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거문오름

탐라유람기 아들 둘과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

by 조이홍

제주 한달살이 준비 시절 공부하는 마음으로 몇 권의 책을 사 읽어 두었다. 그중 ‘제주, 오름, 기행’ (북하우스 / 손민호 지음)은 오름에 대한 무지를 일깨워 준 고마운 책이다. 책에 나온 오름 모두를 가보고 싶었지만 특히 거문오름, 다랑쉬오름, 섯알오름, 군산, 용눈이오름, 서우봉 등은 꼭 가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각각 다른 특색을 가진 개성 있는 오름들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중 거문오름이 가장 궁금했다. 무엇이 그곳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게 하였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거문오름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틀 전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홈페이지나 전화로 예약을 해야 한다. (탐방료는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으로 탐방 당일 매표소에서 구입하면 된다.) 하루 탐방인원을 450명으로 제안하고, 자연유산해설사가 동행한다. 화요일은‘휴식의 날’로 입장이 금지된다. 우리는 제주에 내려오자마자 예약을 했는데, 예약 당일 호우경보 재난 문자까지 받는 최악의 기상조건이라 집 밖에 나오지도 못했다. 두 번째 예약 때도 비는 왔지만 아내가 미리 준비한 우비를 입고 탐방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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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은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해설사가 동행하고 인원도 엄격히 통제하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는 과정 자체가 한 편의 영화 같다. 유네스코 실사단이 도착하기 직전 2005년 11월, 구좌읍 월정리에서 전신주 교체 작업 중 땅이 거지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때 뚫린 구멍 아래에 태초에 숨어 있던 거대한 동굴지대가 발견되었다. 이 동굴이 바로 ‘용천동굴’로 용암동굴이 석회암 동굴의 특성까지 함께 가지고 있어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것이다. 실사단은 단 5m만 들어가 보고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을 확정했다고 한다. (실사단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이 동굴을 최대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동굴에서 8세기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최소 10만 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용천동굴이 발견되면서 용암동굴을 해산한 거문오름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해설사가 동행하는 오름 기행은 이런 설명들을 현장에서 들을 수 있어 참 좋았다.


거문오름은 정상코스와 분화구 코스를 해설사와 함께 걷는다. 약 5.5km로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이후 약 1시간 정도 능선을 걷는 코스는 탐방객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비가 제법 왔지만 한 명도 (심지어 일흔이 넘은 어르신도) 포기하지 않고 전 코스를 함께 걸었다. 하지만 산행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아내다. 그 날 복장을 좀 운동선수처럼 입은 탓도 있겠지만 걷는 내내 해설사 바로 뒤에서 씩씩하게 걷던 아내를 모두 태릉 선수촌에서 전지훈련 온 운동선수로 착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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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은 굼부리(분화구)를 내려가야 한다. 3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르는데 이때부터 거문오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깊고 깊은 원시림으로의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약 300여 종의 식물들이 거문오름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고 하는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인 데다 비까지 내려 자못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사진을 찍다 일행과 뒤쳐진 나는 순간 당황해 있는 힘껏 뛰어가 그들과 다시 합류하기도 했다. 아내 말고는 무서운 것이 없는 나였는데, 혼자 좀 민망하기도 했다. 아무튼 거문오름은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었다. 거문오름 굼부리 일대는 화산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 지대로 숲과 덤불 등이 다양한 식생을 이루는 이른바 곶자왈 지역이다. 일 년 내내 기후가 일정하여 아열대, 난대, 온대 기후의 식물이 공존한다. 화산탄(용암의 거품 덩이가 공중에서 굳어져 땅에 떨어진 것)도 볼 수 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 때 군사시설로 만든 갱도 진지, 병참도로도 볼 수 있어 역사적 가치 또한 지니고 있다. 옛 숯가마터도 남아 있어 제주민의 삶의 애환도 엿볼 수 있다. 탐방로 끝에 깊이 35m의 수직동굴이 있는데 비가 오고 미끄러워서 가지 않았다. 해설사가 아내를 보며 다녀와도 좋다고 했는데 준, 큐 형제가 이미 다른 일행과 함께 이동해 안타깝게도 가지 못했다. 절대 무서워서 가지 않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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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이 끝난 후 열심히 따라오고 설명도 잘 듣던 준, 큐 형제를 예쁘게 본 해설사가 인근 식당을 소개해 주었다. 지역 마을에서 운영하는 식당인데 맛도 좋아 즐겨 찾는 곳이라고 했다. 마침 점심시간이고 배도 많이 고픈 터였는데 잘됐다 싶어 바로 찾아갔다. 우리 가족 입맛에 딱 맞는 최고의 식당이었다. 궂은 날씨 때문에 맑은 날 거문오름에 다시 한번 오려고 했는데, 꼭 와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아빠가 알아두면 좋을 유네스코 3관왕 제주 이야기>


생물권 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제주도는 유네스코가 인증하는 3관왕을 달성했다. 제주는 모든 사람이 함께 가꾸고 보전해야 하는 소중한 섬이다.


세계유산이란 훼손되면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없고, 인류 전체를 위해 공동으로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형의 유산을 말한다. 제주도는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이라는 이름으로 2007년 등재되었다. 유네스코는 제주도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암동굴로서 뛰어난 경관과 지질학적 가치가 있고, 성산일출봉은 해안 요새와 같이 극적인 경관과 화산 분출을 이해하는 가치가 있음을 높게 평가했다. 한라산은 주상절리와 백록담과 같이 기암괴석이 발달해 있고 계절에 따른 경관의 가치가 탁월하다고 평가하였다.


세계지질공원은 지질학적으로 탁월하고 경관이 아름다운 자연을 대상으로 역사, 문화, 생태 등의 지역자원과 결합한 지질관광을 통해 지역경제 발전을 추구하고자 만들어졌다. 제주도는 180만 년 전부터 최근까지 발생한 화산활동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경관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2010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다. 지질공원 범위는 제주도 전체이며 한라산, 성산일출봉, 만장굴을 비롯해 서귀포층, 천지연폭포, 중문대포주상절리대, 산방산, 용머리, 수월봉, 우도, 비양도, 선흘곶자왈이 대표명소로 지정되어 있다.


유네스코는 자연이 더 이상 인간에 의해 파괴되지 않고 더불어 공존할 수 있도록 1971년 생물권 보전지역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인간이 자연을 잘 보전함으로써 자연으로부터 경제적 혜택을 얻고, 여기서 얻은 이익을 다시 자연을 보전하는데 이용하는 지속 가능한 공존을 추구한다. 생물권 보전지역은 생물종이 풍부하고 청정하다고 유네스코가 인정한 곳으로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질 뿐만 아니라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재배한 친환경 생산물들을 더 많이 판매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뿐만 아니라 설악산, 신안다도해, 광릉숲, 고창군 등 5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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