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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꺼풀 오이씨 Dec 26. 2023

부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3.12.24

낮에 아주 오랜만에

예전 직장 부사수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누군가의 부고를 알리는 링크


'누구지?'

대수롭지 않게 링크를 휙휙~ 웹툰 보는것 마냥 보았다.

'아......N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나보다'


N은 나의 첫 사회생활 사수였다.

너무 오랜 만에 들어보는 이름. 

부고니까 나한테도 보냈다보다 해서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그래도 보냈으니 답이나 하고 치우자는 마음에

'N 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 마음이 아프다.'


답장을 보내자마자 부사수로 부터 전화가 왔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어 받지 않았다. 

그 후로도 2번 더 전화가 왔지만 여차저차 받지 않았다.


부사수로 부터 온 문자

'오빠.

N 오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게 아니라

N 오빠가 돌아가셨어요.'


......응?????????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그는 내 사회생활 첫 사수였다.

내 사회생활을 알려주고 끌어주고 질책해주고 다독여주었었다.


그는 나보다 학력도 밑이고

나이도 어리고

지식도 얕았지만


나는 어리숙했고

그는 노련했다.


나는 주눅들어있었고

그는 당당했다.


나는 꾀재재했지만

그는 빛이 났다.


그의 모든 것이 멋있었고

그의 모든 것이 부러웠고

그의 모든 것이 샘났었다.


그가 피우는 담배도 멋져보였고

심지어 그가 낀 목장갑도 달라보였다.


햇병아리인 나에게 그는 동경 그 자체였다.


그가 갔다.

그는 없다.

믿겨지지 않았다.


부사수에게 물어보니

이 추운 겨울에 산에 혼자 비박 갔다가 변을 당했다고 했다.


부사수도 아는 건 거기까지.

십 수년 만에 그에게 인사하러 가고 싶었다.

어색하지만......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날이 훌쩍 지나버렸다.


23.12.26

N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중 신문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40대 남성 산행 중 변사체로 발견'

기사를 찬찬히 읽어보니 N에 관한 기사였다.

마음이 조여왔다. 더는 조일 수 없을 것 같은 두터운 고무줄로 조이는 기분. 

고무줄이라 계속 조여지는......


기사를 다 읽고 나도 모르게 댓글을 보게 되었다.

댓글 대부분은 N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식구라면 하나 하나 다 찾아가서 아가리에 고드름을 입이 찢어져라 쳐 넣고 싶은 글들.

괴로웠다.


그러다 문득.......

나는 타인의 죽음에 쉽게 혀를 놀리지 않았었나?

그런 적이 있었던것 같다.

 아니 그랬다.

후..........


이젠 누군가의 인생에 함부로 말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더 굳어졌다.


누군가의 지금은 

그의 과거가 켜켜이 쌓여 된

쉽게 재단 할 수 없는 지금인데.

내가 경망스러웠구나.

조심해야겠구나.


N을 떠나보내며.

N의 남은 식구들이 짊어질 슬픔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 이 밤. 

멈추지 않는 눈물로 이 밤을 보내고 있을 모든 이들. 

그리고 그럴 운명에 처할 모든 이들에게 

신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누군가의 지금은

어쩔수 없는 과거의 축적.

누구도 함부로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잘가. N

나의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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