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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정 Jun 03. 2021

비 오는 날을 좋아하세요?

나이 들수록 변하는 취향들

지금껏 누군가 좋아하는 날씨를 물으면 영국 날씨라고 말했다. 영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그곳에 살다온 친구의 묘사와 매체를 통해 본 날씨는 우울 그 자체였다. 어둡고 먹구름이 낀, 해는 잘 나지 않는 비 오기 직전의 날씨. 나는 그런 날씨를 사랑했다. 주변 사람들은 해가 쨍쨍한 날씨를 주로 좋은 날씨라 칭했고 나는 어둡고 칙칙한 날씨를 좋은 날씨라 했다. 비 오는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해가 쨍쨍 드는 것보다야 비가 오는 게 좋았다. 비가 오면 나가서 산책을 하기도 했고 카페에서 창밖을 바라보기도 했다. 때로는 어두운 집 안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영화를 보는 것을 즐겼다.


그런데 28살이 된 올해, 날이 어두우면 나도 어두워진다는 걸 참 늦게도 깨달았다. 그래서 해가 쨍쨍 뜨면 커튼을 걷고 햇볕을 만끽했다. 그것도 모자라 한강에 나가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했다. 평생 어두운 날씨만 좋아할 것 같았던 내가 화창한 날씨를 기다리는 사람이 돼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변한 건 날씨 취향만이 아니었다. 나는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데, 민물 매운탕이 밤마다 생각난다. 그 얼큰한 국물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맥주밖에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소맥과 와인을 더불어 위스키까지 즐겨마신다. 그리고 꽃을 사는 것은 그야말로 돈 낭비라고 생각했었고 단 한 번도 구매해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꽃 선물을 받으면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왜 이런 걸 돈 주고 사지?'


한데 이제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꽃을 보러 일부러 식물원을 찾아가기도 하고 길을 걷다 예쁜 꽃이 보이면 사진을 찍는다. 남자 친구한테 꽃을 받는 날이면 온종일 행복할뿐더러 친구에게 줄 적당한 선물을 찾다가 꽃집에 들른다. 사람이 변한다는 말은 절대 믿지 않았는데 변한다는 것을 스스로를 통해 느꼈다. 이제 더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늘 가던 곳만 가고 하던 것만 하고 먹던 것만 먹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새로운 곳도 가 보고 해보지 않은 것을 도전하며 먹어보지 않은 음식은 미리 판단하고 손사래 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28살의 나는 오늘도 조금씩 변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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