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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Eponine Aug 09. 2022

나만의 작고 소중한
에든버러 이야기

Prologue: 첫 만남

우리 인생에는 얼마나 많은 만남이 있을까? 그리고 그 만남 가운데 마음속에 남는 것은 얼마나 될까? 어떤 만남은 은밀하게 다가와 큰 자리를 남기고, 또 어떤 만남은 성큼성큼 다가와 조용히 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은 어땠는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를 처음 만난 건 프라하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F항공사의 여객기 안이었다. 항공사의 오버 북킹 덕에 전날 나는 비행기 좌석지정을 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한 몰골로 프라하의 바츨라프 하벨 공항으로 향했다. 앞으로 어떤 만남이 이루어질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항공사 데스크에서 탑승권을 받아 비행기에 올랐다. 전날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기 때문에 서울로 오는 시간 내내 나는 주로 잠을 잤다. 그러다 깨면 잠시 영화를 보고, 그리고 다시 자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서울에 가까워질 무렵,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다른 누군가를 보는 것처럼 그렇게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자꾸만 그에게 눈이 갔다. 무언가 위엄 있고 강해 보였다. 평소 내가 그리 좋아하는 이미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계속 보게 되었다. 결국 나는 서울에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 그를 계속 눈에 담았다. 사실 내 의지는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그를 피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와의 첫 만남은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2주간의 여행을 정리하며 시차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그가 남긴 잔상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며칠 동안은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점점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무슨 일을 할까? 그런 호기심은 서서히 보고 싶은 마음으로 발전했고, 그를 너무 보고 싶고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그를 만나기로.


The Vennel에서 바라본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


뭔가 설레는 로맨스가 시작될 것 같았겠지만, 사실 '그'는 다름 아닌 '에든버러(Edinburgh)'다. 생각해 보니 에든버러라는 도시와 나의 첫 만남이 살짝 설레는 로맨스 같아서 이 도시를 '그'로 치환해 보았다. 

때는 3월이었다. 봄이길 기대하면서 간 프라하는 냉혹한 겨울이었다. 날씨 때문에 그랬던 것인지 뭔가 만족스러우면서도 불만족스러웠던 2주간의 여행을 끝내고 서울로 오는 비행기를 탔다. 서울에 도착하기 약 한 시간 전부터 비행기 내부의 모니터에는 그해 여름부터 신설되는 헬싱키-에든버러의 새 노선에 대한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광고는 에든버러의 상징인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을 대표 이미지로 내보냈다. 중세 성벽에 거대하게 올라앉은 세피아 빛의 성이 굉장히 웅장하게 다가왔다. 거대하고 웅장한 것보다는 내가 마음에 품을 수 있을 법한 아기자기함과 사랑스러움을 더 좋아하는 나인데, 이상하게도 에든버러의 그 이미지가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집에 와서도 잊히지 않던 그 이미지는 결국 나에게 '그곳은 어떤 곳일까'를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때부터 나는 그 도시에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지도를 수십 번씩 들여다보며 로열 마일(Royal Mile)을 걸어 홀리루드(Holyrood)로 향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고, 포토벨로 비치(Portobello Beach)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여행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결국 나는 두 달만에 다시 짐을 싸서 에든버러로 향하기로 했다. 나는 그를 만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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