며 신청자에 한해 간병인 교육을 받기도 한다. 어느 날 그들은 코티지에 1년 먼저 와있던 로드와 크리시 커플에게서 묘한 이야기를 듣는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이 진실한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장기기증을 유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헤일셤 커플에게 있었다고 들었으며, 그걸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을 아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들은 그걸 누구에게 신청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이야기 자체는 세 사람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
나에게 가장 공포스럽고 끔찍한 영화를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영화 '네버 렛 미 고'를 꼽을 것이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의 그 섬뜩함과 잔인함을 잊을 수가 없다.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는 주로 미래의 시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이 영화는 오히려 과거의 시점을 차용함으로써 그들 삶의 현실을 부각한다. 원본 인물에게 장기를 기증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 어찌 보면 살아있는 장기 보관소 같은 그들의 삶은, 다른 누가 그렇게 이용하고 버려도 될만한 그런 소모품에 불과한 것일까? 캐시의 마지막 독백이 잊히질 않는다.
"우리가 살아온 삶이 우리가 구한 사람들의 삶과 그리 다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What I'm not sure about is if our lives have been so different from the lives of the people we save."
감독 프리츠 랑 Fritz Lang
각본 진 타운 Gene Towne, C.그레이엄 베이커 C. Graham Baker
출연 헨리 폰다 Henry Fonda, 실비아 시드니 Sylvia Sidney
조는 국선 변호사인 스티븐의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그녀의 남자 친구 에디는 벌써 세 번이나 감옥에 간 인물로, 스티븐의 도움을 받아 석방되었으며, 그의 소개로 새로운 일자리도 얻게 된다.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집도 산다. 그러나 새로운 삶을 꿈꿨던 에디는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고, 차마 이를 조에게 말하지 못한다. 새로운 작전에 동참하라는 옛 동료들의 유혹이 있었지만, 에디는 이를 이겨내고 새로운 직장을 찾기 위해 애쓴다. 그러던 와중, 은행 강도 사건이 발생하고, 현장에 남겨진 에디의 모자가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 그는 다시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결국 그는 사형 선고를 받게 되고, 억울하게 죽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그는 탈출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가 탈출을 시도하고 있던 그 시각, 진범이 잡혔으며 에디를 석방할 것이라는 전보가 교도소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 말을 믿을 수 없었던 에디는 끝내 탈출을 감행하고 그를 기다리고 있던 조를 만나 도망자의 길을 간다.
사실 영화를 보다가 짜증이 나는 순간이 여러 번 있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조는 에디를 선택했을까? 에디를 조금만 더 잘 설득할 수 있을 텐데 왜 저럴까? 에디는 대체 왜 그리 무모한 선택을 감행할까? 에디의 억울함은 대체 누가 보상할 수 있을까? 한 번뿐인 삶이기에 우리는 늘 낯선 삶을 살고, 한 번뿐인 삶이기에 그만큼 더 간절해지고, 때론 그런 것들이 우리를 무모한 선택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래서 그 선택의 순간을 다시금 돌리고 싶어 진다. 그러나 시간이 뒤로 가는 법이 없듯이, 인생 또한 전진만 있을 뿐이다. 사실 더 무서운 것은, 내 선택이 나에게 미치는 결과가 아니라, 내가 상상하지 못한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그러니 조금은 더 신중한 삶을 살 용기를 가져보자.
감독 존 크롤리 John Crowley
각본 마크 오로위 Mark O'Rowe
출연 앤드류 가필드 Andrew Garfield, 피터 뮬런 Peter Mullan, 케이티 라이언즈 Katie Lyons
시설에 갇혀 있던 에릭은 '잭 버릿지'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사회복지사인 테리는 그에게 운동화를 선물해주며 그의 새로운 삶을 응원해주고, 그를 조카로 소개하며 머물 곳을 마련해준다. 잭은 운송회사에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 동료를 사귀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미셸과 데이트를 하며 사랑의 감정을 키워가기도 한다. 하루는 동료와 이동 중 교통사고가 난 채 버려진 차를 발견하고 안에 갇혀있던 아이를 구해주게 된다. 이 일로 인해 잭은 지역의 영웅으로 신문에 실리기도 한다. 미셸과 가까워진 잭은 그녀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고 싶지만, 테리는 그의 과거가 드러날까 두려워한다.
영화는 과거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렸을 때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대중의 분노의 대상이 된 소년은, 이전의 삶을 이어갈 수 없게 된다. 과거의 일들이 여전히 그를 붙잡고 있지만, 그는 '잭 버릿지'로서 일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한 사회의 선한 시민으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그의 과거이다. 결국 그의 과거는 그를 다시 궁지로 몰아넣고, 그는 다시 일어날 힘을 잃고 만다. 이 소년의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한 것, 좋은 친구를 사귀지 못한 것, 과거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던 것? 그러나 누구를 탓하거나 잘못을 찾아내는 것보다 소년의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면 좋겠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가 누군가에게 가졌을 편견과 선입견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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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27일: 사랑은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