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설은 믿고 읽게 된다. 신간이 나왔기에 그것도 제주 4.3항쟁을 담았다기에 읽어야지 싶었다. 마침 8년째 독서 모임을 하고 있는 선생님들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2021년 한 해는 책을 구입하기보다는 도서관에서 대여하기로 마음먹고 있었기에 도서관 대출을 검색했다. 신간이라 그런지 도서관은 계속 대출 중이거나 대출 대기 중이었다. 부천에는 13개의 특성화된 시립도서관, 22개의 공립도서관이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전체 43권이 있었는데 내 차지가 돌아오지 않았다. 읽기는 해야겠고 어쩔 수 없이 e-book을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아뿔싸, <작별하지 않는다> e-book으로 읽는 내내 글자만 영혼없이 읽고 있었다. 시선이 마음이 갈피를 못 잡았다. 빨려들지 않았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없었다. 너무 기대했나 싶으면서 내가 왜 그러는지 나를 돌아보게 됐다. 생각해보니 e-book으로 읽었기 때문이었던가 보다. 역시 책은 밑줄 긋기도 하고, 메모도 하면서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는 재미. 그것이 빠져서 책 속으로 스며들지 못한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주인공 경하는 소설가다. 경하는 한강 작가 자신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친구 인선은 대학 동문이지만 사회에 나와 직장 생활하며 친구가 되었다. 그런 인선이 병원에 있다며 갑작스레 전화를 해 온다. 인선이 고향 제주에서 목공 일을 하다 두 손가락이 절단되어 봉합수술로 인해 서울 병원에 입원했단다. 경하는 다큐영화를 제작하는 직업을 갖고 있던 그녀가 목공 일을 하다 다쳤다는 소식도 당황스럽고, 병원에 있는 동안 그녀를 대신해 제주에 내려가 새를 돌봐달라는 말도 난감하다. 그러나 얼떨결에 등 떠밀리듯 제주에 내려간 경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곱씹을수록 ‘잘 썼구나.’, ‘시점을 헛갈리면서도 독특한 구성으로 썼구나.’, ‘다시 보니 정말 탄탄한 구성이네.’, ‘소설은 이렇게 써야겠구나.’, ‘얼마나 많은 고뇌를 했을까.’, ‘얼마나 많이 제주를 내려가고 자료를 찾느라 다리품을 팔았을까.’, '세련되게 썼다.', '난해한듯 특별한 구성이 좋다.' 싶으면서 진종일 눈을 맞으며 서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성근 눈이 내린다’로 시작된 소설은 책을 덮을 때까지 눈이 내린다. ‘성글다’ 어디서 보았을까? 자주 쓰지 않지만 익숙한 어휘다. 나는 책을 처음 읽을 때부터 이렇게 멈춰가며 쉬엄쉬엄 읽었던가 보다. 그러니 e-book으로 읽으면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성글다’는 공광규 시인의 시 ‘흰 눈’ 마지막 행 ‘성긴 머리에 앉는다’ 시구절에도 담겼다. 시 내용은 겨울에 다 못 내린 눈이 초봄에도 내리는데 앉다가 앉다가 머리가 하얀 할머니 머리가 꽃나무 가지인 줄 알고 내린다는 이야기다. 이 시를 너무나 좋아해서 시그림책 <흰 눈> (공광규 시/ 주리 그림/ 바우솔)을 구입했는데 시인의 시와 그림작가의 그림이 조화를 잘 이루어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수업할 때 많이 읽어주고, 자랑도 많이 하고, 홍보도 많이 했던 그림책이기도 하다. 아이쿠, 책 이야기가 샛길로 갔다.
다시 <작별하지 않는다>로 돌아와서
<작별하지 않는다>는 3부로 되었다. 소설 흐름은 경하의 시점과 인선의 시점, 그리고 정심의 시점, 다시 경하의 시점으로 마무리된다. 인선은 제주 4.3 항쟁의 피해자 가족이다. 어머니 정심이 어린 날 겪은 국가의 무차별적인 폭력이 있었던 제주 4.3 이야기는 어린 정심이 그 악몽 같은 현실을 어찌 다 겪으며 온전한 정신으로 살았을까 싶을 만큼 충격적이다. 가족의 시신을 찾아 죽은 사람의 얼굴 위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손수건으로 치우는 엄마 같은 열일곱 언니, 언니 옷자락 붙잡고 질끈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며 시신을 확인하던 열세 살 정심, 자매는 그 끔찍하고 잔혹한 일을 겪은 후에도 삶을 살아야 했다. 인선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그날 가족 모두를 잃고 아무 죄도 없이 15년 감옥생활을 했다. 어머니 정심은 평생 동안 생사를 모르는 오빠를 찾아, 오빠의 흔적을 찾아 헤매다 삶을 마감한다. 그런 어머니 이야기를 인선이 경하에게 들려주고, 인선이 찍은 다큐에서 제주 주민들의 입으로 들려져 나온다. 제주 4.3은 제주 도민들 사이에서도 ‘속솜허라’는 말처럼 쉬쉬하고, 묻어두었던 아픈 역사다.
e-book
<작별하지 않는다> 소설은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그래서 읽다가 혼자 궁시렁거리며 읽게 된다. ‘대화체는 산뜻하게 큰따옴표를 해줘야지, 아니면 다른 표시를 하던가 당최 대화체인지, 혼잣말인지, 설명인지, 분간 안 되게 써서 읽는 데 불편하다.’부터 '죽은 새는 왜 자꾸 등장하고', '병원에 있어야 할 인선이 제주 집에 함께 있는 건 뭔가' 싶다가 다 읽고 나니 어렴풋이 알겠다. 부러 이렇게 특별한 구성을 했나보다. 좀 더 꼼꼼하게 읽을 걸 싶어 다시 읽고, 경하가 되었다가 인선이 되었다가 정심이 되어 본다. 그러다 인선의 다큐에 나오는 제주 도민이 되어 본다. 시국이 어려웠던 그때 이후 절대로 바닷고기는 먹지 않는다는 인터뷰는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아픔이었을지 절절하게 느껴져 눈물이 나왔다.
소설은 여전히 궁금한 것투성이다. 그래도 좋다. 한강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 제주 4.3을 이야기하는 다른 소설(몇 권 읽지 못했지만)과 확연한 차이도 있었다. 제주 4.3은 우리가 아는 아픈 역사다. 비극의 역사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쫓아가는 이야기의 실마리 끝에 정확히 무엇이 있을까를 찾으려 했다. 그렇게 찾은 것이 대구형무소로 끌려간 정심의 오빠, 인선의 아버지 같은 민간인들이 군·경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되었단 사실이다.
대구형무소를 거쳐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을 당했던 안타까운 현대사는 분명히 재조명되고 밝혀져야 할 것이다.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치되었다. 2009년에 정식으로 민간인 희생 사건으로 인정되었고, 유해발굴 작업을 하다 중단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2020년 5월 20일 과거사 관련 업무지원단 활동을 재개하는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2021년부터 다시 진실규명사항과 현재 유해 발굴 계획 협의·건의 사항을 수렴했다는 기사를 봤다. 또한 제주4.3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본다. 경하가 꾸는 꿈의 의미, 꿈속에 내리는 눈, 꿈속에 검은 통나무, 과거에 내리는 눈, 현재 내리는 눈, 결정, 결속, 눈송이, 눈의 의미, 실, 새, 인선의 손가락 봉합수술과 회복을 위해 바늘로 콕콕 찌르는 상황 등이 모두 제주 4.3 항쟁과 연결된다. 대구형무소로 끌려간 민간인, 그리고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죽어간 민간인에 대한 진실규명으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상처를 들추는 것이 두려워 ‘속솜허라’ 했지만 진정 아픈 곳의 원인을 밝혀야 진상을 밝혀야 작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발문하기
1.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 읽는 동안 마음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문장이나 장면은 어느 부분인가? 왜 그런가?
3. 소설 시작부터 끝까지 내리는 눈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4. 경하, 인선, 정심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5. 작가는 이 소설을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했다. 말에 의미는 무엇인가?
6. 여러분이 만약 '정심'이나 '인선'의 입장이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7. 제주4.3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모두를 위한 방법인가?
8. 인선이 진짜 경하를 제주에 뵈낸 이유는 무엇일까?
9. 경하는 다시 소설을 쓰고 완성할 수 있을까?
10. 작가 정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강 작가의 ‘눈’과 관련된 다른 단편소설도 읽어봐야겠다.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과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작별>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제주 4.3항쟁과 관련된 다른 책들을 소개하자면 현기영의 <순이 삼촌>, 장성자의 <모르는 아이>, 오열의 <지슬> <지슬>은 영화로도 그려졌다. 그림책으로 정란희의 <무명천 할머니> 등을 추천해 본다.
2021년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12월 초에 제주 여행을 갔었다. 미술관 몇 곳과 제주 4.3 평화공원 기념관을 가기 위해서였다. 일정이 빡빡해서 해거름에 갔던 평화공원은 매우 한산했다. 크고 넓은 공간에 관람객이 서너 사람밖에 되지 않아서 다행이면서도 많이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전시관 밖 공원도 좋았는데 희야가 렌터카 반납 시간이 다가온다며 재촉하는 바람에 다 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올해 봄 남편이 운전해준다고 했으니 그와 꼭 재방문할 것이다. 전시장이 매우 잘 되어 있고, 설명도 자세하다. 더구나 해설해주는 분도 계시는데 우린 급해서 그렇게 여유롭게 관람을 하지는 못했다. 제주에 여행을 가는 국민들은 꼭 4.3평화공원 기념관을 다녀 가길 바라는 오지랖이 발동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는 아픈 역사라도 반드시 알아야하고, 그런 아픔을 되풀이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제주4.3항쟁을 알리는 계기가 된 소설 <순이 삼촌> 현기영 중단편소설집/ 창비 1978년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