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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의 대명사

오은의 시집을 끝까지 읽기로 함


시집을 사러 서점에 갔다

늦은 점심으로 순댓국을 먹었다


오은의 시집을 샀다

멀리 보이는 곳으로 걸었다


모르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시집을 읽기 위해

길거리에서 가던 길을 멈춰 선채로

새 시집을 그렇게 읽기 싫어서


그렇지, 멋지다!

감탄사가 두 발 장전되자 곧바로 쏘아졌다


나는 엊그제 ‘숫자’라고 쓰고 그 뒤에 길게 끄적였고

나는 다음날 ‘수학’이라고 정해놓고 또 길게 썼다

‘오늘의 단어’는 단 한번 선택되고 바로 그 자리에 묶인다 거기에 내 마음이 하루 동안 묶인다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앉아있는데

아이엠그라운드 아싸 아싸 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한적한 공간을 울렸다


내 눈은 금방 중독되었다

오은의 시집에 온통 똑같은 대명사들이 즐비하다


1부 범람하는 명랑

그곳

그곳

그곳

그것들

그것들

그것들

그것들

그것들


시인은 이랬다


하기는,

내 인생엔 늘 똑같은 명사들이 범람하였다

발음하기도 싫은 명사들을 싹 지워버리고 싶었다

보통명사들은 대개 고유명사를 암시하기 때문에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오은의 시집을 끝까지 다 읽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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