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전부터 아들이 “수영장에 가고 싶다”고 졸랐다. 바쁘다는 이유로 계속 미뤄오던 약속. 결국 그날, 아이의 손을 잡고 수영장을 찾았다. 생존수영 수업을 들은 이후, 아이는 물속에서 더 자유롭게 놀고 싶어 했고, 나는 그 바람을 이제야 들어주게 된 셈이다.
입장 준비를 마치고 수영장 안으로 들어서려던 찰나,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다가와 말씀하셨다.
“래쉬가드는 안 됩니다.”
나는 조용히, 정중하게 답했다.
“이건 래쉬가드가 아니라 전신수영복이에요. 가능한 복장이에요.”
하지만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되었다. 마치 내 설명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그때 수영 강사님이 상황을 보고 급히 다가오셨고, “전신수영복은 가능합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제야 상황이 정리되는가 싶었지만, 어르신은 옆에 계시던 안전요원과 함께 다시 말했다. “래쉬가드는 안 됩니다.”
그 순간, 눌러왔던 감정이 터지고 말았다.
“이건 래쉬가드가 아닙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어요. 저희 아이와 모처럼 즐기려 온 자리인데, 계속 이런 말씀 들으면 기분이 나빠요.”
그리고 조심스레 덧붙였다.
“오해하셨다면, 사과하시는 게 먼저 아닐까요?”
하지만 돌아온 건 짧은 한마디였다.
“래쉬가드인 줄 알았어요.”
사과는 없었다. 그저 오해였다는 해명뿐.
그날 자유수영 시간, 나는 아이에게 물속에서 마음껏 놀라고 말했지만 정작 내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감정의 여진이 남아 있었다.
그 일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누군가를 오해하는 건 실수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오해를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는 일은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 하나가, 타인의 하루를 따뜻하게 만들 수도, 상처로 남게 할 수도 있다.
또 하나 배운 것이 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말을 듣지 않게 된다. 그리고 변명은, 사과를 대신하지 못한다. 오히려 마음을 더 다치게 한다.
이제는 알겠다. 옳은 말보다 먼저 필요한 건, 상대의 말을 들으려는 마음이라는 걸. 그리고 ‘미안합니다’라는 짧은 말이, 때론 모든 오해를 풀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