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친척 모임에 가서 충격적인 장면을 본 일이 있다. 바로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만드는 광경이었다. 당시만 해도 재래시장에 위치한 건강원들에는 미꾸라지를 잔뜩 팔고 있었다. 여름만 되면 그랬다. 제철 보양식이라는 이야기였기도 했다. 빨간 대야에 뭉쳐진 채로 한가득 꿈틀대고 있는 미꾸라지들은 신기하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했다. 그 옆의 가물치보다는 나았고, 그 옆 수조의 잉어보다는 훨씬 징그러웠다. 개구리나 소라보다야, 물고기다 싶었다. 하지만 시장에 가면 늘 미꾸라지의 움직임에 눈이 홀렸다.
그랬던 마음인데, 미꾸라지의 눈코입을 찾던 내가 본 것은 맷돌에 산채로 들어가는 미꾸라지들이었다. 맷돌은 커다랬고 살아있는 생선들이 꿈틀대며 들어가서 짓이겨진 채 흙탕물과 같은 무언가가 되어 나왔다. 어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맷돌질을 계속했고 물놀이를 갔다가 온 나는 서른이 넘어서도 그 광경을 선명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전까지는 별생각 없이 먹던 추어탕을 그 후로 먹지 않게 된 것도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수많은 미꾸라지들 때문이었다.
경남 내륙에서는 추어탕을 갈린 상태로 만든다. 어죽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인지 추어탕을 시키면 대부분 갈아서 나오는 편이다. 예전에는 미꾸라지 100%를 써서 만들었다면 요새는 전분이나 들깨가루를 꽤 섞는 모양이다. 되직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생각을 해 보면 당시의 추어탕은 굉장한 보양식이었을 것이다. 미꾸라지와 야채가 잔뜩 들어가 깊고 구수한 맛이 나는 그런 추어탕이었겠지. 응용하기도 편하다. 참치캔으로 만들면 참치 추어탕(맛은 추어탕과 비슷한데 재료는 참치이다), 고등어로 만들어진 어탕도 추어탕과 비슷한 맛을 낸다. 산초가루가 약간 들어가면 더 비슷해진다. 초등, 중등, 고등학교 시절에는 급식을 자주 먹어서인지 미꾸라지가 들어간 추어탕스러운 음식이 나오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쉽게 접근하기 힘든 메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 미꾸라지 대신 참치나 닭고기, 고등어 등이 들어간 국물이 나오고는 했더랬다.
미꾸라지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접할 수 있는 생선이고, 남원 추어탕이 가장 유명한 기는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추어탕을 만들기도 한다. 여태까지 내게 추어탕을 사 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가끔 추어탕을 먹을 수 있게 된 나 자신이 신기할 때도 있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입사하던 해의 여름이었다. 그 해는 내게센세이셔널한 한 해였다. 평생 입에도 대지 않았던 석화찜을 먹어본 것도, 전어를 잔뜩 구웠던 것도, 낙지와 주꾸미도 질릴 만큼 먹어봤다. 나의 인생 닭볶음탕 집도 만났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 바뀌었다고 느낀 건 추어탕에 대한 트라우마를 드디어 극복했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먹는 음식인데, 메기매운탕과 잉어요리, 이름 모를 외국 생선요리도 먹어봤는데 이 정도야 어떠랴 싶었다. 눈앞을 아른아른 스쳐 지나가는 미꾸라지들을 뒤로하고 앞자리에 놓인 뚝배기에 들깻가루도 산초가루도 조금씩 넣었다. 매운맛이 가미되면 어렵지 않겠다 싶어서 다진 청양고추도 넣어준다. 숟가락을 들었다.
숟가락을 입에 넣자마자 싸한 산초의 향이 느껴졌다. 내게는 익숙한 향이었다. 들깻가루 왜 맛이 찐하게 고소했고, 원래부터 미꾸라지에 맛을 몰랐기 때문인지, 걸쭉한 매운탕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함께 나온 추어 튀김은 생선을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으로 먹는 약간의 불편함만 빼면 고소하고 담백한 것이 자꾸 입으로 들어갔다. 결국 나는 추어탕을 맛 때문이 아니라 기억 때문에 싫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추어탕은 즐겨 먹지는 않아도 피해야 하는 음식은 아니게 되었다. 여름철 보양식 중 하나이기도 해서 종종 회사 사람들과 추어탕 집을 찾기도 한다.
초복이 머지않았다. 아니 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다. 초복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가장 좋아하긴 하지만, 더운 날에는 가끔 추어탕을 찾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