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유람기 아들 둘과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
까도 까도 속을 보여주지 않는 양파처럼 제주의 비경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제주를 좋아하고 제주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번 한달살이를 하면서 내가 아는 건 제주가 섬이라는 사실 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창피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했는데 정작 내가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이었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곳을 찾아보고, 자주 다녔던 곳에 대해서도 더 공부할 기회가 생겼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오늘도 제주 집을 나선다.
곽지, 김녕, 표선, 중문색달, 함덕, 이호테우, 마지막으로 금릉까지 제주 해수욕장 도장 깨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갈 즈음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제주 남서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에는 그간 멀다는 핑계로 가보지 못했던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이 있었다. 사실 위미리에 있는 제주 집에서 거리상으로 따져보면 성산 일출봉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심리적으로 매우 멀게 느껴져 그간 찾지 못했다. (물론 금릉 탓도 있다.) 그래서 오늘은 작심하고 용머리해안과 산방산을 찾아보기로 했다.
설문대할망이 한라산 정상 암봉을 뽑아 던진 것이 남쪽 해안까지 날아와 꽂힌 것이 산방산이다. 물론 전설이다. 산방산과 백록담 둘레가 얼추 비슷해 이 전설에 신빙성을 더해주지만 사실은 아니다. 산방산과 한라산은 태어난 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퀴즈입니다. 누가 먼저 태어났을까요?) 또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이 원래 하나의 덩어리였다는 전설도 있다. 중국 풍수사 호종단이 제주의 혈을 막기 위해 용 꼬리와 등을 끊었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전설일 뿐이다.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은 지질학적 특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용머리 해안이 산방산 보다 먼저 태어났는데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수성화산 지형이다.
용머리 해안은 입장료 (어른 2천 원, 어린이 1천 원)를 내고 좁은 통로를 따라 내려가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 세기를 거슬러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당장 옆으로 공룡 몇 마리가 지나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분위기다. 이곳만큼은 바다가 주인공이 아니다. 높이 20미터의 사암층이 600미터에 걸쳐 웅장한 절벽을 이루고 있는 암석층이 주인공이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풍광이었다.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내려오던 아내와 준, 큐 형제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길 닿는 곳마다 기하학적인 무늬가 아름답고 신비스러웠다. 해식동굴과 돌개구멍 등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 낸 위대한 작품에 준, 큐 형제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파도에 물벼락을 맞아 옷이 온통 젖기도 했다. 그래도 마냥 즐거워했다. 해안을 따라 걷다가 출출해진 우리는 해녀 삼춘이 파는 싱싱한 해물을 먹어보기도 했다. 문어, 소라, 멍게를 한 접시 푸짐하게 2만 원에 팔고 있었다. 준, 큐 형제도 문어는 잘 먹었다. 나는 강원도 출신답게 해산물에 약해 아직 멍게를 먹지 못했다. 아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해안 길을 빠져나오면 큰 범선이 하나 보인다. 하멜 표류기로 알려진 네덜란드 상인 핸드릭 하멜의 기념관이다. 하멜은 13년간 조선에 살다가 수차례 시도 끝에 탈출해 조선의 존재를 서양에 알렸다. 350년 전 낯선 이방인의 눈에 비친 조선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용머리 해안에서 올려다보는 산방산은 멀리서 볼 때와는 다르게 크고 위엄 있게 보였다. 얼마 전 올레 7코스를 다녀온 우리는 누구도 산행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강철체력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산방산에 도전하는 대신 산방산 분식집에서 옛날 팥빙수를 먹으며 쉬었다 가기로 했다. 아내는 저녁도 먹어야 하니 작은 것으로 주문하라고 했다. 남기면 아깝지 않겠냐며. 멍게를 먹은 사람은 배가 부르겠지만 나도 배가 고프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말 대신 큰 걸로 주문하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정작 팥빙수가 나오니 숟가락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빨리 사라져 버렸다. 달달한 옛날 팥빙수가 맛있기도 했지만 다들 덥고 지친 탓이었다. 다행히 날이 좋아서 아이들 옷은 그사이 다 말랐다. 용머리 해안 주차장에는 작은 놀이공원이 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바이킹을 타자는 아이들의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알아두면 좋을 용머리 해안 전설 이야기>
중국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만리장성까지 쌓아 놓았지만 이웃 나라에 새로운 제왕 감이 나타날까 봐 늘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늘 천기를 살펴보며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 날 진시황이 지리서를 펼쳐 놓고 보니 남방국 제주의 지세가 심상치 않았다. 곳곳에 혈(穴)이 있어 영웅이 쉴 새 없이 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진시황은 제주에 영웅이 나지 못하도록 손을 써야겠다고 생각해 풍수사 호종단을 시켜 제주의 혈을 끊으라고 지시를 내렸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을 두루 살펴본 호종단은 먼저 용의 꼬리 부분을 한칼로 끊고, 이어서 잔등이 부분을 두 번 끊어 버렸다. 그러자 바위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산방산이 며칠을 울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제주도에 더 이상 왕이 나지 않게 되었다. 호종단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탄 배는 한라산신이 일으킨 바람에 서쪽 바다에 침몰한다. 그곳이 지금의 차귀도 앞바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