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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May 16. 2024

내 손바닥을 후려치고 떠났던 네가

형식적이더라도 스승의 날이 있어서 다행인지

“아싸, 오늘은 남아서 할 거 없죠?”

너의 마지막 말이었다. 선재는 그렇게 겅중겅중 뛰며 교실을 떠났다. 지나치게 평소와도 같았다. 그래도 이제 못 볼 텐데 제대로 인사 좀 해주지.








작년 아이들을 떠올리자면 하나하나 애틋하지만 선재는 여기에 미운 정까지 담뿍 들어버린 존재였다. 아홉 살 먹은 동갑내기 반 아이들마저 ‘선재만 없으면 우리 반은 다 잘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최고의 말썽꾸러기가 선재였다.




선재는 방임의 결정체 같은 아이였다. 아침저녁을 거르거나 편의점에서 때우기는 기본이었고, 여름에도 구멍이 난 기모 후드를 입고 다녔다. 집에서 연필과 공책은 챙겨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당연하니 생략하자.



할 일이 없으니 선재가 하루종일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해 있는 것은 당연했다. 어린 나이부터 스마트폰에 절여지면 인간이 어떻게 되는지 선재를 통해 배웠다. 선재의 집중력은 틱톡과 유튜브 쇼츠를 통해 잘게 토막 났고, 그 결과 1분 주기로 눈이 혼탁해지며 정신이 나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임 덕에 선재와 방과후 내내 씨름을 할 수 있었다. 학원 스케줄 때문에 감히 아이들을 남길 수 없고, 학부모들 역시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아동학대로 신고나 안 하면 다행인 요즈음이다. 하지만 선재에게는 ‘우리 애가 힘들어하니까 그냥 보내 달라’고 말할 보호자가 없었고, 나는 멋대로 선재를 남겨서 공부를 시켰다.





받아쓰기를 시키겠다고 그 산만한 아이를 붙들고 씨름을 했다. 4단을 외워내면 기름지고 냄새나는 머리를 기꺼이 쓰다듬었다. 선재는 힘들다며 다른 반에 보내달라고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그건 그냥 추임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선재는 틀린 문장을 2개쯤 쓰고 나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지 교실을 뛰쳐나가 복도를 뛰다가 다시 돌아왔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 나는 예정에 없던 술래잡기를 했다.




선재는 머리를 매일 감아야 하는지 모르던 아이였다. 땀이 났으면 씻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냄새가 나서 친구들이 싫어한다는 사실을 나에게 배웠다. 넘어져서 팔에 굵직한 상처가 났을 때 흉터 연고를 매일같이 갈아주던 사람도 나였다.




과장 좀 보태 재워주는 것 빼고는 다 했다. 선재를 집에 보내고 나면 진이 다 빠졌지만 한편으로 나의 동기가 지극히 이기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학생을 교화하는 선생님이라는 모습에 자아도취 되어 있었다. 머릿속에서 나는 선생 김봉두*요 키팅 선생님*이었다. 나에겐 나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어서 선재 너도 그런 줄 알았다.

*둘 다 교육 영화(선생 김봉두,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멋진 선생님으로 등장하는 사람이다.





어떠한 미련도 없이 선재가 교실을 탈출하듯 나갔을 때,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영화처럼 개과천선하는 결과는 아니더라도 선생님을 못 보게 돼서 슬프다는 식의 말 정도는 할 거라고 감히 예상했었다. 작별인사랍시고 하이파이브를 빙자해 내 손을 후려치고는 상쾌하게 떠나버리는 선재를 보고 생각했다. 역시 현실은 영화와 많이 다르군.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니 내심 씁쓸했다.







발령 동기이자 현재 선재의 담임인 G에게서 사진이 왔다. 스승의 날을 맞아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이 쓴 편지였다. 아이들의 이름을 볼 때마다 함께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자동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곳에는 선재의 편지도 있었다. 작년에 감사했다는 뻔한 말이 편지지도 아니고 공책에(놀랍지 않다. 편지지는 잃어버렸겠지) 못난이 글씨로 적혀있었다. 객관적으로 못쓴 편지임에도 뭉클했다. 네가 글을 적었다니. 그것도 세 문장이나! 쓰다가 교실을 몇 번이나 탈출했을지 궁금했다.



‘선재가 아직도 몇 번 선생님 이야기를 해요. 저보고 베트남 가게 비행기표 사달라는 거 있죠.’ 선생님을 친구 대하듯 하는 적당히 예의 없는 말투가 여전해서 웃음이 났다. 그렇게 쿨한 척 달려 나가더니 너도 내가 그리웠구나.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지난 1년이 영 헛일은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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