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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물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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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Z Nov 14. 2023

감사, 지금 이 순간 내가 당신에게 느껴야 할 것

명상 삼아 매일 가는 절에서 마당을 쓸고 있는 분을 본다. 찬 바람을 맞아가며 바닥을 채우고 있는 낙엽을 쓸고 또 쓰는 그분을 보며 생각한다. 왜 그는 비를 든 자가 되어야 하고 누군가는 그가 비를 들게 하는 자가 되어 있으며 또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있는 자로 배치되어 있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마당을 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왜 나는 그에게서 노고를 읽어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젖어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게 되는 것일까. 

모든 노동에는 노고가 깃들어 있다. 몸을 써서 하는 일이나 머리를 쓰는 일이나 힘을 들이기는 마찬가지인데 어떤 때 어떤 일을 볼 때의 나는 노고의 크기를 가늠하고는 한다. 그리고는 그 일에서 신성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애처로움이나 괴로움을 먼저 발견해 버린다. 그런 나의 시선을 느낄 때면 평등이니 약자니 하는 말들을 하며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말을 떠들어대던 어쩐지 자기기만적인 인간이 된 것 같아서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젓게 된다. 

일은 그 자체로 일이고 그 자체로 숭고로울 수 있는 것을 왜 일에서 가치를 매기고 그것을 순서 매기려 하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나도 어떤 일을 쳐낼 때는 뼈가 가루가 된 것 같은 힘듦을 느끼고는 한다. 그런 순간에 마주할 때면 딴에는 상당히 열심히 달려왔는데 왜 여전히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에 허탈함이 인다. 왜 나의 일이 내가 생각하는 만큼 인정받지 못할까 하는 억울한 마음도 든다.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열심히 달리고 있고 모두가 자기 일에 있어서 만큼은 필사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또 반성하게 된다.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머리와 손가락을 움직이는 그 일이 무예 그리 힘들다고 투덜대고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이 이율배반적인 시선 속에서 자부심과 자괴감 사이를 부단히도 오간다. 누군가보다 더 특별해지고 싶고 두드러지고 싶은 것이 인간본능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혼란을 느낄 때면 ‘누구누구 보다’라는 비교의 잣대 자체를 어리석게 느끼게 된다. 일은 일이고 삶은 삶이며 살아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일 텐데 어찌하여 더 값진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나도 모르게 가르고 있는 것인지. 

이른 아침 찬 바람 앞에서 빗자루를 들고 몸을 움직이고 있는 굽은 등을 보며 생각한다. 움직여야 한다고. 움직이며 생각하고 생각하며 움직이고 그리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더 값진 일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허상일 뿐 가만 살펴보면 인생은 사고라는 배를 타고 행동이라는 노를 저어 어떤 지점을 향해 끝없이 움직이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땀 흘리며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 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세상은 저마다의 방향을 설정해 노를 저어가며 목표지점을 나아가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고. 그들의 움직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무게에 있어 경중은 없다고. 그러니까 나아가고는 있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몰라 허둥지둥하고 있는 내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 느껴야 할 것은 감사라고.

R Magritte_Maitre d'ec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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