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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 Apr 23. 2021

온몸이 흔들려도,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은 사수할 거야!

 비행기를 타기 어려운 시기다. 드물지만 날아가는 비행기들을 보면서 가끔 기내식의 추억에 잠긴다.  

 큰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나갈 일이 있었다. 5시간이 좀 넘게 걸리는 꽤 긴 여행이었다.


 적당한 고도에 올라 기내식을 받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카트가 들어오기도 전에 비행기가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가는 것 마냥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하늘은 파랗게 맑은데 비행기가 이리저리 요동을 치고, 기내식 서비스도 중지되었다. 벨트 안전등에 불이 켜지고 승무원분들도 한 줄에 10명씩 몇백 명이나 되는 배고픈 승객들이 일어나 다치지 않도록 응대하는데 바빴다. 공중에서는 구름이 없다면 나 자신의 높이를 알 수 없으니 나로서는 '이것이 바로 전공책에서 배웠 청천난류(CAT, Cleae Air Turbulence) 구나, 하고 신기해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어린아이들은 얌전히 있다가 울음을 터트렸지만 다행히 비행기는 곧 안정되는 듯했다. 기내식도 마찬가지였다. 치킨과 비프 중에 당연한 듯 비프를 고르고 짠 것 같기도 하고 텁텁한 것 같기도 하지만 즐거운 경험이 되는 기내식을 열심히 정돈한 후 식사를 시작했다.

 

 그 항로에서 항상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의 기내식에는 유명 아이스크림 브랜드의 작은 컵 아이스크림이 함께 서빙되었다. 블루베리와 치즈가 섞인 맛의 아이스크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 중 하나여서 기내식으로 얼른 배를 채우고 아이스크림을 떠먹고 싶었더랫다. 계절은 여름이었다. 비행기의 내부는 딱 적당항 정도로 서늘했다. 거기에 도착할 곳은 더위가 숨 막히도록 이어지는 나라. 아이스크림이 더욱 소중하기도 했다. 꽁꽁 얼어있는 아이스크림은 소중했다. 디저트 서빙이 시작된 것이 식사 바로 후였기에 혹시 녹지 않을까 하고 물어보니 아주 꽁꽁 얼어있던 것이라 적당히 녹는 데까지 10분 정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너무 딱딱하면 먹기가 힘드니 미리 준비해놓는 배려에 한번 더 행복해했다.


 햇볕은 쨍하게 비행기를 내리쬐고 있었다. 디스 이즈 캡틴 스피킹. 늘 듣는 항로에 관한 안내와 함께 기류 변화가 심하다는 방송이 한번 더 나왔다. 순간 덜컹, 하고 비행기가 커다랗게 흔들렸다. 창가에 앉은 나는 바깥에서 파란 하늘 위에서 쉴 새 없이 끝이 흔들리는 비행기 날개가 보였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차량보다도 훨씬 심한 흔들림이었다. 작은 상자 안에 들어간 택배물품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서빙은 중단되었다. 내가 먹던 음식과 물컵도 아슬아슬하게 선반 위를 춤추었다. 바깥은 파랬다. 야속할 정도로 파랬다. 이대로 비행기가 뒤집어지지는 않을까? 땅까지 곤두박질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높은 확률로 나는 살아남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10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 순간, 쟁반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 아이스크림이 기울기울하더니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안돼!"


 고백하자면 나는 그리 반사신경이 좋은 편이 아니다. 몸치라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적어도 휴대폰과 먹을거리에 있어서는 의외의 실력을 발휘하고는 한다. 그날이 그랬다.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비행기는 계속 흔들리고 있었고 나는 아이스크림을 한 손에 잡았다. 식사 쟁반이 쏟아질 듯 말 듯 흔들리기도 했다. 승객들 대부분이 식사를 멈추고 자리를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기내식 쟁반을 꼭 잡고 있었다.


 흔들림은 비행을 하는 내내 계속되었다. 안심할만하면 비행기가 흔들리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내 비행 경험 중 아마 가장 많이 흔들렸던 경험이었을 것이다. 기장의 목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던 것도 그 비행이다. 비행기에서 무사히 내리고 나서는 찌뿌둥한 몸을 스트레칭하며 안심할 수 있었다. 더불어, 아이스크림 하나 잡겠다고 일생일대의 순발력을 발휘한 내 자신이 좀 민망했다. 그렇게 맛본 아이스크림은 상큼하고 달콤했다. 비행기에서 바짝 긴장했던 덕인지 사고 없이 여름의 한가운데서 더운 도시를 돌아다녔음에도 큰 탈 없이 여행 일정을 마쳤다.


 가끔은 그럴 때가 있다. 결코 좋지 못한 상황에서 먹은 맛있는 것들이 나쁜 기억을 좋게 만들어주는 때 말이다. 아마 그날 먹었던 아이스크림이 내 생에 가장 극적인 아이스크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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