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마요르가 <야행성 동물>
오늘의 연극
희곡을 읽고 나서 연극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아가는 일은 음식 재료를 먼저 음미하자마자 곧바로 조리된 음식이 차려진 식탁에 앉는 순간과도 비슷하겠다.
연극 <야행성 동물>은 아주 맛있는 음식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보다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음절 하나하나를 실컷 부추겨 놓았기 때문이다. 단어들을 미리 맛보며 등장인물의 음성까지 상상하진 못했지만, 단어들이 서로의 맛을 풍기는 그 문장들이 어떻게 인물의 말소리를 이룩하는지 잘 감상할 수 있었다.
원작 희곡을 가장 맛있게 조리한 장면은 단연코 4장, 두 남자가 야행성 동물을 구경하는 장면이다. 솔깃하도록 연출되어 듣고 보는 사람을 힘차게 끌어당긴다.
5장 위층과 아래층의 동시장면에서 본격적으로 혼돈이 시작되는데 드디어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을 암시하고, 6장 위층 남자의 방문에서 그의 무례함이 아래층 여자의 인내심을 넘어서며 갈등의 씨앗에서 싹이 났고, 7장 아내가 남편 일하는 곳을 처음 방문하면서 갈등이의 줄기가 치솟았다. 그리고,
8장 그 남자의 반격, 처음이자 마지막!
9장 그 여자의 용기, 처음이면서 이제 시작!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내 귀로 자세히 듣고 싶어서 나는 극장으로 달려간다.
안톤 체홉의 <갈매기> 4막에서, 코스챠를 찾아오는 니나의 절망한 얼굴과 목소리가 궁금하고, 코스챠의 최후의 모습에서 터지는 음성이 궁금해서 극장으로 달려가듯이,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에서, 처녀시절 빼앗긴 정의를 돈을 주고 되찾기 위해 45년 만에 고향을 다시 찾아오는 클래어 차나시안의 음성과 얼굴이 궁금해서, 돈에 의해 변해가는 귈렌 사람들의 얼굴이 궁금해서 극장으로 달려가듯이,
후안 마요르가의 <야행성 동물>에서 두 부부의 정체가 궁금했고, 과연 무대에서 어떤 얼굴로 나타나는지 그들의 음성은 어떤지 궁금했고, 특히 마지막 장면의 그들 얼굴이 가장 궁금했다.
10장 네 사람의 결말까지 음미하면서 역시 좋은 희곡은 좋은 문장을 잉태하고, 좋은 문장은 좋은 무대를 출산하는구나! 라고 느꼈다.
동물의 세계는 늘 신비롭기까지하다. 우리는 모두 동물의 유전자로 삶을 밀고 나간다고 해도 크게 과장되지 않겠다.
작가는 말했다. "우정이란 언제나 불균형한 관계처럼 보입니다." 여기에 덧붙이면, '힘이 더 센 사람들의 우정을 수용해야만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이 작품의 큰 맥락이다.
2002년에 스페인에서는 외국인 관리법 개정과 총선이 맞물리면서 극심한 사회적 진통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었고, 후안 마요르가는 격렬한 찬반을 지켜보면서 <좋은 이웃>이라는 짧은 희곡을 썼고, 이듬해, 다듬고 발전시킨 희곡 <야행성 동물>을 발표하였다.
이때 '좋은 이웃'의 뉘앙스가 달라졌고, '야행성'이라는 낱말이 '동물'과 만나서 우리를 유혹하였다.
불면증에 몽유병이 있는 아내와 인간의 본질적인 불화를 겪고 있으며, '야행성 동물'을 좋아해서 '야행성 동물관'을 혼자 자주 와서 구경하던 위층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뭇 의미가 깊다.
"여기는 결국 문을 닫게 될 거야. 사람들이 왜 안 좋아하는지 알아? 왜냐하면 다르거든, 왜냐하면 반대로 살거든." (4장)
야행성 동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야간 업무를 해야만 먹고 살 수 있음을 야행성 동물에 비유한다는 것은 사실 억지스러운 이야기다. 낮에 활동하는, 활동해야 하는 사람이 밤에 깨어있는 일은 큰 고통이라는 것에 비해서, 그렇게 타고난 야행성 동물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느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타고났으니까. 우리가 밥(욕망) 없이 살 수 없는 것을 불평하면 안 된다. 물론 동물에서 사람으로 올라선 우리들은, 자기 욕망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에게, "여우는 아는 게 많다. 고슴도치는 중요한 것 하나만 안다."라는 문장을 선사했는데, 이들 네 사람이 각자 무엇을 닮았는지 감상하는 재미가 크다. 그런데 불쑥 연극에서 기막힌 아포리즘을 전하고 있다. 멋진 일이다.
"세상일은 전부 다, 잠든 사이에 일어나거든요. 전쟁도, 혁명도, 사랑도, 이별도."
그러므로 사실상 우리들은 모두 야행성 동물이 아닌가. 낮과 밤을 모두 흠뻑 빨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동물 중에서 이토록 삶 자체에 극진한 동물이 또 있을까. 주행에서 야행으로, 고독에서 다시 침묵으로. 나야말로 철저한 야행성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이제부터,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 <야행성 동물>은 내게 아주 유의미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연극을 감상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희곡의 문장을 살아있는 인물들로 탄생하는 순간이 황홀할 지경이며, 몇 번을 더 보고 싶은 작품이 되었다.
희곡을 더욱 풍요롭게 경작해 준 스텝과 배우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 모든 야행성 동물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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