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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Eponine Feb 21. 2022

10월을 위한 영화 31편 07

23일-27일: 사랑은 어려워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적이 오른다. 먹는 걸 자제하고 열심히 운동을 하면 살이 빠진다. 과정이 힘들어서 그렇지, 복근도 만들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는 있다. 그런데 사랑은 아니다. 내가 누군가를 마음 다해, 정성을 다해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랑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넓고 넓은 세상 가운데 내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닌데, 그 사람이 나의 마음과 같으리란 보장도 없다. 그뿐인가? 세상엔 뜻하지 않은 많은 사건들이 가득하고, 그중 어떤 것이 나와 상대방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지금 사랑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래서 위대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을 확률을 모두 이기고 누군가와 함께 사랑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위너이다. 여기 모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사랑의 어려움을 겪는다. 누군가는 외부의 상황 때문에, 누군가는 내면의 상황 때문에, 누군가는 다른 사람 때문에 사랑의 아픔을 겪는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들이 마음껏 사랑할 수 없음이 마음 아프다. 비 오는 가을밤, 그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에 살짝 동화되어 보면 어떨까? 사랑의 아픔을 느껴보는 것도 사랑의 기쁨을 누리기 위한 준비운동이 될 수 있다.



딥 블루 씨 The Deep Blue Sea, 2011


감독 테렌스 데이비스 Terence Davies

각본 테렌스 데이비스 Terence Davies

출연 레이첼 바이스 Rachel Weisz, 톰 히들스턴 Tom Hiddleston, 사이먼 러셀 빌 Simon Russell Beale

1950년 즈음의 런던, 존경받는 판사 윌리엄 콜리어의 아내로 살고 있는 헤스터는 남편과의 안정적이고 따뜻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열정이 결여된 그와의 삶은 헤스터를 다른 삶으로 이끈다. 그녀는 공군 파일럿으로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프레디 페이지를 만나면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성적인 열정에 사로잡히고, 그와의 관계를 눈치챈 윌리엄은 그녀를 추궁하지만, 이혼은 해주지 않겠다고 한다. 그렇게 8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헤스터의 생일 다음 날, 런던의 한 플랫에 프레디와 함께 세 들어 살고 있던 헤스터는 그가 여행을 간 사이,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내 집주인에 의해 발견되어 해프닝처럼 정리가 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여행에서 돌아온 프레디는 헤스터의 가운 주머니에서 그녀가 자신에게 쓴 마지막 편지를 발견하고는 그녀에게 화를 내고 나가 버린다.


윌리엄이 그녀에게 줄 수 있었던 것은 따뜻하고 안정적인 생활과 배려였다. 반면 프레디는 격정적이고, 감정적이며, 과거에 매여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헤스터가 잃고 살았던 사랑의 열정을 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윌리엄을 뒤로하고 프레디를 택했고, 두 사람은 8개월의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한다. 윌리엄은 그런 헤스터에게 여전히 따뜻한 손을 내밀지만, 그녀는 그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테렌스 래티건의 1952년도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줄 수 있는 것이 다른 두 남자와 사랑을 찾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프레디를 보낸 후 창가에 선 헤스터, 앞으로 그녀의 삶이 어떨지 상상하며, 내가 추구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어톤먼트 Atonement, 2007


감독 조 라이트 Joe Wright

각본 크리스토퍼 햄튼 Christopher Hampton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 Keira Knightley, 제임스 맥커보이 James McAvoy, 시얼샤 로넌 Saoirse Ronan, 로몰라 개리 Romola Garai

1935년 영국의 탈리스 저택. 탈리스 가의 막내딸인 브라이오니는 13살로,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가정부의 아들인 로비를 짝사랑한다. 로비는 탈리스 씨의 도움으로 브라이오니의 언니인 세실리아와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로비는 정원에 있는 분수 앞에서 세실리아와 말다툼을 하다 그녀가 들고 있던 꽃병의 깨트리고, 그녀가 깨진 조각에 발을 베이지 않도록 하고자 그녀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한다. 화가 나있던 세실리아는 분수대에 떨어진 조각을 찾으려 겉옷을 벗고 분수대에 들어가고, 자신의 방에서 창 밖을 내다보다가 로비와 세실리아의 모습을 지켜보던 브라이오니는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옷을 벗으라고 한 것으로 오해하고 만다. 이후 로비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자 쪽지를 써서 브라이오니에게 전달을 부탁하는데, 그가 장난으로 썼던 자극적인 단어가 들어있는 쪽지를 잘못 전달하고, 그 쪽지를 열어본 브라이오니는 로비에 대해 더 큰 오해를 하게 된다. 자신이 잘못된 쪽지를 전달했음을 깨달은 로비는 오해를 풀고자 세실리아에게 달려가고, 저택의 서재에서 세실리아는 로비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며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서재 밖에 떨어져 있던 머리핀을 보고 서재에 들어온 브라이오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로비가 그녀의 언니를 성폭행했다고 생각한다. 그날 저녁, 저택에 머물고 있던 쌍둥이 사촌이 사라졌다는 얘기에 로비, 세실리아, 브라이오니, 그녀의 오빠와 그의 친구 폴 마샬, 쌍둥이의 누나인 롤라까지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찾아 나선다. 그러던 중 르바이오니는 숲에서 롤라가 누군가에게 성폭행당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가 로비임을 확신한다.


여러 차례에 걸쳐 쌓인 오해와 어린아이의 고집이 만들어 낸 상상도 못 할 고통의 시간. '속죄'라는 제목마저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이 느껴지는 이야기. 13살짜리 소녀의 확신으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된 로비는, 그곳에서 전쟁터에 보내지고, 결국은 다시 세실리아를 만나지 못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어. 난 꼭 돌아갈 거야. 너를 찾고, 사랑하고, 너와 결혼해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 거야. The story can resume. I will return. Find you, love you, marry you and live without shame." 로비의 이 결심은 던커크의 어딘가에 그의 생명과 함께 묻히고 만다. 



셀부르의 우산 Les Parapluies de Cherbourg, 1964


감독 자크 드미 Jacques Demy

각본 자크 드미 Jacques Demy

출연 카트린느 드뇌브 Catherine Deneuve, 니노 카스텔누오보 Nino Castelnuovo, 안느 베르농 Anne Vernon

1957년 11월, 엄마와 함께 쉘부르에서 우산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17살의 주느비에브는 자동차 정비공인 20살의 기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사랑을 약속하고 첫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프랑스와즈라고 짓기로 한다. 그러나 주느비에브의 엄마는 그녀가 어리다는 이유로 두 사람을 사이를 반대한다. 그러던 중, 기는 입영통지서를 받고 입대를 앞두게 된다. 입대 하기 하루 전, 두 사람은 잠자리를 갖고, 기가 입대한 이후, 주느비에브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그에게 편지를 쓰지만, 답장을 받기가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주느비에브의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고, 그녀는 엄마와 함께 보석을 팔아 돈을 마련하러 보석상에 들렀다가 롤랑을 만난다. 주느비에브의 엄마는 그와 딸을 결혼시키려 하고, 배가 불러오는 주느비에브는 기와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속상해한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고도 그녀와 결혼을 하겠다는 롤랑과 결혼을 하고, 1959년 3월, 기는 마침내 군대에서 돌아온다.


어찌 보면 영화의 이야기는 매우 단순하다. 두 사람이 사랑을 했고, 남자는 군대에 갔으며, 여자는 그를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다. 서로가 없이는 못 살 것 같았던 두 사람은 시간의 흐름과 상대의 부재로 인해 서로가 없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 쓰루(sung-through)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전달되는 감정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뮤지컬은 멜로디가 그 역할을 대신해주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걸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저 사람의 감정은 무얼까, 저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하고. 주느비에브의 불안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선택에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기와 연락이 완전히 끊긴 것이 아닌데도 그를 두고 다른 사람과의 결혼을 선택한 것은 대체 어떤 마음에서였을까? 군대에서 돌아와 주느비에브가 떠난 것을 알고 방황하다 마들렌에게 청혼한 기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기와 주느비에브가 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은 바뀌었을까? 주유소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왠지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이 떠오르는 영화이다.



스윗 프랑세즈 Suite Française, 2014


감독 사울 딥 Saul Dibb

각본 사울 딥 Saul Dibb, 매트 차먼 Matt Charman

출연 미셸 윌리엄스 Michelle Williams, 마티아스 스콘아츠 Matthias Schoenaerts,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Kristin Scott Thomas, 루스 윌슨 Ruth Wilson, 샘 라일리 Sam Riley, 마고 로비 Margot Robbie

2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 프랑스는 독일군에 점령당하고 파리의 시민들은 도시를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부시 또한 독일군의 주둔지가 된다. 이곳에 살고 있는 루실은 단 두 번 만난 남편 가스통과 결혼했지만, 이내 그는 군인으로 전장에 나가게 되고, 현재는 시어머니인 앙젤리에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앙젤리에 부인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세를 놓고, 그 집세를 받으러 다니는데, 그녀에게 자비란 없다. 루실은 그런 시어머니의 행동 때문에 세입자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마을에 들어온 독일군들은 마을 사람들의 집에 나누어 살게 되고, 루실의 집엔 브루노라는 장교가 오게 된다. 적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예의 바르고 친절하기까지 한 브루노는 루실의 옆방에 머무르게 되는데, 루실은 매일 밤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그가 연주하는 곡이 무언지 궁금해한다. 두 사람은 정원에서 우연히 대화를 하게 되고, 이후 조금씩 가까워진다. 어느 날, 루실은 남편 가스통이 결혼 전부터 사귀던 사람이 있었고, 자신이 모르는 아이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한다. 그리고 브루노는 자신이 다른 독일군들과 같지 않다며, 자신과 공통점을 가진 사람은 오직 루실뿐이라며 그녀에게 다가간다.


루실과 브루노는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적으로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남편이 전장에서 상대하고 있는 자들 중 하나가 브루노인 것이다. 그러나 루실은 개인적으로 브루노를 알게 되며 그에게 끌리고, 시어머니와 남편에 대한 배신감은 그녀의 그러한 감정을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된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인만큼 서로를 향한 그들의 마음을 오래갈 수 없었다. 브루노에게 마음을 열었던 루실은, 한 사건을 계기로 그도 똑같은 독일군일 뿐이라며 애써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브루노는 다른 독일군들과 다를 바 없는 군인이었을지 몰라도, 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달랐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고, 그 의지를 실현할 용기가 있었다. 그래서 루실의 시점이 아닌, 브루노의 시점으로 바라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루실이 그가 작곡한 '프랑스 모음곡'을 들으며 그를 생각할 때, 그는 그녀를 어떻게 기억할까?



길 La Strada, 1954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Federico Fellini

각본 페데리코 펠리니 Federico Fellini, 툴리오 피넬리 Tullio Pinelli, 엔니오 플라이아노 Ennio Flaiano

출연 줄리에타 마시나 Giulietta Masina, 앤서니 퀸 Anthony Quinn, 리처드 베이스하트 Richard Basehart

떠돌이 차력사인 잠파노는 1만 리라를 주고 젤소미나를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데려간다. 순수하고 순진한, 그리고 약간은 지능이 떨어지는 것 같은 젤소미나는 잠파노와 함께 마을과 마을 사이를 떠돌아다니며 장터에서 차력쇼를 하며 돈을 번다. 잠파노는 그녀에게 드럼과 트럼펫, 춤을 가르치고 그와 함께 공연하게 한다. 그러나 잠파노는 순수하고 여린 젤소미나에게 너무 거칠기만 하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일 마토라는 곡예사를 만나게 되고, 그가 일하고 있던 유랑 서커스단에서 함께 일하게 된다. 그러나 장난으로 자꾸만 잠파노를 자극시키는 일 마토 때문에 두 남자는 싸움을 벌이게 되고, 잠파노는 유치장에 갇히기도 한다. 유치장에서 나온 잠파노와 젤소미나는 다시 자신들만의 길을 가는데, 우연히 차를 수리하고 있는 일 마토를 다시 만나게 된다. 잠파노는 그를 보자마자 싸움을 시작하고, 그에게 맞던 일 마토는 차의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그만 죽고 만다. 잠파노는 그의 죽음을 은폐하고,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던 젤소미나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고 만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은 가을에 어울리는 영화이다. 무언가 애잔하고 그립고 쓸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사랑 이야기에 넣어도 될까에 대해서는 고민이 있었다. 과연 잠파노는 젤소미나를 사랑했을까? 젤소미나는 잠파노를 사랑했을까? 이걸 사랑이야기라고 해도 될까? 그런데 마지막 장면의 잠파노를 보면서 어쩌면 그녀를 사랑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감정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몰랐을 수 있고,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몰랐을 수 있지만, 그의 마음을 풀어놓고 보면 그걸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직도 그는 그녀를 버려둔 그곳, 그곳의 그녀에 대한 꿈을 가끔 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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