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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Eponine Oct 10. 2022

나만의 작고 소중한 에든버러 이야기 Ep.04

에든버러의 중심, 프린시즈 스트리트 Princes Street

오랜 비행 덕분이었는지, 다행히 시차는 큰 무리 없이 적응했다. 첫날 저녁에 도착해서 일찍 잠을 잔 것이 도움이 되었나 보다. 아침으로는 간단하게 토스트와 시리얼을 먹고 쉬엄쉬엄 에든버러의 거리로 나섰다. 날씨가 약간 흐리기는 했지만, 걱정했던 것만큼 춥지는 않았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도 관광객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연스러운 차림으로 숙소를 나섰다. 내 여행의 목표 중 하나는 늘 현지인처럼 보이는 것이다. 꼭 그래 보여야 한다는 것보다 그저 현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싶은 작은 소망 같은 것이랄까? 리스 스트리스(Leith Street)를 따라 나와 오른쪽으로 꺾으니 프린시즈 스트리스(Princes Street)의 시작점이다. 그렇게 동쪽 끝에서부터 프린시즈 스트리트를 걷기 시작했다.



에든버러를 북과 남으로 나누면, 북쪽의 뉴 타운(New Town)과 남쪽의 올드 타운(Old Town)으로 나뉜다. 뉴 타운이라고 해봤자 18세기 이야기니, 우리가 생각하는 '뉴'와는 꽤 거리감이 있다. 프린시즈 스트리트는 뉴 타운의 최남단이라고 보면 된다. 뉴 타운이 개발되기 전, 올드 타운에는 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이 나란히 살기도 했고, 여러층의 건물에 젠트리와 하층민이 모여 살기도 했다. 이는 안전뿐만 아니라 위생 상태까지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작가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로빈슨 크루소 작가)는 '이 세상의 어떤 도시도 이처럼 많은 사람이 이토록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의회가 통합된 이후, 에든버러의 정치권력은 런던으로 이동했고, 산업혁명에 따른 상업도시로서의 런던은 매우 매력적인 도시였기에 부유층 다수가 에든버러를 떠나 런던으로 향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뉴 타운이 탄생했다. 여섯 번이나 에든버러의 시장(Lord Provost of Edinburgh)을 역임했던 조지 드러몬드(George Drummond)는 시의회에 도시의 현대화를 위한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그즈음이던 1751년, 로열 마일(Royal Mile)의 주거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는 그가 주장하던 에든버러 현대화 작업의 필요성에 힘을 실어주었다. 1752년에는 '에든버러 공공 작업을 이행하기 위한 제안들(Proposals for carrying on certain Public Works in the City of Edinburgh)'이라는 보고서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런던이나 다른 유럽 도시들에 비해 에든버러가 가지고 있는 취약점을 지적하고, 영국 북부의 수도로서 에든버러에 커다란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 보고서는 그 커다란 변화로써 두 가지를 이야기하였는데, 바로 북쪽으로의 도시 확장과 북쪽 호수(North Loch)의 배수였다. 이는 뉴 타운 형성의 토대가 되었고, 마침내, 1766년, 100 에이커의 주거시설 건설에 대한 디자인 공모가 시작되었다.


프린시즈 스트리트는 이런 가운데 생겨났다. 물을 뺀 북쪽 호수는 원래 개인 정원으로 사용되었지만, 주변이 상업화되면서 19세기 후반, 시의회가 사들였고, 현재의 프린시즈 스트리트 가든이 되었다. 프린시스 스트리트는 원래 에든버러 수호성인의 이름을 따라 '세인트 자일스 스트리트(St Giles Street)'로 불렸으나, 런던의 불미스러운 지역을 생각나게 한다는 조지 3세 왕의 말에 따라 웨일즈 왕자를 기념하는 '프린시즈 스트리트'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프린시즈 스트리트를 걷다 보니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썼다고 하는 '발모럴 호텔(Balmoral Hotel)', 작가 월터 스콧을 기념하는 '스콧 기념탑(Scott Monument)', 스코틀랜드의 기록물 보관소인 General Register House, 그리고 저 멀리 에든버러 성이 눈에 띈다. 이 거리는 런던의 옥스퍼드 스트리트, 우리나라의 명동이나 강남역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각종 쇼핑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애플샵에서부터 드럭스토어, 패스트푸드점, 서점 등 각종 가게들이 모여있다. 그 가운데 제너스 백화점(Jenners)이 있다. 제너스는 1838년 처음 문을 열었으나, 1892년, 화재로 원래의 건물이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895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제너스는 오랫동안 독립 백화점으로써, 여성들에게는 점심이나 에프터눈 티 모임의 장소이기도 했고, 특히 장난감 매장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재미를 주를 공간이기도 했다. House of Fraser가 소유하고 있다. 


수많은 매장들을 지나 마침내 내가 문을 열고 발걸음을 옮긴 곳은 영국의 서점 체인인 '워터스톤즈(Waterstones)'였다. 어느 도시를 가도 가장 호기심을 갖고 찾아가는 곳은 서점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 중 하나가 책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속도가 빠르지 않아, 늘 책을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지만, 내 취향의 책들이 가득히 들어찬 책장 앞에 서서 이번엔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순간을 매우 사랑한다. 아침의 서점은 손님 하나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슬슬 둘러보며 책들을 구경했다. 예쁜 양장본 책에 제일 먼저 눈길이 갔다. 펭귄 클로스바운드 클래식(Penguin Clothbound Classics)이다. 전부 다 사서 책장에 넣어놓고 싶은 욕심이 가득 찼다. 그러다 그만 탁자 위에 놓인 책을 건드려 떨어뜨리고 말았다. 내 잘못인데도 친절한 점원은 자기가 정리하겠다며 미소를 보여주었다. 낯선 곳에서 받는 친절이라 그런지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왜 하필 네모난 탁자가 아닌 둥근 탁자에 책을 올려놔서 위험한 순간을 만드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는 했다. 

서점을 나와 맞은편 길로 건너갔다. 역시나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스콧 기념탑이다. 작가에게 헌정된 기념탑으로는 가장 높은 61미터의 탑이다. 뾰족뾰족하니 무언가 날카로운 느낌이 든다. 살짝 시선을 돌리니 예쁜 꽃들이 만개한 프린시즈 스트리트 가든(Princes Street Garden)이 보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파랗게 개어 있다. 우와...... 그림엽서 같다. 내게 재주만 있다면 이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고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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