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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Feb 17. 2024

한 글자도 쓰지 못한 까닭

글쓰기의 글쓰기 

 모처럼 한가한 주말 오전,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 만들어 노트북 앞에 앉습니다. 전원을 켜고 <브런치>에 접속하는 동안 오늘 써야 할 글들을 머릿속에 펼쳐봅니다. 토요일 연재 '한뼘소설'도 써야 하고 며칠 전 꾼 꿈에 관한 이야기도 써야지 마음먹습니다. 한동안 매거진으로 연재했던 '세 번 읽는 그림책'도 다른(좀 더 멋진) 타이틀로 다시 시작하리라 결심했는데 오늘 비로소 그 첫 발을 내딛기로 합니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만, 여전히 글 쓰는 일이 즐거우니 반나절 투자가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브런치> 하얀 화면을 띄워 놓고 잠시 '유튜브'에 접속합니다. 글 쓰는 동안 영감을 북돋아 줄 음악을 고르기 위함입니다. 가사 있는 음악은 글 쓰기에 방해가 되기에 주로 클래식 음악을 선택합니다. LP판으로 들었다면 닳고 닳았을 비발디, 바흐에 이어 최근에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는 파가니니에 꽂혔습니다. 어떤 연주자의 연주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를 소환할까 고민하다 눈에 띄는 'Shorts'를 발견합니다. '오, 요거 봐라. 재미있겠는데!' 하는 사이 저도 모르게 손가락이 움직입니다. 그리고 마치 파리지옥에 붙잡힌 작은 곤충처럼 '쇼츠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머리로는 그만 봐야지 하면서도 마우스는 하염없이 아래로, 아래로 향합니다. 이쯤 되면 <브런치> 화면은 기억나지도 않습니다. 마치 지금 보지 못하면 영원이 보지 못할 것처럼 마지막 영상까지 보고 또 봅니다. 글쓰기가 '유일한 즐거움'은 아니더라도 한 자 한 자 써나가는 과정에 희열을 느끼면서도 글쓰기에 투자할 시간을 쇼츠에 올인합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합니다. 결국 한 자도 쓰지 못했습니다. 


 '작가란 오늘 아침에 한 줄의 글을 쓴 사람이다.'
-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


 오늘 아침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쇼츠에 빠진('미친'이라고 쓰려다 너무 자학하는 것 같아 수정했습니다) 아저씨였을 뿐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글을 쓰기 위해 <브런치>에 접속하고 음악을 고르기 위해 유튜브에 접속하면서 또 30여분 동안 쇼츠에 빠졌습니다. 이 정도면 문제이지 싶습니다. '영감이란 약삭빠른 작가들이 예술적으로 추앙받기 위해 하는 나쁜 말이다.'라고 지적했던 움베르트 에코의 말이 떠오릅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음악을 끊어야 합니다, 쇼츠를 끊어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유뷰브를 끊어야 합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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