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계절, 같은 일상이 반복되지만, 나는 그 안에서 달라지고 있었다.
지금이 늦은 건 아니었다.
시간은 흘러가는 줄로만 알았지만,
되돌아오는 시간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제나 같은 자리를 다시 지나고,
그 안에서 다른 나를 마주한다.
며칠 전, 엄마네 아파트 상가를 지났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 있던 공간이었다.
100평은 될 법한 자리, 의자 몇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날, 그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몇 분이 나란히 앉아
커다란 TV를 조용히 바라보고 계셨다.
잠깐 멈춰 서서 바라봤다.
이상하게 마음이 묘해졌다.
언젠가 나도 저 자리에 앉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의 시간이 유난히 또렷해졌다.
마흔이라는 숫자에 눌려 늦었다고만 여겼던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여전히 장바구니는 무겁고,
할 일은 끝이 없지만,
내 두 다리로 걷고
누구의 도움 없이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몸이 건강하다는 게,
이 시간에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육아와 집안일, 자격증 준비까지
비슷한 하루들이 반복된다.
매일 같은 길을 걷는 것 같지만,
마음은 조금씩 다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어제는 불평하던 일이,
오늘은 그냥 지나간다.
그 사이, 나는 달라졌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조용히 자라는 중이었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었다.
도는 원이었다.
같은 계절이 다시 오듯,
삶도 같은 자리로 돌아오지만
그 속에 있는 나는 예전과 같지 않다.
한때는 마흔이 늦은 나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겠다.
내게도 아직 피어날 시간이 남아 있다는 걸.
시간이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내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