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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범 Jan 11. 2022

인복

나는 새로운 환경에 들어설 때마다 내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바로 인복이 타고났다는 것인데, 이십 대 후반인 현재로선 아직까지 매년 느끼는 생각이다.

아마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유치원 때 부터 일 것이다.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진 극소심했던 어린이로 살았지만 그 몇 년 동안에도 내 옆엔 항상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인싸인 친구들(인싸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싹수가 노랗다)만큼 친구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나름 반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고, 그중에 마음 맞는 소수의 친구들과 매일 붙어다녔다. 학창 시절에는 학년이 올라가 반이 바뀌는 것이 어찌나 싫던지,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또다시 낯선 이들과의 어색한 대화를 통해 새로운 친구를 사겨야한다는 것은 꽤나 큰 스트레스거리였다. 하지만 언제 걱정했냐는듯이 시간이 조금씩 흐를수록 금세 또 좋은 친구들이 내 곁에 하나둘 생겨났다. 초등학교 6년이 지나는 동안 매 학년마다 친구들과 즐거운 학교 생활을 마쳤고, 이는 ‘좋은 사람 옆에는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는데’ 라는 굉장히 재수없고 자기애 넘치는 생각을 그 어린 나이에 하는 지경에 이르게했다. 그래도 이런 나르시스즘이 내가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자존감이 높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올라가고 나서는 성격이 많이 바뀌기 시작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선 조용한 사람이었지만 친구들 사이에선 말이 꽤 많았다. 역시나 매 해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났고, 그 와중에 사랑을 받기도, 나 혼자 사랑을 하기도 했다. 주변에 나와 대화가 잘 통하고 서로를 믿는 친구들이 있으니 성적이 내려가도 내 자존감은 언제나 고공행진 중 이었다.

길었던 의무 교육과 무상 교육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기 전 1년의 기간 동안 매일 16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머물렀던 종로의 한 재수 학원에서도 인복은 계속됐다. 정해진 지정석이 따로 없었지만 금세 친해진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여러 대화를 나눴고, 덕분에 끔찍했던 재수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버팀목이 되었다.

대학에서는 여러 우연과 필연이 합쳐져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이 생겨났다. 한 명의 98년생과 또 한 명의 95년생, 그리고 나머지 96년생들로 이루어진 조금은 이상한 조합의 우리들은 모두가 수도권에 살고 있었고, 때문에 1년 내내 대학교 기숙사에서 붙어 다녔다. 우린 단 한 명도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서로 잘맞았고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번의 다툼없이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군대에서조차 인복이 넘쳐 흘렀다. 군대는 온갖 지역에서 별 이상한 사람들이 다 모인다는 말을 계속 들어왔기에, 훈련소가 끝나고 자대 배치를 받을 땐 다른 것보다도 사람들 때문에 더 긴장됐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도 몸 편한 인사과에 배치 받아 참모부 내에서 좋은 사수와 친절한 간부들을 만나서 아무것도 몰랐던 이등병 빡빡이 시절에도 적응을 잘 할 수 있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 들어오던 후임들과도 금세 친해져 몇개 없는 소중한 휴가를 맞춰 같이 여행을 가곤 했고, 전역한지 4년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며 지낸다.

나는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각종 여행지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덕분에 사람이 장소를 기억하게 하는 경우도 더러 생겨났다.

이제 취업을 하고, 또다시 여행을 다니고, 여러 활동들을 하며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내 삶을 돌이켜보면 나쁜 사람들보단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꽤 합리적인 이유로 걱정보단 설렘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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