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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Jan 28. 2024

맛집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내게 연애란 맛집 탐방 동아리와 비슷했다. 만났으면 밥을 먹어줘야 한국인이다. 명색이 데이트니까 동네 백종원 체인점 대신 SNS에서 유명한 맛집을 찾아간다. 주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 음, 다시 생각해 봐도 인원 제한이 있다는 것 말고는 동아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M과의 연애는 가장 맛집 동아리다운 모임이었다. 당시 학생이었던 우리는 재정상태가 겸손하며 맛집을 검색할 시간이 많았다. 덕분에 적당한 가격대에 눈이 번쩍 뜨이는 식당들을 몇 군데 발견했다. 오징어먹물리조또를 파는 부암동의 'ㅇ' 식당, 야들야들한 쭈꾸미와 마요네즈의 하모니가 끝내주던 'ㅁ' 식당...



세운 상가 근처에 있는 ‘ㄷ’ 식당도 M과 발견한 장소 중 하나였다. 골목 식당 특유의 허름한 모양새와는 달리 낙곱새 맛은 세련되기 그지없었다. 낙지와 곱창이 알맞게 익어 씹는 즐거움이 있었고 감칠맛 나는 국물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꿀떡꿀떡 넘어갔다. 그날부로 나는 ‘ㄷ’ 식당의 충성스러운 단골이 되었다.  M과 헤어지고도 꾸준히  ‘ㄷ’ 식당에 방문하곤 했다.



    





베트남으로 떠나는 일이 확정 났을 때만 해도 친구들과 헤어져서 슬프겠구나, 정도를 막연하게 예상했다. 지쳐 퇴근한 날, 만날 사람이 아무도 없겠지. 친구가 삶이 힘들다며 SOS를 칠 때 달려갈 수 없겠지. 그래서 코인노래방에 가 목이 상해 돌아오는 일도, 고등학교 때부터 들르던 와플 노점상에서 생크림 가득한 와플을 힘겹게 베어 물고는 서로를 보며 웃는 일도 없겠지.




출항이 두 달 정도 남았던 시기쯤 낙곱새가 땡겼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별은 사람이 아니라 장소와도 해야 하는 거구나. ‘ㄷ’ 식당에서 낙곱새에 차돌과 우동사리 추가, 마무리로 볶음밥 1인분만을 주문하는 일도 없어지는 거구나.




맛집과 헤어진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친구를 못 만나는 상황보다 치명적이었다. 친구는 놀러 오거나 새로 사귈 수라도 있지만 맛집이 날 만나러 장소이전을 해줄 리 만무했다. 무엇보다도 고수향 가득한 쌀국수가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다진 마늘이 듬뿍 들어간 국물과 찰기 흐르는 흰쌀밥이 강강술래를 추는 걸 이길 수는 없었다. 내 혓바닥은 상당히 애국보수란 말이다...









곱창을 먹어본 적이 없다며 망설이던 친구 H를 용케 설득해 ‘ㄷ’ 식당으로 향했다. ‘ㄷ’ 식당은 그날도 훌륭했다. 곱창을 씹으며 기름과 국물이 부드럽게 섞이는 풍미를 음미했다. 이젠 더는 만끽할 수 없는 황홀경일테다.



다행히도 H 역시 먹어보니 맛있다며 엄지를 들었다. 되었다. 둘이 행복할 일만 남았다. H를 아련하게 쳐다봤다. 이제는 그가 나 대신 ‘ㄷ’ 식당과 행복할 차례였다. H 역시 이곳에서 이런저런 추억을 만들어 가길 바랐다. 안녕, 나의 낙곱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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