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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룡 Aug 30. 2020

세상은 계속 발전하는 것일까?

영화와 게임을 통해 바라본 인류세

최근 개봉한 영화 <테넷>은 코로나19로 침체된 영화 시장 속에서도 큰 인기를 불러오고 있다. 영화 <테넷>에는 사물의 엔트로피를 반전시키는 '인버전'이라는 미래 기술이 등장한다. '엔트로피'는 물질의 무질서도를 의미하는데, '엔트로피'가 반대로 진행된다는 것은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인버전'을 통과한 물체는 하얗게 익어버린 계란이 다시 투명해지는 것처럼 시간이 반대로 움직인다.


맑은 물에 파란 잉크를 떨어뜨리면 잉크가 무질서하게 퍼지듯, 기본적으로 모든 물질의 엔트로피는 계속해서 증가한다. 따라서 엔트로피가 반대로 진행되어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것은 영화이기에 가능한, 적어도 현대 과학 속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 설정이다.


영화 <테넷> 스틸컷


하지만 영화 속 이 설정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문제이다. 사회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엔트로피>에서 이 '엔트로피'의 개념을 빌려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대해 비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세상은 과학·기술과 함께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처럼 점점 무질서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해가 지면 당연히 일을 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전기가 발명되면서 밤에도 일을 하게 되었고,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동시에 사람들은 더 복잡하고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과거보다 지금은 더 많은 질병과 실업자들이 생겨나고 있고, 환경은 점점 더 오염되고 에너지는 고갈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제러미 리프킨은 무분별한 발전만을 따르지 말고, 과학과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 가능한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 <테넷>에서 엔트로피를 뒤집는 '인버전'을 만든 이들의 목적 또한(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서술할 수는 없지만) 제러미 리프킨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영화나 소설에서 과학의 발달로 인해 문명이 멸망해버린 세계를 다루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흔히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영화(소설 원작) <헝거게임> 시리즈를 예로 들 수 있는데, <헝거게임>은 전쟁과 각종 재난으로 폐허가 된 북미 대륙을 배경으로 한다. 미래가 배경인데도 일반인들은 문명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수천 년 전 원시인과 같이 살아가고, 수도에 사는 일부 고위층만이 과학과 문명을 누린다. 세상이 계속 발전하는데도 지나치게 발전한 과학과 기술 때문에 세상이 오히려 과거로 회귀해버린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매트릭스>나 <설국열차> 속 세상도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영화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 스틸컷


그렇다면 세상은 계속 발전하는 것일까? 제러미 리프킨의 주장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인류는 환경오염과 세대 간의 갈등, 빈부격차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도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하고 있고 미세먼지와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는 등,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우리들의 세상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속 세상처럼 황폐화될 수도 있다. 어쩌면 공룡이 멸종한 것처럼 인류세(anthropocene)는 막을 내리고, 인류가 만든 문명이 없던 오래전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세상은 과학과 함께 발전하는 것 같지만 긴 역사 속에서는 순환할 뿐이고, 과거와 미래는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얽히며(entanglement) 존재하는 것이 된다.




과학도, 사람들의 의식도 모두 발전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인류세의 종말까지 걱정하게 되었을까? 그 원인은 우리가 초심을 잃어가고 있는 데에 있다.


2019년에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15년 전 초창기 버전을 리메이크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이 출시되었다. 출시 직후 우리나라에서도 게임에 접속하려면 많게는 4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많은 온라인 게임도 과거와 같은 클래식 게임을 출시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온라인 게임은 우리 사회의 작은 축소판과 같다. 게임도 지속적인 오류 수정과 콘텐츠 업데이트로 점점 발전하는데, 유저들은 지금의 발전한 버전보다도 과거 버전을 더 선호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이유는 게임이 계속된 업데이트를 통해 초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게임 특성상 기존 유저의 유출을 막고 신규 유저를 유입시키고자 자극적인 업데이트를 하게 된다. 당장은 새로운 콘텐츠로 더 재미있을지 몰라도 몇 차례 이런 업데이트가 반복되면 게임이 변질되어 전혀 다른 게임이 되어버리고 만다.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서든어택>의 경우 군사적 충돌을 다루는 무거운 세계관의 FPS 게임에서 연예인이나 코믹스러운 캐릭터를 대거 등장시켜 우스꽝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자 많은 유저들이 떠나갔다. 많은 MMORPG에서는 신규 유저나 복귀 유저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게임머니를 지급하여 인플레이션이 심해졌고, 게임머니를 착실하게 한 푼씩 모은 많은 유저들이 허무함을 느끼고 떠나가기도 했다. 실패한 복지국가의 모습을 게임 속에서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바람의나라: 연> 플레이 장면


대표적인 MMORPG인 <바람의나라>는 최근에 모바일 버전 게임인 <바람의나라: 연>이 출시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인기를 끈 비결에는 물론 모바일 게임의 편리성도 있겠지만, 이미 PC버전 게임은 초창기와는 전혀 다른 게임이 되어버려서 새로 출시한 모바일 게임이 기존 게임을 감성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더욱 크다. 사람들은 초심을 잃은 현재의 버전보다 이전 버전이 더 재미있었다고 느꼈기에 <바람의나라: 연>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 모두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이 발전하면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들도 우리가 편리함에 취해 초심을 잃었기에 발생한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무분별하게 녹지를 깎아내고 있고, 소나 가축들을 작은 우리에 가두어 기르고 있으며, 매일매일 플라스틱에 담긴 커피와 배달음식을 먹는다.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우리는 옆집 이웃보다 SNS 속 인플루언서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몇 년 전 방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1988년 서울 쌍문동 골목을 배경으로 가족과 이웃 간의 따뜻한 이야기를 그렸다. 드라마 속 배경은 지금과 같은 스마트폰도 없고 집에도 연탄불을 피우는 등 분명 지금보다 불편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골목 이웃들이 한 가족처럼  너나없이 나누고 사는, 지금은 볼 수 없는 따뜻한 모습들이 그려졌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느낄 수 없는 그 따뜻한 정을 그리워하며 드라마를 보았다.


<응답하라 1988> 속 장면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세상은 편리해지는 것 같지만 동시에 환경 문제를 낳고 있고, 사람들의 의식이 성장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빈부격차나 세대 간의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들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가속화되고 있다.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이 유행한 것처럼, 우리가 <응답하라 1988> 속 세상을 동경하는 것처럼, 영화 <테넷> 속에서 '인버전'을 이용하여 과거로 가는 것처럼, 미래에 우리는 발전한 기술을 버리고라도 스스로 과거로 돌아가려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의 의지가 아닌, <헝거게임>이나 <설국열차>처럼 불가항력에 의해 문명이 파괴되고 암울한 세상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 원인은 지구온난화와 같은 환경 문제가 될 수도, 재난이나 질병이 될 수도, 국가나 세대 간 갈등에 의한 전쟁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기 이전에 우리는 스스로 고민해보아야 한다. 우리가 만든 과학과 기술들을 수천 년 후의 후손들도 쓸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수천 년 후에 세대 간 갈등과 불평등 속의 얽힘(entanglement) 속에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단기적인 편리함에 취해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인류세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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