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혜원 Oct 17. 2019

영화제, 가면 좋습니까?

안녕하세요, <K대_OO닮음_93년생.avi>의 감독 정혜원입니다.

축하해, 너 서울독립영화제 됐더라!   

월요일, 많은 분들께 감사하게도 좋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작년 찍었던 단편영화, <K대_OO닮음_93년생.avi>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되었다는 것. 덕분에 11월과 12월을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확실히 지난 학기 내내 “왜 내 영화는 선택받지 못했을까?” 하며 방에서 죽치고 있던 것보다는 마음이 조금 편하다)     


영화제를 가면 돈이 나와요?

아니면, 감독님 소리를 듣는 게 기뻐서 그런가?     


그렇지는 않다.      


사실 진짜 이유는 이때 빼곤 단편영화가 관객을 만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과제다, 졸업영화다, 그도 아니면 개인 작업이다 하는 명목으로 매해 수천편이 제작되지만, 제작 다음 년도에 영화제를 돌지 못하면 그대로 사장되는 단편 영화 시장에서 영화제 초청은 말 그대로 한 달 더 당신의 영화가 잊혀지지 않을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인 셈이다. (단편영화 스트리밍 아카이브가 정말 필요한 이유다. 이 아카이브에서 일반관객들도 단편 영화를 관람할 수 있고, 제작자는 신인 배우 감독 기술 스텝을 발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단편 한 편의 제작비가 700-1500선인데 비해 작품들이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장되는 건 정말 아까운 일이다. 실습치고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다)  


그럼 어떤 영화제들이 있는가 하면?     


가장 쟁쟁하기로는 제일 먼저 포문을 여는 전주 국제 영화제, 한국 단편 영화 감독들의 최대 목표 미장센 단편 영화제, 암묵적으로 프리미어만 받는다는 부산 국제 영화제가 있을 수 있겠다. 또, 내 영화가 판타지나, 액션, 호러를 가미했다면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를 노릴 수 있겠고, 음악 영화라면 제천 음악 영화제 등이 있다.      


보통 몇 편 정도가 가나요?     


영화제 마다 다르지만, 보통 한 섹션 당 3-4편의 단편 영화를 묶어서 상영하고 4-5개 섹션 정도를 두는 것 같다. 대체로 단편은 25분을 넘기지 않으므로, 한 섹션=장편 영화 하나 보는 시간 정도를 생각하면 좋다. 보통 한 섹션이 공통적인 키워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섹션 내의 영화를 연이어서 상영하므로 중간에 들어가거나 나오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만약 당신이 <K대_OO닮음_93년생.avi>를 보고자 아시아나 단편 영화제의 국내 경쟁1 섹션을 예매한다면, 그와 비슷한 키워드를 가진 2-3편의 단편을 함께 보게 되는 것이다. 가격은 보통 상업영화의 절반 정도? 5000-6000정도에 인터넷 예매 혹은 현장 예매가 가능하다. 프로그램 북과 굿즈도 대체로 같이 준다. 그리고 영화제 한 달 전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심사평가단을 모집한다. 심사단은 공짜로 영화를 관람하고 심사한다. 관람 시간과 영화도 직접 선택할 수 있으니 이를 노려보시라!     


저는 관객이에요. 영화제에 가면 뭐가 좋나요?     


거의 대부분의 영화 상영에 GV가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방금 본 영화의 주인공과 감독을 바로 만나 감상을 전해줄 수도 있고,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도 있다. 보통 한 섹션을 상영한 후, 3-4명의 감독들이 같이 나와 프로그래머의 진행을 중심으로 30-40분간 이야기를 나눈다. 이 중 감독이 프로그래머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은 10분 정도. 나머지는 관객과 소통한다. 방금 본 영화의 주역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 확실히 영화제가 아니라면, 어려운 경험일 것이다.     


그리고 영화제 자체가

신인 감독과 신인 배우의 경연의 장인 셈이라,

당신의 루키를 발굴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 저 배우 연기력이 심상치 않은 걸?’ 하는 사이 드라마에서 반가운 얼굴을 마주할 수도 있고, ‘와! 이 감독 독특한데?’ 하는 사이에 그 감독의 차기작 소식을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들 재치와 투기가 넘친다. 


단편영화의 최대 가치가 연출자와 연기자의 포트폴리오인 만큼, 각자의 매력과 목표를 온전히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장재현 감독의 <열두번째 보조 사제>를 예로 들겠다(후에 강동원 주연의 <검은 사제들>로 재탄생했던 바로 그 작품이다). 미장센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이 짧은 작품이 한국 오컬트 영화의 재조명을 이끈 것처럼, 지금 상업 영화 시류에서 보기 어려운 뮤지컬, 오컬트, 좀비 고어, 애니메이션, 정통 멜로, 다양하게 등장하며 대체로 골 때린다(좋은 의미로). 수 천편 중의 경쟁을 거치고 나온 만큼 제법 완성도도 갖추고 있다.      


그러니 한번 가보시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관객들에게 드리는 팁은,     


본인의 취향 저격 장르에 맞는 영화제 공략이다.      


1. 멀리 안가고, 높은 완성도의 장르 영화를 보고 싶어요.     
= 6월 말 서울 개최, 미장센 단편 영화제(샴푸 그거 맞다)를 추천한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로맨스/ 희극지왕-코미디/ 비정성시-사회드라마/ 절대 악몽-호러/ 사백번의 구타- 액션)     


미장센 영화제의 팁은 입봉(데뷔) 직전의 감독들이 제일 많다는 점인데, 그러다보니 제법 인지도 있는 배우를 볼 가능성이 높고 작품의 수준이 높은 편이며, 이 영화제에서 상 받은 감독은 보통 차기작 소식을 들을 가능성이 있는 편이다. (특히 비정성시 가는 게 아주 바늘구멍이라고 들었다. 내년에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으로 가고 싶다. 진짜. 정말. 제발)


2. 멀리가도 괜찮아요. 높은 완성도의 단편 영화를 첫 번째 관객으로 보고 싶어요.
= 2월 말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4월 말 전주 국제 영화제/ 10월 중순 부산 국제 영화제     


이 세 영화제는 국내 메인 영화제인 만큼, 완성도가 가장 높은 편이며 대체로 프리미어를 받는다. 그러니까 다른 영화제 안 틀었던 영화만 갈 수 있다는 뜻이다(부천은 아닐건데, 시기상 대체로 첫 번째 상영인 경우가 많다). 물론, 여기를 돌고 난 후에 입소문을 타서 다른 영화제를 갈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첫 관객이 되고 싶다면 단연 프리미어를 추천한다. 그리고 전주와 부산, 부천은 장편 영화를 함께 관람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 뜻은 근처 맛집에서 친분을 다지는 유명감독들과 그들의 후배들(단편감독)을 다시 한번 마주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신 전주, 부산은 장르가 대체로 드라마다. 특이한건 역시 부천이다.     


(가면 유명인이 정말 많다. 다들 학교 선후배고 연출부 선후배라 뭉쳐서 술 먹는 사람 붙잡고 “어?” 하고 “뭐 찍으셨어요?” 말 걸면 반은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만큼 많다)       


3. 그 작품 좀 입소문 탔다며? 서울에서 다시 보고 싶어!
= 11월 아시아나 국제 단편 영화제
= 12월 서울 독립영화제     


영화제는 많은 편이지만, 당해년도의 초청작들은 대체로 겹치는 편이다. 각자의 취향은 다르지만 좋은 작품으로 꼽히는 작품들은 주로 공통적이기 때문에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했거나, 여타 영화제에서 수상했던 작품은 하반기 영화제에서도 상영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상반기에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탄 작품을 서울에서 마주하기에는 하반기 결산 영화제들이 제격이다.      


아시아나 단편영화제는 국내 작품 외에 해외작품을 찾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올해의 미장센 수상작과 여성영화제 수상작, 전주 수상작, 칸 출품작이 대거 등장한다(내 영화는 해당사항이 전혀 없지만, 해당 영화들을 본 사람으로서 강력 추천한다) 정말 입소문을 타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는 몇 개 작품(<남매의 집>, <몸값> 정도?)를 제하면 내년부터는 보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놓치기 전에 꼭 보시라!     


서울 독립영화제는 독립 영화제의 꽃인데, 장편을 함께 볼 수 있으며 신예 뿐 아니라 독립영화 거장 감독들의 작품을 함께 만나 볼 수 있다. 상반기에 보지 못했던 작품들이 6-7월 후반을 마치고 새로 등장하는 경우도 많기에 하반기 신예와, 상반기 쟁쟁한 작품의 경연이 또다시 일어나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접근성이다. 둘 다 서울에서 한다.      


가본 영화제 중에 제일은?     


당당히 대답하겠다.      


“아직 모르겠어요.”     


사실 영화제를 올해 처음 가본 영화 막내라서 감히 어떻다 저렇다 평하기가 어렵다. (영화 안 할 때 놀러간 거 빼고, 영화하기 전에 미장센, 전주, 부산, 제천 가 봤다. 개인적으로는 전주가 제일 재밌었다). 상영으로는 대구 단편 영화제, 제주 여성 영화제를 가보았다. 곧 아시아나 단편 영화제를 갈 예정이고, 광주 여성 영화제에서 토크 콘서트를 할 예정이며, 올해의 마지막 상영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하게 될 것 같다. 갈 때마다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듣고 대답하다 오는 편이다. 다 돌고 난 후에 각자 영화제의 특성 정도는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영화를 찍고 나서 가장 많이들은 질문을 꼽자면,     


“이 영화 제목이 특이하네요?”와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어요? (혹시 감독님 본인이야기세요?)”     


다음 번 브런치에서는 이에 대해서 한 번 적어볼까 한다. 이번에도 분명히 나올 것 같아서 가서 할 말도 정리할 겸. (의외로 무대 공포증이 있어서 사람들 많은데 가면 한 말이 생각이 잘 안 난다. 그냥 블랙 아웃이다. 그저 티가 안 났기만을 빈다)      


찍은 영화가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      

모든 감독들의 가장 큰 염원일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린다.     

한 달 더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부디 오래 기억해주세요.     


여기까지.  <K대_OO닮음_93년생.avi>의 감독 정혜원이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