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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희 Dec 20. 2023

운명

3

  풀의 운명은 가엾다. 사람에게 쓸모가 없는 풀은 사람에게 칼질당한다. 풀의 생명이 가장 위협 받는 시기는 봄이다. 풀이 돋아나는 봄, 나에게 꼭 해야 할 일 있다. 아카시아를 심은 정원으로 향한다. 두 손에 목장갑을 끼고 한 손에는 가위를 들고 말이다. 그리곤 풀에게 상냥하게 협박한다. 제발 사라져 달라고 말이다. 

 풀이 날카로운 기계의 칼과 가위로 베어질 때는 사람처럼 피를 흘린다. 식물이 무슨 피를 흘리냐고 하겠지만, 식물의 줄기를 잘라보면 액체가 나오는데 이것이 식물의 피인 셈이다. 봄에 수액으로 애용되는 고로쇠나무의 맑은 물 같은 것들도 식물의 피이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베어진 풀에서는 풀 비린내가 난다. 풀도 그 순간 얼마나 두려웠을까. 찢겨 나가는 고초를 느끼며 사라지는 순간의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왜 이토록 인간은 풀을 없애지 못해 안날 난 것일까.

  땡볕 여름날 식물 옆에 다가가면 모기까지 나에게 들어 짜증 한 가득 쌓인다. 햇볕의 뜨거움과 물린 가려움은 내 마음을 모나게 만든다. 이렇게 성이 난 상태에서 풀을 자르면 며칠 후 풀이 더 성큼 자라나 있다. 분명 나는 풀을 없애기 위해 애쓰며 풀을 잘랐는데도 말이다.

  그 까닭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바로 마음가짐이다. 침착하게 풀의 성장점이 되는 뿌리를 제거하면 풀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모난 마음으로 풀을 대하면 감정이 섞여 제거할 생장점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난 모든 풀을 다 없애진 않는다. 중심 작물에 피해 되지 않을 만큼만 없앤다. 때론 풀은 흙을 덮어주는 외투이고, 나무의 보습제이기도 하니깐. 

  결국 풀이란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기억으로 사람들이 임의로 나눠 놓은 식물의 집단 체계이다. 오늘은 쓸모없는 풀이라도 내일은 귀한 풀이 될 수 있다. 식물에 관심이 없었을 때 잡초로 여기는 질경이나 환삼덩굴꽃이 피고 지는지에 별 관심이 없었다. 꽃이 핀다고 생각지도 못했다. 단지 풀꽃이 작고 화려하지 않아 우리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뽑으려 하니 잡초였지만, 품으려 하니 모두 꽃이었다.’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홉이란 식물은 수 세기 전만 해도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풀이다. 홉은 환삼덩굴 사촌 동생쯤 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홉은 맥주 원료로 발견되기 전까지 야생의 식물로 사람에게 성가신 존재였다고 한다. 독일에서 홉의 암꽃을 맥주에 넣어 보니 여느 향신료보다 풍미가 깊다는 걸 발견했다. 이때부터 홉이란 식물의 암꽃을 따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사람에게 필요한 풀이 되었다. 홉의 암꽃에는 연둣빛의 작은 알갱이들이 들어있다. 이 부분이 바로 맥주의 독특한 맛을 내는 첨가제며, 홉을 재배 작물로 변모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모든 사물에는 양면성이 있듯이 재배 작물이 되면서 홉은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다. 맥주의 원료는 오로지 처녀 암꽃이다. 수분이 되면 독특한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수꽃은 암꽃과 함께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수꽃은 피기도 전에 인간의 손에 의해 모두 잘리게 된다. ‘홉’은 왜 수꽃과 암꽃을 한 나무에 피워서 이러한 비극을 맞은 것일까.

  여기엔 중요한 사연이 있다. 바로 근친결혼을 피하기 위해서다. 근친결혼을 피하는 것은 인간 사회나 꽃이나 똑같은 것 같다. 열성의 유전자가 중복되어 허약한 후손이 태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근친결혼을 피하기 위한 식물들의 노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치밀하다. 척박한 토양, 장마와 매서운 추위, 끊임없는 사람들의 간섭을 받는 풀들은 열악한 환경 조건에 재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생존에 대한 위협이 높아질수록 식물은 종족을 보존하는 일에 적극 정성을 기울인다. 특히나 느긋하게 중매자인 곤충을 기다릴 여유가 없는 풀은 최후의 수단으로 근친결혼도 마다하지 않는다. 언제 어떤 위험이 몰아닥칠지 예측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최대 목표이기 때문이다. 식물들에게 근친결혼은 생존 전략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생존 수단을 찾아야만 하는 풀의 운명은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영역에 퍼져 있다. 풀은 환경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는 방식의 습성이 있다. 짧은 시간 내에 생존하기 위해 전략을 세운다. 풀은 살해를 피하고자 모습과 형태를 적재적소 맞춰 바꿔 자란다. 벼가 자라는 곳에 풀을 보면 벼와 생김새가 닮은 풀이 자라고, 옥수수를 키우면 옥수수 본잎과 비슷한 풀이 옆에서 옥수수 잎인 척하며 자란다. 이런 풀에 삶의 전술은 환경이 안정된 곳에 사는 작물 종보다 훨씬 진화했다고도 볼 수 있다. 자신의 종족을 번성시키려는 본능과 유전자를 다음 세대를 전하기 위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풀의 생의 전략은 발걸음을 옮기며 배우자를 찾는 사람이나 땅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식물이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풀의 풀생을 보며 내 운명의 상대는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왼쪽) 환삼덩쿨, (가운데/오른쪽) 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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