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유람기 아들 둘과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
태풍만큼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자연재해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2003년에 우리나라를 강타해 큰 피해를 준 태풍 매미의 무서움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기도 했다. 아직 한반도가 직접적인 영향권이 아니었을 때 부산으로 출장을 가 있었다. 일을 끝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태풍 매미가 북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비행기는 결항되지 않고 원래 일정대로 출발했다. 그리고 약 50분 정도 되는 비행시간 동안 나뿐만 아니라 모든 승객이 태풍 매미의 무서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 흔들림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비명을 지르는 승객도 있었다. 놀이공원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이킹인데, 50분 내내 바이킹을 타는 기분이었다. 오죽하면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 모든 승객이 약속한 것처럼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을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태풍이 발생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곳은 제주도가 아닐까 싶다. 천혜의 섬이라는 제주가 태풍 앞에서 만큼은 최대의 피해지가 되는 것이다. 예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도 언제나 피해가 발생한다. 자연 앞에 서 인간이 겸손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제주에 머무르는 동안 몇 차례 태풍 소식이 있었지만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제8호 태풍 프란시스코도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 제주와 한반도를 잘 피해 갔다. 우리는 태풍 때문에 사흘이나 계속된 바닷가 물놀이를 접고 오랜만에 관광객 모드로 서귀포 일대를 둘러보기로 했다. 우선은 위미리에서 가장 가까운 쇠소깍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쇠소깍은 위미리에 있는 제주 집과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서귀포시 하효동에 있는 효돈천 하구를 말하는데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하여 바닷물과 만나 깊은 웅덩이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물 색깔이 참 특이하고 예쁘다. ‘쇠소’는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의 연못을 ‘깍’은 마지막 끝을 뜻한다고 한다. 양쪽에 기암괴석이 늘어서 있고 그 위로 숲이 우거져 있어 신비한 느낌을 준다. 이런 이유인지 예전에는 기우제를 지내는 신성한 땅이라고 해 함부로 출입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올레 5코스와 6코스가 연결되는 곳이어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비가 제법 오는 날씨였지만 전통 조각배 테우를 체험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쇠소깍의 비경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감탄했지만 이 날의 주인공은 단언컨대 쇠소깍 해변이었다. 세력은 많이 약해졌지만 프란시스코의 영향으로 구름과 파도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왔던 바다 행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준, 큐 형제는 해변에 있는 작고 동글동글한 돌들을 구경하며 이곳저곳을 거닐고 있었다. 반대로 우리가 있는 곳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황홀한 체험이었다. 만약 다른 차원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아마 태풍 걱정으로 집에만 있었다면 이런 경험은 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뜻밖에도 태풍에게서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쇠소깍 해변을 나와 5분 거리에는 낭만적인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마주 보고 있는 하효항이 나온다. 올레 6코스에 속해 있는 이곳은 트릭아트 포토 존이 있어 아이들과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마침 비도 그쳐 이곳에서 문제의 퀵 보드를 아이들에게 꺼내 주고 아내와 나도 등대까지 산책을 했다. 해 질 녘의 하효항 등대는 퍽 운치 있어 보였다. 준, 큐 형제는 누가 먼저 등대까지 가는지 시합을 하고 있었다. 이런 시합을 할 때면 항상 자기만 유리한 방향으로 게임의 룰을 정하려고 한다. 준과 큐를 각각 보면 참 착한 아이들이지만 둘이 경쟁이 붙으면 꼭 끝이 좋지 않다. 사내아이들이라 그런지 승부욕이 장난이 아니다. 그 에너지를 제발 다른 곳으로 쏟아부으면 좋을 텐데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벌써 옥신각신한다. 아빠가 나설 차례이다. 출동!
<아빠가 알아두면 좋을 태풍 이야기>
태풍은 적도 부근이 극지방보다 태양열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생기는 열적 불균형을 없애기 위해, 저위도 지방의 따뜻한 공기가 바다로부터 수증기를 공급받으면서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동반하며 고위도로 이동하는 기상 현상이다. 적도 인근 해상의 공기는 고온다습하고 불안정하다. 이에 따라 기압이 주변보다 약한 곳이 생기면 인근의 공기가 몰려들어 상승하면서 자그마한 소용돌이를 이루며 적란운을 만든다. 이 같은 소용돌이가 북동 무역풍의 영향으로 한 곳에 모여 세력이 커지면 태풍의 씨앗이 된다. 일단 태풍의 씨앗이 생기면 상승기류로 발생한 적란운이 비를 내리면서 많은 열을 방출하고 이 열은 상승기류를 다시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은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세력이 강해지고 마침내 태풍이 된다.
태풍은 발생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태평양 남서부에서 발생하여 우리나라 쪽으로 불어오는 것을 태풍, 대서양 서부에서 발생하는 것을 허리케인, 인도양에서 발생하는 것을 사이클론,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에서 발생하는 윌리윌리가 있다. 세계기상기구(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는 열대 저기압 중에서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이 33m/초 이상인 것을 태풍(TY), 25~32m/초인 것을 강한 열대 폭풍(STS), 17~24m/초인 것을 열대 폭풍(TS), 17m/초 미만인 것을 열대 저압부(TD)로 구분하였다. 이렇게 4단계로 분류된 태풍 중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오는 태풍은 열대 폭풍 이상을 일컫는다.
태풍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것은 1953년부터인데 1978년까지는 여성의 이름을 붙였다가 그 이후부터 남자와 여자 이름을 번갈아 사용했다. 1999년까지는 미국 태풍합동경보센터에서 정한 이름을 붙였지만 아시아 각국 국민들에게 태풍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아시아 각국의 고유 이름으로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 동경태풍센터에서 부여하며, 각 국가별로 10개씩 제출한 총 140개를 5개씩 28조로 편성하여 순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2000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태풍의 이름에는 북한과 남한에서 제출한 이름도 각각 10개씩 들어 있다. 북한에서 제출한 기러기, 도라지, 갈매기, 매미, 메아리, 소나무, 버들, 봉선화, 민들레, 날개, 그리고 남한에서 제출한 개미, 나리, 장미, 수달, 노루, 제비, 너구리, 고니, 메기, 나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