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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꺼풀 오이씨 Oct 20. 2021

그저 오늘 하루

오늘 하루도 버텼다.

 오늘도 그냥 내 이야기를 끄적여 본다.

 

 오늘 친한 동생을 만났다. 아무 목적도 없이 단지 보고 싶어서. 사람을 아무런 목적 없이 만나는 건 얼마나 무효율적인가....... 하지만 나 인생 연장을 위해 주치의가 적극적으로 권한 일이다.


 너무 힘들어 찾아간 병원. 의사는 말없이 내 두서없이 우왕좌왕하는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주절대다가 말문이 막혀 가만히 있던 나에게 의사는 

'평소에 자주 만나는 사람 있어요?' 

' 아니요. 없어요.'

' 원래 사람 잘 안 만나세요? '

' 뭐 어쩌다 보니요. '

' 00님. 그러다 죽어요.'

그러다 죽는다. 그러다 죽는다.


 몇 번 나의 글에서 이야기했지만, 나의 부모는 나를 양육한 일이 없다. 전혀는 아니지만, 없다고 봐도 될 거다. 본인들은 나에게 자유롭게 크라고 그랬다고, 어딜 가서 든 쿨한 척 이야기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랐다고 하는 게 더 맞다. 아니 어떻게 할 줄 몰라서 그냥 내버려 뒀다고, 안 돌봤다고 하고 다녔으면 덜 볼썽사나울 텐데 말이다.

 부모에게서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랑이 채워지지 않으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치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인가 그 사람은 내 주변에서 사라졌다. 귀찮았겠지. 당연히.

그게 반복되니 나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어렵고 어색했고,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었고, 어쩌다 사람을 만나면 아주 잘 지내는 것처럼 연기를 했고, 그 연기는 능숙해져만 갔고, 사람들은 내가 아주 에너지 넘치게 멋지게 잘 지낸다고 생각했고, 나는 고작 해봐야 방바닥을 딍구는게 전부였고.

 아...... 생각만 해도 짜증 나고 억울하고 눈물 나고 죽고 싶고......


 오늘 낮에 만난 동생에게 말했다.

 '나 중증 우울증이야. 내 주치의가 사람 안 만나면 죽는다고 해서 억지로 너 만나러 왔어. 귀찮아하지 말아 줘.'

 갑자기 그 동생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만난 시간 내내 그 친구의 눈에서 눈물이 사라지지 않았다.

' 형 미안해요. 난 형이 너무 잘 지내는 줄 알고 매번 통화하면 내 고민만 말하고. 난 형한테 기대기만 했네요. 미안해요. 형'

 이 말을 듣는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난 누구에게 기대는 법을 몰라. 들어주고 이야기해주고. 그거밖에 몰라.'

 우울증이라고는 잘도 말하면서 이런 이야기는 못 한다. 그냥 못하겠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는 중간중간 그 동생에 나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그 이야기들은 노래방에서 들리는 아주 에코가 많이 들어간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냥 공중에 흩어지는 이야기로.......


 난 무슨 희망으로 살아가는 걸까? 아니 희망까지도 아니고 난 왜 살아가는 걸까? 우리 아기들이 내 품에서 후루룩 새처럼 날아 떠나가 버리면 난 살아가고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집착하는 건 아니다. 집착하지 말자고 하루에도 수십 번 되뇐다. 저 아이들의 인생은 저 아이들의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니 내가 절대 짐이 되면 안 된다고, 족쇄가 되면 안 된다고 계속 뇌까린다.

 우리 아이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아주 멋진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 아주 멋진은 아니더라도, 나처럼 추저분하고 질척거리지 않고, 사리 분간 못하지 않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적어도 나처럼은 말고.....


 오늘 또 하루를 넘겼다. 내일도 넘길 수 있겠지. 넘기더라도 아이들과 많이 웃으면서 즐겁게 넘겼으면 좋겠다. 그냥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다.

그리고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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