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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Oct 20. 2021

금능, 에메랄드빛 바다로의 초대

바다, 바람, 구름 그리고 석양 모든 것이 좋았다

 금요일 밤,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우리 가족이 모처럼 다 함께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코로나 시대지만 '불금'이니까 아이들도 하루쯤 원하는 걸 하기로 했다. 물론 주중에 열심히 생활한 자에게만 허락되는 자유였다. 요맘때 아이들이 가장 하고 싶은 건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게임이다. 게임을 왜 하는지 당최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도 금요일 밤만은 허락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게임 아이템 때문인지 형제가 심하게 다퉜다. 예상한 일이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아내는 한 달간 '게임 금지령'을 내렸다. 아이들은 서로 상대방 탓이라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 "텔레비전 보기 싫으면 숙제하던가!" 아내가 으름장을 놓았더니 내민 입이 쏙 들어갔다. 재빨리 좋아하는 군것질 거리를 챙겨 모여 앉았다. 온 가족이 함께 시청하는 프로그램은 역설적이게도 1인 가족 현실이 반영된 '나 혼자도 잘 사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마침 짙은 눈썹이 매력적인 잘 생긴 남자 배우가 출연했는데 그가 묵는 집이며 바닷가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낯설지 않았다. 어디지, 어디지 하는데 아내가 가장 먼저 답을 생각해 내고 목청껏 소리 질렀다. 누가 보면 엄청난 상금이 걸린 퀴즈 대회 마지막 문제라고 생각할 만큼 격양된 목소리였다.  "비양도다!" 

<금능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한가로이 떠 있는 비양도의 조화는 언제부턴가 제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되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그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은 비양도가 틀림없었다. 한쪽으로는 커다란 풍력발전기가 보였다. 그곳은 바로 제주 서쪽 해변, 한림읍에 자리 잡은 금능 해수욕장이었다. 제주 한달살이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발길이 닿은 곳이었다. 유난히 바다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이 가장 사랑한 바닷가! 금능 해수욕장임을 확인한 아내는 예전에 내가 브런치에 소개했던 글이 퍼진 것이라며, 왜 그런 글을 써서 우리만의 소중한 보물을 남들한테 소개해 주었냐며 꾸짖었다. 아내에게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반항했다. "내 글, 인기 없어요. 아무도 안 봐."


 금능 해수욕장은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협재 해수욕장과 인접해 있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해변이다. 언제부턴가 이것도 옛말이 되고, 에메랄드빛 바다와 비양도가 보이는 풍경 때문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제주의 안 알려진 명소 중에 가장 유명한 곳이 되었다. 인파가 몰리는 협재를 피해 조용한 바다를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았다. 게다가 어디에서 찍어도 인생 사진이 나오기에 현지인의 웨딩 촬영 장소로 유명세를 탄지 오래되었다. 내가 쓴 글이 영향을 미쳤을 리 만무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매혹적인 에메랄드빛 바다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 그 자체이다>

 금능 해수욕장은 물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천국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온종일 머물러도 심심할 틈이 없다. 아이들은 스노클링 장비와 잠자리채만 있으면 물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사람들 왕래가 적다 보니 다양한 제주 근해 어종을 만날 수 있다. 어랭이, 자리돔, 긴 꼬리 벵에돔, 범돔(우리는 나비고기라고 부른다), 보리멸, 복섬, 고등어 등이 쉽게 눈에 띈다. 웬만한 아쿠아리움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수심도 깊지 않아 아이들이 놀기에도 그만이다. 끝도 없이 이어진 물고기 행렬을 보는 일은 참으로 황홀하다. 게다가 이곳의 물고기들은 도망도 가지 않는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느새 주위로 모여든다. 해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듯했다. 아쿠아리움에 가면 물고기들과 함께 헤엄치는 인어(직원)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는데 금능에서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나도 아이들도 인어가 되어 수천 마리 물고기들과 함께 신나게 헤엄쳤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금능 해변 뒤편에는 야자나무 숲으로 조성된 캠핑장이 있다. 우리는 바람막이와 캠핑용 의자만 들고 가 해변가에 자리를 잡고 하루 종일 해수욕을 즐기다 저녁이 되면 숙소로 돌아왔지만, 이곳 캠핑장을 이용해 1박 하는 것도 꽤 운치 있어 보였다.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덕분에 금능의 석양도 꽤 유명하다. 유명세를 떠나서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는 해가 하늘에 수놓은 그림을 오래도록 눈에 담고 싶어 매번 늦은 시간까지 금능에 머물렀다. 금능의 하늘은 바다만큼 아름답다.   

<구름도 바람도 나무도 한가로웠다>
<석양이 뭐라고 넋을 잃고 보게 되는 걸까 궁금했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자 주말마다 제주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다는 뉴스를 보았다. 도민들이 코로나 확산을 염려해 눈물을 머금고 유채꽃밭을 갈아엎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사람들이 제주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부럽기도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포기한 사람들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위로받고 싶다는 심정도 이해 가고, 그간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겨우 잠잠해진 코로나가 다시 확산될까 봐 우려하는 보건 당국과 제주시의 입장도 이해 간다. 근래 들어 확진자 수가 감소 추세를 보여 이제는 좀 괜찮지 않은가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려운 문제다. 부디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은 마스크도 잘 착용하고 손도 수시로 깨끗이 씻는 등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잘 지켜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모두'를 위해 제주로 향하고픈 발걸음을 차마 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제주로 달려가 에메랄드빛 바다에 풍덩 뛰어들 생각이다. 얼굴이 좀 까맣게 그을려도 물 위를 둥둥 떠다니며 하늘을, 구름을 그리고 태양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싶다. 그날이 어서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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