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

한뼘소설

by 조이홍

오늘도 아르바이트에 영혼을 갈아 넣은 미연.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문득 지난겨울에 일했던 작은 커피숍 여사장님이 그녀에게 해 준 말이 떠올랐다. 무슨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적당히 하라고. 사장이 안 보면 농땡이도 좀 피우라고…. 미연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선택한 일인 만큼 잘 해내고 싶었다. 생명을 살리는 거창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너무 초라해졌다. 불확실한 이 세계에서 그녀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남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시키고 싶었다.


지친 몸으로 현관문을 반쯤 열었을 때 평소와는 다른 묘한 기류가 느껴졌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민감해진 탓이라 여겼다. 하지만 공기의 밀도가 여느 날과 사뭇 달랐다. 미연은 잠시 머뭇거렸다. 이대로 문을 닫고 달아나는 게 현명할지도 몰랐다. 이 시간에 어디를? 열 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오롯이 그녀만을 위한 안식처였다.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세상에 하나뿐인.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자 그녀 안에서 용기라 부를만한 무언가가 샘솟았다. 미연은 문을 활짝 젖혔다. 그때 문 앞 자동 센서등 불이 꺼졌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들고 있던 우산을 머리 위로 휘휘 저었다. 다시 불이 들어왔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현관 안으로 들어서 재빨리 스위치를 켰다.


신발을 신은 채 집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오전 아르바이트로 아침 일찍 나가도 항상 집안 정리를 끝내 놓았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지만, 책상이 그녀의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반듯하게 올려놓은 책 <12가지 인생의 법칙>이 미묘하게 틀어져 있었다. 누군가 손댄 흔적이었다. 인터넷에서 본 무서운 뉴스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순간 그녀의 시선이 작은 옷장에 닿았다. 재활용 천으로 만든 옷장은 사람 한 명 숨을 만큼 공간이 넉넉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퍼가 미세하게 열려있는 게 보였다. 미연은 떨리는 손을 간신히 부여잡고 우산 끝을 옷장으로 향했다. 우산 끝이 파르르 떨렸다. 손잡이를 쥔 두 손을 더욱 세게 움켜잡았다. '툭' 하고 옷장을 밀쳤다. 우산 끝에 느껴지는 단단함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알고 싶은 건 우산이 차마 해 줄 수 없는 일이었다. 심장이 마구 날뛰었다. 아까부터 한 번도 깜빡거리지 않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똑' 하고 떨어졌다.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할까? 거리로 뛰쳐나가 도움을 청해 볼까? 경찰서에 신고할까? 짧은 순간에도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하나씩 떠오르고 사라져 갔다. 미연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새 그녀의 손이 옷장 지퍼에 닿았다. 차가운 금속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온몸에 전해졌다.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이번에는 몸 전체가 부르르 떨렸다. 물러날 곳이 없었다. 아니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지퍼를 잡아당겼다.


"이야옹~'


가지런히 개어 둔 미연의 옷 사이에서 작은 몸을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동그랗게 말고 힘없이 울음을 내뱉는 녀석이 보였다. 맞다. 너였구나, 너였어! 미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길거리에서 최후를 맞이했을지도 모를 녀석. '치즈'라는 이름을 갖게 된 고양이. 동물병원에 꼬박 2주간 입원했다가 어제 비로소 퇴원했다. 미연도 녀석도 함께 사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녀는 갸르릉 거리는 작은 생명체를 안아 가슴에 품었다. 서툰 손이 여전히 떨렸다. 치즈는 따뜻했다. 콩닥콩닥 심장 박동도 느껴졌다. 더 이상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가족이 생겼다. 작은 원룸이지만 둘을 위한 안식처가 되어줄 터였다. 미연은 치즈와 함께 할 새로운 삶에 왠지 가슴이 설렜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그녀였다.




'침입자'라는 제목으로 여러 작가님과 독자 여러분을 '낚시' 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걸리셨나요? '청년과 반려 동물'이라는 주제를 떠올리고 쓴 마지막 글이었습니다. 'OO 3부작' 뭐 이런 걸 좋아하다 보니 3부작으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가족(이별)-가족의 탄생(만남)-침입자(동거) 이렇게 3부작을 통해 사람과 동물, 다른 종(種)이 가족이 되고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이별하는 과정을 담아 보았습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든, 반려동물이든 글쓰기든 있으면 좋겠습니다. 외롭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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