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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룡 May 31. 2021

'덜인싸'들의 세상

코로나19가 불러온 '인싸'의 하향평준화


몇 년 전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한 회사의 면접관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지원자님은 취미가 무엇인가요?"


별 것 아닌 질문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네, 저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영화요? 그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취미 아닌가요? 그런 거 말고 남들과 같이 하는 취미는 없나요?"


당연히 여가시간을 모두 영화를 보며 보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상과는 다른 면접관의 반응에 당황했다. 이미 페이스에 말려버린 나는 이후의 질문에도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고, 당연히 그 회사의 면접에서 탈락하였다.



영화 감상은 지극히 평범한 취미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면접관은 그 질문을 통해 나의 사회성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회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사회성이 좋은 지원자를 원할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은 '친구들과 축구하기', '친구들과 야구하기', '친구들과 카페 가기' 정도가 아니었을까. 이 실패를 반추하여 이후의 면접에서 똑같은 질문이 날아오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네, 저는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 탐방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회사에서 취미를 물어보았고 이 대답의 반응은 좋았다. 한 회사에서는 '이 근처에 아는 맛집이 있느냐?'라고 물어보기도 하였다. 그래서 다음 면접 때는 지원하는 회사 근처의 맛집을 미리 조사해보고 가서 대답하였고, 그렇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합격하였다.




최근에는 '아싸(아웃사이더)'에 대비되는 '인싸(인사이더)'라는 말도 생겨났다. '인싸'라는 것은 두루두루 사교성이 좋고 인간관계가 넓다는 의미이며,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그들을 동경하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그런데 누군가가 '인싸'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성격적인 면보다는 일차적으로 '그가 여가시간에 무엇을 하는지'가 기준이 되곤 한다. 지원자의 취미를 물어보는 면접관의 질문과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사교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자주 여행을 가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술자리에 참석하는 등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 많은 여가시간을 쓰는 사람이 '인싸'로 불린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크게 달라졌다. 해외여행은 불가능이나 마찬가지가 되었고, 국내 여행에도 많은 제약이 생겼다. 반년째 지속되는 '5인이상 집합금지'로 인해 여러 명이 모여 함께 술을 마시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자연스럽게 회사에서도 회식이 없어지거나 줄어들고 각종 모임들도 사라졌다.


이제 '인싸'에게나 그렇지 않은 '덜인싸'에게나, 여가시간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마찬가지로 제한되었다. 해외여행을 좋아하던 그렇지 않던 다 같이 못 가게 되었고, 회식보다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으며, 운동을 하거나 집에서 혼자 TV를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인싸'의 하향평준화가 발생한 것이다. 과거에는 '인싸'들의 생활이 동경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덜인싸'들의 생활이 표준이 되었고, '인싸'처럼 생활하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인싸'들에게는 여행도 모임도 금지된 일상이 과거와는 너무도 다를 것이다. 반면 '덜인싸'들에게는 바뀐 일상이 큰 영향이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회식 등 반강제로 참석하는 모임이 있었다면 그런 모임이 사라져서 더욱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해외여행에 다 같이 못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평소 해외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아내가 말했다. 물론 가보지 못한 새로운 나라에 가보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위해 많은 돈과 시간, 그리고 몇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는 수고까지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해외여행을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면 되는 것이지, 다 같이 못 가는 게 좋을 이유가 있을까? 교사인 아내는 방학 때마다 직장 동료들과 학생들이 모두들 해외로 여행을 떠나기 때문에 혼자만 해외여행에 가지 않으면 비교가 되곤 했다. 해외여행을 가지 않음으로 인해 다른 '인싸'들과 비교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나도 아내에게 함께 해외여행을 가자고 졸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몇 년 전 직장을 갖게 된 이후로는 여유가 되면 최소 일 년에 한 번씩은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막상 해외여행에 가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큰돈이 들기도 하고 여러 힘든 점들도 많았다.


내가 해외여행을 계속해서 가고자 한 것은, 여행 자체를 즐기고 싶다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인싸'들과 비교되기 싫은 것이 아니었을까. 직장인이 되기 전에는 경제적 여유가 없거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해외여행을 별로 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경험 없는 사람'이나 '아싸'로 인식되기 싫었던 것이다.


실제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자 지금은 휴가철이 되면 여행을 가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굳이 여행을 가려고 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한 것도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회식과 모임이 줄어들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에 있어서 답답할 때도 가끔씩은 있는 반면, 마찬가지로 다른 한편으로는 집에서 편하게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도 너무 소중하다. 역시 나에게 '인싸'들의 생활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주변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해 각종 모임들이 없어지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지금의 일상이 더 좋다고 말하는 '덜인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변화된 일상 속에서 생각해보면, 그동안 우리는 서로 다른 각자의 생활 방식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혹은 남들과 비교하면서 우리의 행복을 스스로 차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회식을 통해서 친목을 다져야지"라는 직장 상사의 생각은 누군가에게는 원치 않는 모임을 강요했을지도 모른다. '인싸'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며 자신과 비교하던 '덜인싸'들은 그들과 닮아가기 위해 반강제로 여행이나 모임에 가면서 스스로의 행복을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코로나19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고 경제적 피해도 크기에, 하루빨리 이 사태가 종식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코로나19가 종식된다면, 그때 우리의 일상은 다시 '인싸'들의 세상이 아닌, 각기 다른 서로가 각자의 방법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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