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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the Breakers

by 조이홍

오래전 브런치에 <사춘기-less>라는 글을 썼습니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 바로 그 사춘기를 경험하지 않았다,라는 다소 충격(?)적인 글입니다. 청소년기 최대 일탈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새로 장만한 비비화를 신고 명동 거리를 홀로 30분 정도 걸었다 정도이니 말 다했습니다. 우등생은 아니어도 모범생 목록에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유 없는 반항,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범함, 이성을 향한 불타는 호기심, 인생을 개척하기 위한 독립 의지, 불안과 감정 기복, 걷잡을 수 없는 감정과 치솟는 호르몬까지 어른이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단계를 경험하지 않았다니 그럼 저란 사람은 여전히 어린아이인 걸까요(한동안 피터팬 신드롬에 빠져있긴 했습니다만). 사춘기를 겪지 않은 탓인지 제게는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체제에 순응하는 편입니다. '똘똘이 스머프'가 언제나 옳지 않은 것처럼 '투덜이 스머프'가 항상 틀린 것은 아닐 테지요. 때론 현실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것이 세상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고 믿는 저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뜬금없는 자기 고백입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춘기-less' 탓인 듯합니다. 심지어 '노동자' 입장인 회사에서도 '사용자' 마인드로 무장해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은 적도 있더랬습니다. 학교나 회사에서 저는 언제나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인류의 먼 조상, 아니 모든 생명체의 '시조'는 바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면 괜히 기분 좋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건 단지 인간이 감정적인 동물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 DNA 어딘가에 푸른 바다를 헤엄치던 최초 생명체의 기억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합니다. 왜 바다에 최적화된 생명체가 굳이 육지로 기어 나왔을까요? 호흡도 불편하고 아직 '다리'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을 텐데 말입니다. <세상 모든 날것들의 성장기, 와일드 후드>라는 책에서 제법 그럴듯한 실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약 3억 7천만 년 전 생물로 추정되는 '틱타알릭'이라는 이름의 물고기 화석에는 발로 쓸 수 있는 4개의 작은 다리가 달려있다고 합니다. 바로 이 4개의 부속 기관이 바다에서 육지로 진화하는 '혁명'의 열쇠입니다. 당시 성체 틱타알릭은 강력한 육식동물로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두려울 게 없었지요. 하지만 아직 어린것들은 포식자에게 빈번히 노출되어 늘 경계해야 했습니다. 삶이 만만치 않았을 테지요. 그들은 이미 가진 것들을 포기하고 기꺼이 미지의 세계(육지)를 향해 모험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종(種)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위대한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가설에 불과하지만,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한계 너머를 탐험하는 모습이 왠지 반항하고 도전하는 사춘기의 일탈과 일맥상통하는 듯합니다. 사춘기를 제대로 앓던 틱타알릭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불금을 홍대가 아니라 동해 어딘가에서 보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거 저만의 착각, 꿈보다 해몽인가요?


새해가 시작되면 아이들과 함께 새해 계획을 세웁니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다이어트를 포함해 달성하지도 못할 소망들을 잔뜩 열거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딱 한 가지만 결심했습니다. 'Be the Breakers', 굳이 영어로 표현한 이유는 적당한 우리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삐딱이, 반항아 정도가 될 듯한데 제 의도를 다 담지 못하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사대주의자는 아닙니다. 흠흠. 열다섯 살에 건너뛴 사춘기를 제대로 앓아 보자 마음먹었습니다. 이유 있는 반항,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세상을 향한 불타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해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정치적인 맥락을 포함하고 있지만, 반드시 정치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일상에서도 제대로 삐딱하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뻔한 행동, 뻔한 말, 뻔한 사람은 재미없으니까요. '착한 사람' 콤플렉스도 좀 지겹더라고요.


'Be the Breakers'라는 새해 다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습니다. 저 하나 삐딱하게 본다고 콘크리트 같은 세상에 바늘구멍만 한 균열도 일어나진 않을 테니까요. 그래도 침묵하는 죄를 범하는 것보다 낫다 싶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왠지 고리타분합니다. 삐딱하게가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갱년기를 걱정할 나이에 사춘기를 제대로 겪어보겠다니 저란 인간 아직 어린아이인가 봅니다. 그래서 Be the Breakers입니다.


<표지 이미지 - GD '삐딱하게' 뮤직 비디오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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