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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Feb 24. 2024

독립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외국에서 혼자 살면 좋아 죽을 줄 알았지

비행기에서 내려 타국의 땅을 밟는 순간이면 그 나라만의 고유한 냄새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흙과 향신료와 자연환경이 어우러져 훅 올라오는 그 나라만의 냄새. 여행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추억에 젖어 다녀온 나라의 향에 대해 말해주곤 했다.



호찌민 공항에 내리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베트남 냄새가 난다며 설레했다. 코가 막혀서일까, 나는 아무것도 맡지 못했다. 냄새에 둔감한 편이라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실망스러웠다.     








호찌민 냄새는 모르겠어도 하수구 냄새는 똑똑히 맡을 수 있었다. 새 집이라는 반가움에 부푼 채 방을 하나씩 열어보는데 화장실에서 큼큼한 냄새가 훅 올라오는 게 아닌가. 소심하게 환기를 시도하다가 외부 생명체가 언제 침입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그냥 문을 닫았다.



스위트 홈이 되어야 할 내 첫 집의 문제는 악취뿐만이 아니었다. 애매하게 마감처리 된 전선이며 수도관이 집 안 곳곳에 있었다. 흰색이어야 마땅할 벽지에 군데군데 얼룩이 졌다. 원래 이 정도는 한국 집들도 가진 하자인가? 집주인과의 대화를 통해 깨끗함을 쟁취하는 시스템인가? 베트남에서 완벽한 상태의 집을 바라는 건 욕심일까? 여러 의문이 생겼으나 호찌민의 이 곳이 내 첫 자취집이었으므로 알 턱이 없었다.




     





부모님과 20여 년을 함께 살았다. 자취에 대한 환상이 부풀기 충분한 기간이었다. 상상 속의 나는 좋아하는 소품들로만 이루어진 깨끗한 공간에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한다’는 말과 ‘내가 사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한 끝 차이임을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계란프라이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 먹고 출근하는 로망이 있었다. 크게 어려운 요리도 아니고 시간도 적게 걸리는지라 별 것 아닐 줄 알았다.



이사 첫날부터 마트에 가 호기롭게 계란을 사 왔다. 다음날 아침에 계란프라이를 하려고 보니 프라이팬이 없었다. 당연하다. 사질 않았으니 없을 수밖에.


가구점에 들러 적당한 사이즈의 프라이팬을 사 왔다. 다시 요리를 하려고 보니 식용유가 없었다. 당연하다. 알아서 샀어야지.


식용유가 준비되어 드디어 요리를 하려고 보니 프라이팬을 한 번 닦고 써야 할 것 같았다. 베트남 수돗물은 생으로 쓰기에는 질이 나쁘다는 충고가 떠올랐다. 정수기 필터를 깔지 않은 상황이므로 설거지를 할 수 없어 다시 다음으로 미뤘다.




3일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계란프라이를 할 수 있었다. 요리하다가 소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젠 놀랍지도 않다). 그렇게 싱거운 계란밥을 간신히 입에 넣을 수 있었다.




식사를 끝내니 속이 안 좋았다. 수돗물 필터가 똑바로 작동하는 것인지 의심하며 화장실에 갔다. 베트남 변기는 기본 물 양이 상당히 적은 편이라 변기 내부에 대변이 잘 묻었다. 물끄러미 그 모양새를 바라보다가 이 똥도 내가 닦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격언을,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농담을 호기롭게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얼룩진 바닥을 보며 한숨 한 번, 텅 빈 냉장고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여러 악취가 칵테일 되어 있는 화장실 보며 눈물 한 방울. 나의 첫 자취 생활이 그렇게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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