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새벽, 아파트 계단을 오른다.
어둠에 잠긴 공간 속, 창문 틈으로 희미한 빛이 들어온다.
그 빛을 따라 겨울바람이 밀려와 볼을 스치고, 치마자락을 살짝 흔든다.
그 순간, 깊숙이 잠들어 있던 기억 하나가 조용히 깨어난다.
어젯밤, 오랜만에 쿨의 노래를 들었다.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려 했는데, 그 익숙한 멜로디가 심장을 툭 건드렸다.
그리고 떠오른다.
스무 살, 그 겨울의 종로 거리.
손끝이 시릴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친구들과 함께였기에 마음만은 따뜻했던 날들.
그 시절, 거리엔 ‘김떡비’ 간판이 즐비했다.
알록달록한 글씨 옆엔 떡볶이와 김밥 그림이 귀엽게 그려져 있었고,
우린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가 종이컵에 담긴 오뎅국을 받았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 사이로 서로의 얼굴이 붉게 물들고,
조심스레 후- 불며 한 모금 들이킬 때마다 겨울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떡볶이는 비닐로 덮인 초록색 플라스틱 접시에 담겨 나왔다.
국물에 젖은 비닐이 반짝이고, 우리는 이쑤시개로 떡을 찍어 입에 넣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 순간은 아무것도 아닌 듯 흘러갔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단순함이야말로 행복이었다.
이제 그 골목엔 아무것도 없다.
간판은 사라졌고, 가게가 있던 자리는 ‘임대 문의’라는 글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한때는 사람들로 북적였던 거리인데, 지금은 나 혼자 걸어도 한산하다.
발길이 닿았던 공간이 사라진 자리를 보면,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진다.
시간은 그렇게 많은 것을 바꿔 놓지만,
이상하게도 잊고 있던 추억은 어느 날 불쑥 다가와
우리 마음을 조용히 토닥인다.
추억은 늘 뒤늦게 다정하다.
그 시절에는 미처 몰랐던 따뜻함이,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내 안을 가만히 데운다.
그래서 추억은, 어쩌면 지금을 살기 위한 또 다른 위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