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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특한 버라이어티 Feb 26. 2021

지금 이 순간의 경험

LET me hug YOU

모든 경지는 자신의 통찰을 기반으로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달라이 라마의 지혜 명상/  로덴 역




세상 모든 것이 나의 마음이고 모든 대상들이 나의 의식이니 그저 생각하지 말고 보라는데 그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무슨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보라는 것인지.

보는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은 과연 또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이래도 저래도 결국은 대상도 마음일 뿐이라는데 그것을 상으로 분별하여 인식을 하니 집착을 하며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온이 내가 아닌 것을 안다면 세상 모든 집착에서 벗어날 터인데.

그저 인연 생, 인연멸. 인연 따라왔다가 인연 따라 흩어진다는 것을 어찌 그리 쉽게 알겠는가.


오온을 놓아 버린다는 것은 그저 존재한다는 것.

모든 것은 항상 하지 않으니 실재한다는 것은

그저 지금 이 순간의 경험뿐이라며 타멜에서 하룻밤을 같이 묵은 집시 여인은 계속해서 내게 "무아와 공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근기에 맞춰 방편이 달라지는 것이겠지만 근기도 상근기가 아닌 하근기. 공부가 아예 없는 자가 달라이 라마의 법회를 수차례 들은들, 서양 집시가 방바닥에 앉혀놓고 제행무상이며 제법무아, 일체개고를 논하며 오온 무아와 공성에 대한 이야기를 밤이 새도록 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내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는데 아직 공부에 대한 갈망이 부족한 탓으로 눈앞에 사이비 집시가 아니 서양 선지식이 밥을 떠먹여 주어도 소화를 못 시키고 있었다.


사이비 집시는 애정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그때 내게 혜안이 있었더라면 주저 없이 그녀를 따라 무스탕으로 나섰어야 했는데 바보처럼 그녀의 제안을 쉽게 따르지 못했다.


무스탕.

약 400년 가까운 오랜 세월 동안 세속에 숨겨져 왔던 은둔의 땅.

네팔의 중북부에 위치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너머의 미지의 계곡.



해발 8,000m가 넘는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리 너머에 자리하여 몬순의 영향을 덜 받는 곳으로 5월에서 10월까지 방문이 가능한 지역으로 그 옛날 소금을 싣고 히말라야를 넘나들었던 캬라반들이 지나간 그 발자취를 따라 1992년 처음으로 개방된 곳, 무스탕은 청전 스님의 방에서 읽었던 티베트 불교의 아버지 "파드마삼바바"가 그 옛날 수행을 하였던 곳.




라다크에서 걸렸던 고산병과 서울에서 걸렸던 폐기흉의 증상은 거의 흡사했다.

횡격막을 예리한 도끼로 찍힌듯한 날카로우면서도 또한 묵직한 통증, 그리고 호흡이 힘들어지는 것.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이러한 통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숨을 쉬는 행동, 즉 호흡하는 행위 그 자체를 아예 힘들게 해 버린다.


하지만 라다크에서 고산병에 걸렸던 시기는 겨울, 그리고 바라나시, 부다가야를 거쳐 다람살라에 자리를 잡은 이후에 매일같이 해온 500배의 절은 비록 몸은 야위었어도 기초 체력을 튼실하게 다져주고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한겨울이 아니니 다람살라에서의 남은 계획이 없었다면 그녀를 따라 그 미지의 땅, 무스탕으로 떠나고도 남았을 매력 있는 장소로의 동행 제안이었다.


다람살라에 있는 동안 그 아무하고도 말을 섞지 않으며 한없이 냉기만 돌았던 그녀가 인간과 신의 경계의 땅 무스탕으로의 동행을 제안하고 있었다.

"정말 같이 안 갈래?"

" 글쎄, 다람살라에 가야 돼"


그래. 먼 훗날 내가 그녀를 정녕 갈망하며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이라도 한다는 듯이 그녀가 말했다.

"후회할 텐데"


"그러게, 정말 미안한데... 다음 기회에"


서운한 기색이 잠깐 눈가에 스쳤지만 시크한 여인은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같이 밤을 지새운 숙소에서 작별을 하고 싶었지만 굳이 타멜거리로 나와 트리부반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잡는 길목까지 쫓아 나온 그녀가 했다.


"다음은 없어 항상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이야"


택시의 문을 잡고 열려던 동작을 멈추고 뒤돌아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인도 다람살라, 그리고 네팔의 타멜에서 같이 밤을 지새운 사이였지만 끝내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국적도 물어보지 않은 두 집시가 그렇게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애틋한 감정이 일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다시 언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약을 하지 않기에 이것이 정말 마지막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Can I hug you?"

그리고 답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 Let me..."


품에 안긴 그녀가 나를 감싸 안으며 귀에 대고 작별의 인사를 한다.

"Good bye, Take care"

"You too, Take good care"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이별이었다.


자신의 근기에  맞추어 스승도 인연 생. 인연멸 하는 것인 듯 배우는 자가 준비가 안되어 있으니 그렇게 사이비 집시도 무스탕으로 떠나다.





그렇게 카트만두에서 델리로 넘어와

델리, 빠하르간지에서 승차한 다람살라행 버스는 정확히 익일 오전 7시 10분, 다람살라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청전 스님의 처소로 가 스님을 뵈었다.

"스님, 네팔에 다녀왔습니다."


그사이 스님은 내게 "중장"이라는 법명을 지어 주셨다.

" 그래, 중장 잘 다녀왔습니까?"

" 네, 스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 말씀하세요, 중장"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하는 동안 건강을 회복한 것 같습니다. 다람살라를 떠나고 싶지는 않고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100일 기도를 다시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습니다. 그들처럼요"


" 100일 기도를 다시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요?"


" 네 , 스님 오체투지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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