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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Oct 20. 2021

제주 바다의 여왕 김녕 해변

아무것도 없어서 모든 것이었다

 코로나로 바깥나들이 한번 하는데도 큰 결심이 필요한 요즘, 아이들이 덜컥 여름방학을 맞았다. 중학생인 첫째 아이는 이제 부모와 함께 하는 여행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걸 좋아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 아이는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활력 넘치는 아이를 오롯이 집안에서 감당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에메랄드빛 제주 바다에 풍덩 빠져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싶었지만, 확진자가 갈수록 늘어나니 차마 제주로 떠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만 콕 박혀 있을 수만도 없어 아내와 함께 상의해 꾀를 냈다. 가까운 동해안, 피서객의 왕래가 적은 바닷가를 찾아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일주일 내내 수능 때 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 아내가 여행 후보지 세 곳을 추천했다. 사진은 모두 합격이었다.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제주의 바다를 닮았다. 마침 세 해변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현지에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모처럼의 가족 여행에 소풍 가기 전날 밤 아이처럼 잠을 설쳤다. 

<고성의 한적한 바닷가는 사진으로만 보면 제주 어디쯤이라 착각할 정도다>

 아침 일찍 도착한 고성의 첫 번째 바닷가는 사진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제주도 바닷가 어디라고 해도 믿을 만큼 바다 빛깔이 예뻤다. 에메랄드빛이었다. 굳이 다른 바닷가에 갈 필요가 없었다. 그곳에 짐을 풀었다. 맑은 날씨와 찌는 듯한 무더위도 한몫했다. 아이들은 수영복을 갈아입자마자 바다로 뛰어들었다. 나도 얼른 뒤따랐다. 동해안은 원래 여름에도 수온이 낮기로 유명한데 왠지 바닷물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물놀이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물속에서는 제주와 남해에서 주로 서식하는 범돔도 자주 눈에 띄었다.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여름 바다를 즐겼다. 


 한 차례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고 캠핑 의자에 앉아 가만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했다. 지칠 줄 모르는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꺄르륵, 깔깔깔 웃느라 정신없었다. 핀(오리발)을 착용한 아내는 혼자만의 유영을 즐겼다. 아이들 방학에 휴가철인데도 이곳은 제법 한산했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그때 데자뷔처럼 김녕 해변이 떠올랐다. 에메랄드빛과 코발트 색이 조화를 이루며 바다 색깔이 유난히 예쁜 곳. 제주 바다야 어디를 가도 아름답지만, 바다 빛깔로만 보면 최고는 김녕 해변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김녕을 '제주 바다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우리만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므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김녕의 바다를 본 여행자라면 이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리라 확신한다.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풍력 발전기가 있어 제주다움이 물씬 풍긴다. 꽤 멀리까지 걸어가도 수심이 완만해 어린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도 그만이다. 요트 투어의 스노클링 스폿도 김녕 해수욕장 근처라 파란 하늘과 멋진 요트를 배경으로 이국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김녕 해변의 비경은 다른 사람과 나누자니 아깝고, 혼자 보자니 안타깝다. 

<풍덩 뛰어들고 싶은 바다는 하늘의 거울이다>

 생각해 보면 원래 물이라는 건 무색투명하다. 그렇다면 바다는 왜 푸른색일까? 제주 바다는 왜 때로는 에메랄드 빛, 때로는 옥빛이나 코발트 색으로 보일까? 그 이유는 이미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배웠다.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빛이 산란(파동이나 입자선이 물체와 충돌하여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는 현상)하는 특징 때문이다. 빛은 여러 개의 색으로 나뉘는데 색마다 파장이 모두 다르다. 가장 파장이 긴 빨간색 광선부터 파장이 짧은 파란색 광선 순이다. 빛 중에 다른 색깔은 물에 부딪혀 흡수되고 파란색이 덜 흡수되어 반사되면서 퍼져 나가므로 우리 눈에 바다가 푸르게 보이는 것이다. '바다는 푸르다'라고 말해도 그 푸름은 미묘하게 다르다. 이는 바다에 함유된 미립자 때문이다. 아주 작은 먼지 알갱이, 플랑크톤도 바다색에 영향을 준다. 유난히 옥색으로 보이는 바다는 그 안에 식물성 플랑크톤이 풍부하기 때문이고, 에메랄드빛 바다는 수심이 낮고 산호초에서 나온 석회질 성분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에메랄드빛과 옥색, 그리고 코발트 색까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김녕의 바닷속에는 무엇이 스며 있을까?   

  

 금능 해수욕장이 협재 바로 옆에 붙어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함덕 해수욕장과 월정리 해변 사이에 있는 김녕 해변도 사람들로 붐비지 않는 한적한 바닷가다. 아무것도 없던 협재와 함덕이 최근 들어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를 생각할 때, 오랜 시간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어준 김녕의 바다에 고마운 마음뿐이다. 김녕은 따뜻한 엄마 품처럼 언제나 포근하게 우리를 감싸준다. 김녕 해변은 피서철에도 비교적 한산하다. 주위에 편의시설이 들어서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맛집을 탐방하며 미식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은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컵라면으로 한 끼 때우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모처럼 비운 시간을 빈둥거리는 것 또한 여행의 진정한 즐거움이다. 김녕은 '게으른 베짱이'가 되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일상에 쫓겨 사두고 읽지 못했던 책이 있다면 이곳에 갈 때 꼭 챙겨가야 한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책 읽기 매력에 푹 빠지는 곳 역시 김녕이다. 책 읽기에 지칠 때쯤에는 '김녕 지질트레일'을 걸어봐도 좋다. 지질트레일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을 활용해 지역별 지질자원과 해당 마을의 역사 및 문화와 어우러진 도보길이다. '드르빌레길'과 '바당빌레길'을 걸으며 한가한 어촌 마을의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제주 방언으로 '드르'는 들, '빌레'는 넓은 바위, '바당'은 바다를 뜻한다) 쉬는 맛이 있는 바다를 찾는다면 김녕만 한 곳이 없다.  

<한적한 김녕 해변에는 아무것도 없어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다>

 동해안 바닷물이 따뜻하게 느껴진 게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지난 7월 우리나라 바다의 평균 수온이 24.9도였는데, 이는 1998년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란다. 최근 10년 평균치보다 약 2.5도 높다. 특히 동해안의 경우는 평균 수온이 25.6도까지 올랐고, 가장 높을 때는 30도가 넘었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의 징후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구 온난화가 인간 활동의 결과임이 밝혀졌고 문제의 핵심은 과도한 화석연료의 사용이다. 바다는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고 중요한 식량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바다 없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따뜻해진 동해 바다에서 제주 근해 어종을 만날 수 있는 게 기쁜 일만은 아니었다. 동해가 제주처럼 된다면 제주는 어떻게 될까? 누군가는 뜨거워진 지구에 적응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지구를 위한, 바다를 위한, 우리 미래를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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