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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범 Dec 29. 2021

목소리는 그리움을 기억한다

오랜만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본가에 다녀온 지 근 두 달이 다 돼가는 날이었다. 

"점심은 먹었어?"

"응 아까 먹었지. 엄만?"

"나도 방금 먹었어."

 자취방이 멀다는 핑계로, 바이러스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핑계로, 이제 곧 졸업이니 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부모님이 계시는 일산에 잘 가지 않았다. 엄마는 겉으론 괜찮다고 하셨지만 은연중에 서운함과 그리움을 핸드폰 너머로 조금씩 흘려보냈다. 

"아들 목소리 오랜만에 들으니까 좋다."

"나두."

 우리는 나흘 동안 보지 못한 연애 초기의 연인처럼 서로의 목소리를 그리워했다. 갑자기 엄마의 목소리에 거대한 그리움을 느꼈던 적이 생각났다. 아니, 그때는 그리움을 넘어선 지독한 서글픔이었다.  


 2016년 12월 26일은 내 입대 날이었다. 그 누구보다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나는 아빠 차를 타고 덕양구로 향했다. 그리고 6일 후, 머리를 다 같이 빡빡 민 아직은 어색한 사람들과 새해를 함께 맞이했다. 우리는 새벽부터 막사 뒷산에 올라 산 능선을 따라 올라오는 시뻘건 태양을 본 뒤 훈련소 기간 동안 많아야 두 번이나 하게 해 줄까 하는 전화 포상을 해가 바뀌었다는 명목 하에 받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분. 빨간 전화박스 안에 들어간 나는 곧바로 엄마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안 본 지 일주일도 안됐는데 어찌나 보고 싶던지 제법 매운 1월의 날씨에 벌벌 떨리던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시 뻣뻣해졌다. 신호음이 몇 번 가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엄마 목소리였다. 겨우 6일 만에 듣는 목소리에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한없이 쪼그라들어서 막 태어나 쭈글쭈글한 강아지 새끼가 된 것 같았다. 

"여.. 여보.."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목소리를 내었더니 수신자 부담 전화임을 확인하는 안내 음성이 수화기로 흘러나왔다. 시간 3분밖에 없는데… 10초도 안됐을 안내 시간이 10분 같았다. 

"여보세요? 수범이니?"

안내 음성이 끝나자마자 다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넘어오자 내 몸의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정체불명의 뜨거운 것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분노나 부끄러움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움이었다. 어디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미칠듯한 그리움.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다 부숴버릴 분노나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홀로 받을 때의 민망함보다 훨씬 더 뜨거운 것이었다. 뜨거운 그리움은 이내 눈물을 뎁혔다. 눈물은 딱딱하게 얼어버린 군화 속 발끝에서부터 차고 올라와 가속이 붙어버린 눈덩이처럼 빠르게 몸 전체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온몸이 화끈거렸다.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아냈다. 엄마의 목소리보다 뜨거워진 눈물은 목젖까지 와서야 겨우 멈춰 섰다. 온몸을 다해 참아내지 않았다면 갑작스레 물을 틀어버린 길쭉한 초록색 호스처럼 온 사방에 그리움을 제멋대로 쏟아낼 노릇이었다. 

"응……"

힘겹게 한 마디를 토해낸 후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엄마도 말이 없었다. 엄마도 그리움을 참아내는 중이구나. 엄마의 그리움에는 아들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섞여서 더 뜨겁겠지. 우리는 서로 한 마디씩 주고받은 뒤 말이 없었다. 울음이 터져 나온다는 것을 상대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아마 둘 중 한 명이 우는 소리를 조금이라도 내었다면 3분 내내 서로의 울음소리만 듣다 끝날 터였다.

 쏟아져 올라오는 눈물을 겨우 다시 발 끝으로 내려보낸 후 우리는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엄마와 아들의 흔한 안부 대화였다. 그러나 당신들의 목소리는 그저 그런 감정을 담지 않았다. 전쟁터에 나선 아들과 집에 홀로 남아 아들을 간절히 기다리는 어머니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그만큼 애틋했다. 당신의 목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3분의 통화 시간은 서로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목구멍으로 치고 올라오던 눈물마냥 쏜살같았다. 집에 가고 싶었다.


 모두가 통화를 마치고 다시 오와 열을 맞추어 대열을 만들었다. 정적. 그리고 희미하게 들리는 흐느낌. 우리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조교는 평소보다 조용하게 우리를 인도했다. 막사로 복귀하는 계단을 오르는 동안 열댓 명의 빡빡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그날 밤 엄마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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