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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Oct 20. 2021

별난 재미가 있는 이호테우 해변

스마트폰 없이 아이들과 신나게 놀기

 여행 중에 가끔 아이들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때문에 마찰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놈의 게임이 문제다. 집에서는 각자가 해야 할 몫(공부)이 있고, 그 몫을 한 주 동안 잘 해낸 아이한테만 주말을 활용해 게임을 허락했다. 시간도 엄격히 적용했다.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그런대로 자리를 잡아 잘 지켜졌다. 하지만 여행 중일 때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모처럼의 여행에서 아이들에게도 자유를 주고 싶어 게임을 허용했다. 물론 시간을 제한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열심히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여행까지 와서 팍팍하게 굴 필요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보다 게임이 먼저인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기는커녕 작은 액정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몇 차례 경고와 눈치를 주었는데도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면 꼭 문제가 발생했다. 아내의 계엄령 선포!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는 그 즉시 회수되었다. 아이들 입이 오리주둥이처럼 삐죽 내밀어졌지만 아빠로서도 수습할 방법이 없다.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는 아내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아이들이 여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어른들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풍경은 아이들에게는 잠깐 스쳐가는 장면일 뿐이다. 자연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지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지 않으면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다. 그럴 바에야 아이들 눈높이에서 즐길 수 있는 진짜 재미를 찾아주는 편이 훨씬 낫다. 이런 의미에서 이호테우 해변은 우리 가족에게 별난 놀이와 별난 재미가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사실 이호테우 해변은 그 명성에 비해 우리 가족이 잘 찾지 않는 해변이었다. 특별히 나쁜 기억이나 선입견이 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짚이는 데가 있었다. 일종의 심리적인 ‘기피’ 현상이었다. 이호테우에 이르는 길은 제주 국제공항에 닿는 길과 거의 일치했다.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인 셈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애써 그 길은 피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제주를 떠나기 싫은 마음에서 이호테우 해수욕장은 우리 가족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천연 테마파크처럼 신나고 재미있는 게 가득한 해변을 말이다. ‘테우’는 옛 제주인들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해초를 채취할 때 사용하던 통나무 뗏목을 말한다. 제주 곳곳에서 테우를 볼 수 있지만, 아예 지명에 들어간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8월에 열리는 테우 축제는 현지인과 관광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흥겨운 축제다. 맨손 고기 잡기, 테우 노 젓기 대회와 승선 체험, 원담 고기잡이 등 전통적인 놀거리와 볼거리가 가득하다. 행사에 참여한 아이들도 더없이 즐거워하지만, 부모님들도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동심으로 돌아간 어른들의 까르륵까르륵 웃음소리가 참 듣기 좋았더랬다. 

<바다는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잊게 한다. 여행의 이유 중 하나다.>

 이제 이호테우에서만 즐길 수 있는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놀이를 소개해 볼까 한다. 별도의 준비물은 필요 없다. 어른과 아이가 부담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다. 놀이 이름은 '비행기(정확히는 항공사)를 맞춰봐'이다. 방법도 무척 간단하다. 제주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이호테우 해변을 지날 때쯤이면 여전히 고도가 높지 않기에 항공사 식별이 가능하다. 멀리서 엔진 소리가 나고 비행기가 보이면 한 사람씩 항공사 이름을 말하면 된다. 비행기가 머리 위를 지나갈 때면 항공사를 알아볼 수 있다. 아이들도 항공사 고유 문양과 색깔을 잘 알고 있기에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정답을 맞힌 사람이 틀린 사람에게 벌칙을 내리면 끝이다. 비행기는 10분~15분 간격으로 이륙하므로 긴장감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놀이에 빠질 수 없는 벌칙도 돈가스나 고속도로, 인디언밥 등으로 정하면 비록 아이들과 함께하는 놀이라도 승부욕이 활활 불타오른다. 돈가스 서너 번 당하면 부자 관계도 소용없다. 항공기 조종사가 꿈이었던 첫째 아이는 엔진 소리만 듣고도 기종을 맞힐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정작 놀이에서는 가장 많은 벌칙을 받았다. 운이 따라주어야 하는 놀이에서는 언제나 둘째 아이가 승자가 되었다. 이 놀이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계속 하늘을 쳐다봐야 하기 때문에 목이 좀 아프다는 것뿐이다. 


 물론 착륙하는 비행기 항공사를 맞추는 놀이도 가능하다. 이 놀이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는 '용두암'이다. 착륙하는 항공기 식별이 가장 쉽다. 저 멀리서 고도를 낮추며 내려오는 비행기가 보이면 항공사를 예측하면 된다. 몇 해 전 제주로 출장 왔다가 회사 동료들과 해본 경험이 있었다. 다 큰 어른들끼리 별 것도 아닌 놀이로 한참을 재미있게 놀았다. 어른은 키가 큰 아이라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모두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어린 시절 우리가 신나게 즐기던 놀이 대부분은 아무런 도구가 필요 없었다. 그래서 더 즐거웠는지도 모른다.>

 각자마다 여행을 하는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가 가족 여행을 한 번이라도 더 하려는 이유는 아이들 유대감 때문이다. 한 부모에게서 나고 자란 형제라고 해서 친밀감이나 유대감이 저절로 생기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사실 형제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입장에서 볼 때 동반자보다는 경쟁자에 가깝다. <이기적인 유전자>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을 볼 때마다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남들에게는 친절하고 예의 바른 아이들이 서로를 대할 때는 으르렁거리기 일쑤다. 사소한 일에도 자주 부딪힌다. 그런 아이들이 서로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여행인 셈이다. 같은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즐거운 놀이를 함께 한 기억이 유대감의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올레 7코스 걷기나 한라산 정상 등반 같은 힘들지만 보람 있는 경험도 좋다. 때로는 머리보다 몸이 기억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아주 먼 훗날 아내도 나도 세상에 없을 때 아이들이 이 기억을 밑천 삼아 모질고 힘든 세상을 둘이 함께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 거창한 소망일까? 당분간 여행지에서도 게임은 금지할 예정이다. 손바닥만 한 화면보다 세상에 더 볼거리가 많다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잦은 마찰이 우려되지만 믿는 구석이 있다. 아직 아이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신나는 게임이 무려 열두 가지도 넘게 남아 있다. 그중 하나는 오징어 게임이다. 이제 아내와 내가 한 팀, 아이들이 한 팀이 되어 신나는 몸싸움을 벌여도 좋겠다 싶었다. 이 놀이만큼 아이들에게 유대감을 쌓아줄 수 있는 것도 드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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