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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특한 버라이어티 Feb 24. 2021

나마스테

새벽 5시,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빛에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았다.


다람살라의 우기는 시도 때도 없는 비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스라이 밝아오는 새벽녘, 늘 반복되는 하루아침의 시작을 위해 방문을 열고 사원으로 걸음을 향해야 했지만 다시 자리에 누웠다.


벌써 일주일, 오른쪽 발목에 상처가 났는데 상처부위에 나쁜 균이 들어가면서 농이 찬 것이 발목이 온통 다 부어버린 것이었다.

발목의 통증으로 인해 며칠을 계속 절룩거리며 걸음을 걷노라니 사원에서 매일같이 만나는 티베트 아주머니

한분이 중국에서 한방 공부를 했다는 티베트 스님을 소개해주었다.


침도 맞고, 부황도 하고 고름도 빼고 했지만 치료를 받고 하루 만에 쉬 날 수 있는 가벼운 상처는 아니었다.



그렇게 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아침 9시, 템플 로드의 노점상에서 100루피를 주고 산 판초를 걸치고 어제 방문했던 티베트 스님의 한의원을 찾아갔다.


침을 맞고 부황을 뜨는 사이 어느새 비가 그친 거리는 향긋한 풀내음이 가득했다.

상처로 인해 발걸음이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나는 사원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사원을 시계방향으로 도는 다람살라의 코라길을 먼저 돌았다.


“타시텔레” (안녕하세요)


“타시텔레” (안녕하세요)


코라길을 돌며 마주하는 사람들마다 가벼운 눈웃음과 함께 인사를 건넨다.


할 줄 아는 "티베트 어"라고는 그 한마디였지만 아침 코라길에, 그리고 사원에서 늘 만나는 다람살라의 티베트 주민들에게 나는 더 이상 낯선 이방인이 아니었다.


특히, 청소를 하면서 인연을 맺은 법당을 관리하는 티베트 스님과는 서로 대화는 통하지 않았지만 벌써 석 달이 넘어가는 사원을 방문하는 이력 아닌 이력으로 나름 친해져 가끔씩 망고 같은 과일도 한 봉지씩 건네받곤 하였다.



안개가 개이면서 비가 그친 사원 주변의 코라길을 한 바퀴 돌고 사원으로 들어서니 매일같이 보아오던 익숙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 타르초에 불을 지피는 스님, 그리고 절판을 깔아놓고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사람들. 그 모습 그대로 하루 종일,  1년 365일 이어지는 달라이 라마 사원의 풍경이다.





그런데 청소부터 먼저 하기 위해

 

수돗가로 가서 걸레를 빨아 사원의 법당 안으로 들어온 순간 나도 모르게 적잖이 놀라게 되었다.


평상시, 사람의 출입이 원래 없는 곳이지만 그래도 출입을 할 때는 반드시 신발을 벗고 법당의 내부로 출입을 해야 하는 곳인데 내 눈앞에 펼쳐진 법당의 내부는 비에 젖은 신발 차림 그대로 경내로 들어서 진흙바닥이 되어버린 발자국들이 가득한 풍경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진심 (瞋心)이 일어났다.


매일같이 청소를 할 때도 더러워진 걸레를 수돗가로 들고 가서 예닐곱 번씩은 빨아가면서 해야 하는 넓은 바닥의 청소였다.

이같이 흙투성이가 된 바닥이라면 족히 서른 번도 넘게 수돗가를 오가야 될 노릇이었다.


흙투성이가 되어 버린 바닥을 청소를 한다는 것이 도무지 엄두가 나지도 않았지만 도대체 어느 몰상식한 인간들이 엄숙하고 경건한 경내에 이렇게 신발을 신고 무지막지하게 쳐들어 와 이 사단을 만들어 놓은 것인가 싶었다.


그 더러운 바닥에서 “절”을 할 수는 없었다.

청소를 하지 않으면 서원을 세우고 시작한 “절 수행”도 할 수 없었다.


걸레 자루를 바닥에 내려놓고 흙투성이가 되어 버린 바닥을 보면서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화가 났지만 화를 받아 줄 대상은 없었다.


그러고 나니...

화를 내는 나의 모습이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으로부터 한걸음 물러나와 화를 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 것이었다.


100일간의 “절”을 하겠다고 한 그 수행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면 방으로 돌아가서 해도 그만인 일이었다.

꼭 사원에서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바닥 청소를 하면서
왜 화를 내고 있는지에 대한 자책이었다.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또 다른 ""라는 아상 (我相)은 얼마나 치졸하고 졸렬하며 유치 찬란한 유아 (幼兒)인 것인지.

...


사원으로 향하는 걸음걸이 한걸음 한걸음이 그대로 곧 명상이 된다는 생각은 거짓이었다.


아직도 씻지 못한 죄가 그리도 많은 것인지, 아니면 그 무슨 이유인지.. 사원에만 오면 그저 숙연해 지기만 한다는 생각도 거짓이었다.


사원 안 조용한 곳, 틀어지지도 않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경을 읽고 있노라면...

그리고 일어나 자세를 추스르고 절을 하노라면 흐르던 눈물도 거짓이었다.  

모든 것이 그저 바람일 뿐이었다.


무지한 것이 매일같이 업을 쌓고 또한 매일같이 참회를 한다고 애만 쓰는데


날마다 몸으로 행하는 500배의 절은 무릎을 쪼개는 고통을 동반한
육체노동에 비할 바 없는 그저 시간을 킬링 하는 서툰 몸짓에 다름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자책의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걸레를 잡았다.


"여태껏 청소를 하면서도 깨닫지 못한 것을 이제야 조금 깨닫습니다.
바닥의 먼지는 흙먼지가 아니라 업장의 먼지인 것을,  
먼지는 업장의 이름이지 먼지가 아닌 것을..”



그렇게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수돗가와 사원 법당의 바닥을 오가는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법당 한구석에서 조용히 청소를 하고 있는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던 중년의 인도 남성이 조심스레 내게 다가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이보게 젊은이, 내게 잠시 그 걸레 자루를 빌려줄 수 있겠나?"


흐르는 눈물을 감추며 아무 말 없이 그에게 자루를 건넸지만 그는 걸레 자루를 받아 쥐고서도 한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건네받은 걸레 자루를 들고 사원 법당 한 구석을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오가며 바닥청소를 하던 그 인도인이 다시 내게 그 걸레 자루를 건네며 자신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댄 후, 가만히 내 손을 잡으며 말을 건넨다.


" 나마스테"  

(당신의 신께 경의를 표합니다)


나 역시 그의 말에 답례를 했다.


" 나마스테"

(당신의 신께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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