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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야호 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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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Feb 22. 2024

당신들, 날 이렇게나 살고 싶게 만들다니 제법이야

수능 일주일 전부터 무단횡단을 그만뒀다. 신호를 칼같이 지키는 건 물론이요, 사회적 지위를 조금만 더 버렸다면 한 손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넜을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꼭 살아야 했다. 혹시라도 차에 치여 죽는 바람에 수능을 못 보게 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사실 그로부터 세 달쯤 전에는 육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지금 죽으면 공부를 안 해도 되겠지, 하는 상상을 했었다. 사람 마음이 참 휙휙 바뀐다.



호찌민에 떠나기 한 달쯤 전부터 생각 속에 죽음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이유는 오토바이 때문이었다.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를 타겠다는 말에 주위에서 한 마디씩 우려를 표했다.


“너 그러다 죽어.”

“내가 아는 오빠가 있는데, 그 오빠 친구가 오토바이 타다가 죽었대.”

“의사들이 입을 모아서 오토바이는 타지 말라고 하는 거 알지. 교통사고 나면 즉사라고.”



딱히 틀린 말은 없다. 오토바이는 위험하다. 나는 2종 면허 취득자인 데다 전동킥보드만 한 번 타본 게 경험의 전부다. 게다가 장소는 오토바이가 도로를 메우는 도시 호찌민이다. 아,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무심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중에 붕 떠올랐다가 도로 위로 떨어지는 내가 그려졌다. 어처구니없는 죽음이지만 확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저런 헤아린 보다가 그냥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차가운 진실을 받아들였다. 따지고 보면 삶이 다 그렇다. 비행기를 타는 사람은 추락을 각오해야 한다. 풋살인은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고3 시절의 내 모습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나는 심경 변화가 급격한 사람이다(드리블 때 방향 전환을 그렇게 해야 하는데). 마음의 온도가 바뀐 계기는 이번에도 주변 사람들이었다.



조용히 계좌로 돈을 쏴주던 부장님, 마지막 경기라며 지방에서 올라와 함께 풋살을 하던 친구들, 집으로 찾아와 깜짝 선물을 주던 풋살팀원들... 새로운 시작에 싱글벙글하던 나는 어느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엉엉 울고 있었다. 상대 입장에서는 예의상 한 사회적 말들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다정한 응원들을 들어가며 마음이 점점 덥혀졌다.



졸지에 비장하게 공항으로 향했다. 삶을 향한 집착이 굉장히 충만해진 상태였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걸 가벼이 여길 수는 없었다. 결단코 살아 웃으며 소중한 이들과 재회하리라. 그들이 힘들 때 받았던 애정을 언젠가 이자까지 쳐서 갚아주리라. 누가 죽이겠다고 하지도 않았건만 결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아, 그래도 오토바이를 타긴 할 거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어딜 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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