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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특한 버라이어티 Feb 25. 2021

타멜의 기억

그녀, 다시 만나다

달라이 라마가 계시는 다람살라의 남걀 사원에서 나가루 주나(용수 보살)의 계보를 잇는 샨티 데바의 입보리 행론을 주제로 한 달라이 라마의 법회를 마치자마자 네팔로 넘어오게 되었다.

 

다람살라에서 머물던 기간이 쉬이 지나가고 인도에서의 체류비자 재발급을 위해 잠깐 나와 네팔의 룸비니로 바로 들어온 것이다.


네팔 남부 테라이 지방의 룸비니.

기원전 623년 고타마 싯다르타의 탄생지로  불교 4대 성지중의 한 곳.

룸비니의 대성석가사는  인도에 머물면서 그 이후로도 비자 갱신을 위해 네팔에 들를 때마다 꼭 찾아가는 곳이 되었다.


그렇게 인도와 네팔 태국을 거치는 순례의 길 위에서 스스로 말벗을 만들지는 않았다.

공부가 없는 내게는 그저 여행객들과의 대화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유, 존재의 근원을 찾아 사유를 해나가는 시간이 훨씬 소중다.


하지만 삶은 헤아릴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우연과 인연으로 점철되는 시간의 기록.

그런 여행의 길 위에서 우연과 인연을 덧대어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람살라로 돌아가기 위해  룸비니에서 트만두 타멜로 돌아온 날, 타멜 지구에 정차한 릭샤에서 내려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다람살라로 돌아가는 날은 다음날.


공기오염이 심한 카트만두 타멜에 볼일은 없었다.

그저 식당에 들러 요기나 한 다음 하루 묵을 숙소를 구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는 다람살라에서 리쉬케시로 떠나간 집시 여인이 있었다.


타멜 여행자 거리의 허름한 식당.

타멜거리의 그 수많은 식당 중에 하필이면 릭샤가 내려준 거리 바로 앞의 식당에 웬걸.

때늦은 점심시간, 텅 빈 홀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그녀가 모모를 먹고 있는 식당으로 하필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지만 나 같은 나이롱순례자에게도 외양에서 풍기는 이미지 하나만으로 가히 누구도 범접을 함부로 할 수 없겠다 싶은 산전수전 다 겪었을 것만 같은 강한 내공의 기운이 절로 느껴지는 여인!


근 4개월 만의 해후? 였다.

텅 빈 식당에 홀로 앉아 모모를 먹고 있던 그녀가 입가에 얇은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했다.


다람살라에서 그렇게 오랜? 기간 재워주었는데도 고맙다 말 한마디 없이 리쉬케시로 떠나간 그녀였다.

그것도 인연이었다고 아무도 아는 이 없는 카트만두 타멜에서  뜻하지 않은 만남에 서로가 이다지도 반가운 것은 어인 연유인지.


"카트만두엔 웬일?"

"비자 때문에, 그러는 당신은?"

"나도 비자, 잘 지냈어?"

"그럼 잘 지내고 있지, 리쉬케시 간다더니?"

"갔었지, 요가를 하려 했는데 사이비 교습소만 난무하더라고.  나는 무스탕 가려고 들어왔지,

같이 갈까?"

"무스탕? 언젠가 가보고 싶기는 한데 지금은 글쎄. 난 룸비니에서 오는 길이네. 내일 다시 다람살라로 들어가"

"그래? 여기 앉아 같이 밥 먹자"

"그래, 당신이 괜찮다면"


그녀의 테이블에 같이 자리를 잡고 앉아 뚝바와 모모 한 접시를 추가로 주문하였다.


"내가 안 괜찮을 이유가 뭐 있어? 당신은 좋은 사람이니까. 온전한 정신이면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자기 숙소에 데려가 재우겠어?"

"그거야 스님들이 추우니까..."

"그러니까.. "

집시 여인이 입가에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 타멜에서 자고 내일 다람살라 들어간다고?"

"응"

"숙소는? "

"룸비니에서 지금 왔다니까.

이거 먹고 나가  구해야지. 돈이 없어 문제지 설마 타멜에 방이 없겠어?"

"그렇지. 방이야 널린 게 타멜이지.

다람살라에서는  하고 있어?"

"..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은 그냥.. 절을 하고 있어"


플라스틱 젓가락으로 모모를 집던 그녀가 빤히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 절은 왜 하는데?"


절수행을 왜 하냐는 그녀의 질문에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녀가 웃으며 다시 물었다.

"처음 만난 곳은 다람살라. 그리고 이제 카트만두. 

인도와 네팔을 넘나들며 절을 하고 있다네.

절을 하든 위빠사나를 하든 그런 건 다 필요 없어.

말을 알아들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정곡을 찔린 듯이 다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솔직히 말하면..힘들어서. 그냥 힘이 들어."

"뭐가 힘들어?"

"그냥.  모두."

"누가 힘들어?"

"내가"

"네가?  네가  누구인데?"


...


모모를 집던 그녀의 손이 이제 담배를 집어 들었다. 아무 말 없이 한 모금 깊게 빨아 들이마시곤 이내 내뱉으면서 그녀가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밥이나 먹어"

...


밥이나 먹으란다.

그런데 밥이 안 넘어간다.

목이 막혀버렸다.


"바보야

지금 이 순간만 너라고 인식하는 거란다.

느끼는 모든 감정은 순간적인 것.

그러니 네가 느끼는 그 모든 상들은 다 마음.

그것들은 네가 인식을 거두어내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란다.

알아듣겠니?

느끼는 모든 감정은 그저 그런 느낌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일 뿐.

네가 인식을 하면서 그것에 집중을 할 때 그것들이 네게로 와서 문제가 되는 것.

네가 인식을 거두어내면 그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어찌 보면 허무하지.

내 말을 이해할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모든 것이 텅 비어 있는 것이야.

그러니 다람살라를 가면 어쩔 것이고 룸비니를 가면 어쩔 것이야.

가도 가도 그 자리지.

갈 곳도 없어. 그냥 지금 이 자리야."


목이 메어왔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법문이 이어졌다.


"실재하는 것과 비 실재하는 것에 대한 사유를 해봐.

무엇이 실재하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이 실재하는 것이 아닌지.

힘이 들다 그랬지?

그러면 그냥 벼랑 끝까지 가봐."

...


"내일 떠난다했지?

그럼 오늘 밤은 나하고 같이 자"

"담배나 꺼, 사람 밥 먹고 있는데"

"그래, 그러니 오늘 밤은 내 숙소에 와서 자고 가라고"

"됐거든. 숙소 구할 거라고"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여인이 말을 이었다.

"남자. 여자 분별하지 마

우리는 하나야. 그러니 고민 길게 하지 마,  그리고 돈 아끼고 오늘은 당신이 바닥에서 자라고.

내 방에 가서 얘기나 마저 하게.

하기는  알아듣지를 못하니 더 이상 해줄 얘기도 없다만.  그냥 벼랑 끝까지 가봐"


끝내 이름도 나이도 국적도 서로가 묻지를 않았다.


"그나저나 오늘 밥값은 네가  계산해.

대신 재워줄게"


그렇게까지 얘기를 하는데 끝내 거절할 구실을 찾지는 못했다.

아니 쫓아가야만 했다.

이 여자는 그냥 여자가 아니었다.





도대체 바라나시의 사이비 사두도 그리고 지금 이 사이비 집시도 왜 다들 지금,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인지.

뭐가 하나라는 것인지.




아! 그러니...
현재 있는 이 순간만 나라고 인식하는 것이지 나의 것은 실제 아무것도 없는 듯요.
이래도 저래도 내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집착하는데서 문제가 시작되는 듯요.


그런데 말이지요.

어떠한 형태의 것이 되었든
그 집착이라는 것도 끝을 봐야 놓게 되는 듯요.

일즉일체다중일

일미진중함시방.
그러니 고통이고 괴로움이고 그 끝까지 가서 끝을 보고 하나가 되어 태워버려야 하는 듯요.


그 끝을 보게 되면 책이나 영상으로 접했던 내려놓음. 내맡김. 허용. 이러한 말들이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어느 순간 스스로 그렇게 되어버리는 듯요...


아!

불이중도.


그리고

그대 마음속에 이미 들어가 있다는 나.

너와 내가 따로 없다

자타불이.

답은 이미 그녀의 말속에 담겨있었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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