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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job 조은 Mar 07. 2024

나는 일할 때 무슨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더라?

인정 욕구로 몸도 마음도 아파보니 떠오른 의문



신입사원 때 무언가 모르겠고, 마치지 못하겠는 게 있으면 차라리 밤을 새서라도 내가 해낼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회사 입장에서 그런 건 투입률이나 생산성 이런 말로 연결되기도 한다.

타당하다. 투입 시간 대비 업무 성과로 계산하면 되는 문제이니 간단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 갇힌지 모르겠는데 어디 갇힌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부족한 상태에서 ‘타당’이나 ‘적당’ 만 따지면 언제 어떻게 뚫고 나가지?

그냥 저에게 한 번 맡겨 달라기엔 자신감 부족, 조금만 더 고민해보겠다 하기에는 능력 부족. 뭐 하나 속 시원한 게 없었다.


가끔은 회사애서 정해진 일을 끝내기도 버거운데 [반드시 퇴근 시간 전까지 끝낼 것] 이라는 기준까지 들이밀면, 왜 그거 있잖아. 모델들의 기준 몸무게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건강할 것, 굶으면서 뺀 사람은 기준 미달] 이라는 시대가 요구하는 기준까지 추가되어 3끼 다 챙겨 먹고도 빼빼 마른 몸까지 유지해야 하는 그런 게 내게도 주어진 것 같았다.


특히 내가 신입사원 때는 ‘알잘딱깔센’ 이라는 말을 회사에서 그렇게 쓰더라.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좋은 단어로만 이루어진 나쁜 말이다.








조급하다 조급해


야근을 절대 허락하지 않으면서 결과물에 대한 기대치와 정도가 높은 곳에 있으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나는 그냥 뱁새인데 황새 따라가려면 조급함이 생겼다.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따라가려는 모습이 멋지지도 않았고, 그래도 뱁새는 뱁새였다.


내가 저 사람처럼 되려면 저 사람 만큼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조급함이 생겼다. 그런데 시간이 꼭 5년이니 7년이니 하는 물리적으로 가는 시간만 있는 게 아니라 8시간 일할 거 12시간 일한다면?

조급함은 나를 연차가 허락해주지 않는 건 시간의 밀도로 채워보겠다는 결론으로 데려갔다.


첫 팀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7년차 부터 시작하는 책임-수석 급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특히 이 사람들은 신입사원 때부터 그리고 다른 팀에서도 혼자서도 다 잘하는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듣고는 ‘나 뱁새 신입사원인데… 나 좀 잘 봐주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 더 괴로웠다. 차라리 빼도 박도 못하게 나쁜 사람들이면 좋을텐데 싶었다. 이번 채용 때 회사에 처음 만들어졌다는 브랜드 마케터라는 직무도, 이렇게 혼자서도 일 잘하는 사람들이 후배라는 걸 받게 되었다는 이 상황도, 다 그냥 내게는 다 힘들게만 느껴졌다. 힘들면서도 그 힘듬을 의심하고 힘을 빼보려고도 해보고 다시 파이팅 힘 주고 아무렇지 않게 지내보고 아무리 그래도 내 힘을 내가 쓰는 게 어려웠다. 이 사람들이 일을 잘하지나 않으면, 내가 이 일을 잘해보고 싶지나 않으면 이런 인정욕구 같은 건 아예 생기지도 않았을텐데, 누구에게는 이 정도면 됐지 하고 만족하면서 정시퇴근 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려나 여러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잘못은 아니다.

선배들 입장에서는 신입사원 때 누군가 야근해서라도 하라해서 힘들었던 걸 나한테는 안해주려 한 걸수도 있고, 정작 나도 늘 이런 생각으로 갖고 회사를 다닌 것도 아니다. 대개는 감사하고 만족스러운 지점이 있었다.  그저 문득 문득 현타처럼 온 생각이 깊어지면 느낀 회의였다. 내가 나에게 좋은 것만 주려던 당시 팀과 선배들의 마음과 의지를 몰랐을까.


그래도 결국 드는 생각은 ‘나를 왜 뽑았을까’

차라리 누가 확실한 지시로 찍어눌러주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배부른 고민 따위는 안하게 쪼아줘도 좋겠다 그런 생각이 왜 들었을까.

 내 자리와 내 일의 의미는 내가 만들어야 하는구나 그걸 직감적으로 느껴서 그랬다. 그게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주도적으로 해봐요“



그러다가 맡은 브랜드의 서비스 유료 런칭과 함께 이걸 알리는 프로모션을 맡아보라는 업무가 주어졌다.

주도적으로 맡아보라는 말도 함께.


미생에서 나온 ”신입사원이 120% 하는 것 만큼 무서운 게 없다“는 말이 나를 콕콕 찔렀지만 한편으로 할 수 있을까, 하지 못할까 하며 망설이던 것들이 해보라며 옆구리 찌를 때 못 이기는 척 이겨보고 싶었다.




100% 못하겠어?
그럼 오버하지말고 80%만 해.
신입이 120% 하려는 것 만큼 팀을 위험하게 만드는 거 없어.



당연히 무엇부터 해야할지도, 어떤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지도 그려지지 않았다. 물어보니 다들 정답은 없으니까 맡긴 거란다. 이 아이디어, 저 아이디어 PPT에도 정리해가고 노션에도 정리해갔다. 이건 돈이 안되어서 못한다, 이건 이게 유효하다는 근거가 있나, 이건 트렌드는 맞는데 그대로 따라가는 게 우리 브랜드랑 어울리나, 이건 실현가능성이 있나 이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아이디어들을 던졌는데 다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근데 그때 내 생각이 뭐였더라.


‘이럴 줄 알았어’ 였다.

선배들이 해준 피드백 내가 몰랐을까. 갈 수 있는 길인지 몰라서 겉돌기만 하는 걸 나도 가져간거다. 어떻게 이걸 가지고 뚫고 나가야 할지 몰라서 세상에 있는 안전한 형태의 것들만 어울리는 것처럼 택갈이 해서 가져간 게 너무 맞아서, 어떻게 내 거인데도 다시 주워볼 생각도 못했다. 그냥 너무 무력했다.

당장 스스로가 하나의 제품을 만들어 낼 크리에이티브나 능력도 없고, 택갈이를 한다 쳐도 그걸 떼오는 것조차 철 지난 공장 같은 곳들이고, 그렇게 택갈이 한 것들이 티가 나지 않는 느낌으로 박음질할 세련된 스킬도 없었다.


나는 포장지만 잘 만드는 사람인가?

일이라는 건 포장지만으로 사람들을 현혹시켜 돈을 지불하게 하면 되는 게 아닐텐데 나 어떡하지. 일은 그 포장지 안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만드는 거 아닌가? 특히 내가 잘해보고 싶었다는 브랜드 마케팅 직무가 더 그랬던 것 같다.

나는 회사에 ‘진정성’이니 ‘진심’이니 하는 말을 앞세워 들어왔는데 진정성을 ‘진정성’이라는 말 없이 느끼게 하는 건 내가 원래 알던 진정성보다 훨씬 더 많은 깊이와 노력, 능력이 필요한 일이구나.

그게 너무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렇다. 내 사전과제다.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그래도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가 있을텐데’ 하고 입사지원서와 사전과제 다시 봤다.


그 때는 입사지원서와 사전과제를 봐도 모르겠어서 선배에게 왜 이번 채용에서 왜 저를 뽑았냐고 여쭤봤다.

“열정을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준 사람이었어서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브랜드 마케팅 아이디어로 굿즈를 내고 조악하지만 굿즈를 만들어 간 열정, 인스타그램 스토리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스케치북에 직접 스토리 플로우를 그려간 열정 그런 거였나 싶은데 막상 뽑혀서 완성도를 만들어 내는 건 열정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뜨겁기만 해서 너무 아프다


그렇게 나는 그 때 처음 맡은 주도적으로 맡은 프로젝트에서 뭘 해낼 수 있을까 그것만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여전히 열정 밖에 가진 게 없었다. 그럼 뜨거우니까 놓아도 되나, 뜨거워서 계속 아파만 하다가 식는 걸 기다려야 하나. 다시 생각했다. 다시 생각하자, 다시 생각.


하나 알게 됐다.

내가 브랜드 마케팅 이라는 직무를 잘하고 싶은데, 그 마음 만큼 내가 맡은 브랜드를 잘 알고 있나?

오히려 새로 생긴 거고, 대기업 브랜드도 아니라는 이유로 몰라본 건 나 아닌가? 그래서 자꾸 세상에 있는 좋아보이는 아이디어로 덮어보려 했던 거 아닌가. 사실 취직하기 전까지 한 번도 써본 적 없던 서비스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내가 맡은 브랜드에 대해 이제까지 남긴 사람들의 모든 후기를 봤다.

밤을 새서 봤다. 그때 처음으로 회사에서 밤을 샜다. 트워터,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타깃이 갈 것 같은 브런치니 커리어리니 링크드인이니 하는 것까지 싹 다 찾아봤다.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내가 들어오기 전 1년 동안 선배들이 신사업을 한다며 만든 브랜드가 무엇인지, 이 서비스는 어떤 가치가 있고 어떤 사람들이 쓰는건지. 내내 내 옆에 있었던 콘텐츠팀 팀장님과 에디터님들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내가 몰랐던 디자인 요소들은 어떤 임팩트를 주는지, 어떤 사람들이 우리 브랜드를 찾아왔고, 왜 우리 브랜드를 찾아오는지.

‘마케터는 진심일 때 성장한다’라는 사전과제의 한 마디가 나를 콕콕 찔렀다. 진심이나 진정성도 진짜가 있는 걸까? 나는 부족한 걸 포장하느라 진심과 진정성이라는 말을 썼던가? 그렇게 하면 나도 뭐라도 더 될 것 같고, 뭐라도 더 진심이나 진정성을 원하는 사람이 찾아올 것 같아서?

근데 사람들이 원하는 건 처음부터 진심이나 진정성을 주는 게 아니었다. 진심이나 진정성이 되어가는 것, 말 없이도 보여줄 수 있는 어떤 것. 진짜 진심과 진정성은 거기에 있었다.

결국 내가 회의에서 낸 아이디어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희 이야기를 해줬는데요!

단순히 좋다고 한 마디만 했더라도 유료 멤버십 서비스 쿠폰을 주는 프로모션을 하고 싶어요.“

이리 말하니 선배가 ”그 분들은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귀한 자료가 될텐데요. 다른 프로모션을 뭐를 더 해보기보다는 친구에게도 주라며 넉넉하게 챙겨주는 거 어떨까요?” 라고 힘을 실어주셨다.





“컨펌이요!”



와 컨펌이라는 말이 이렇게나 좋은 말이었구나.

그렇게 말하고, 1000개가 넘는 쿠폰을 발행하고 메일로 하나하나 3일의 밤샘을 걸쳐 보내는 스불재를 자행했다.


지금이면 스티비로 한 번에 보내는 솔루션도 알고, 독자 스크리닝이나 메일 본문 작성은 에디터님들이 더 잘 아실테니 도움도 적절히 요청했을테고, 쿠폰 발행 후 몇 명이 실제 등록했는지 추적하는지 보는 업무 프로세스도 엑셀을 잘 만드는 선배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겠지만 그땐 그냥 했다.


프로젝트 준비 노션에 프로모션 방향성을 다시 적었다.



방향성을 바꾸고 다시 관찰했다.

브랜딩은 이래야 돼, 마케팅은 이래야 돼, 나는 이 직무니까 이렇게 좋은 일을 할거야 이런 거 다 내려놓고 컨펌 받은 그 선에서, 내가 이걸 컨펌 받기 전까지 이게 필요하다고 느꼈던 그 선에서 다시 봤다.

이 사람들이 진짜구나, 우리 브랜드는 이게 진짜구나, 선배들이 한 것 중 진짜 잘된 건 이거구나, 내가 거기에 접근하려면 안다고 생각했던 걸 내려놓고 알아갈 게 많구나.




결론적으로 잘됐다.


잘됐다의 업무 기준을 성과 기준으로 스스로 잘 세우지 못해서 완료한 것을 잘되었다고 표현한다. 그럼에도 유튜버 분들께 접근하며 이 분들께 쿠폰을 드리면 라이브로 구독자 이벤트를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구나, 현직자 블로거 분들께 드리니 캐릿의 유료 전환과 CRM 마케팅 잘하네와 같은 분석글로 이어질 수 있구나, 이 사람은 뭐하는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을 수도 있는데 메일을 보내니 현재 UI/UX에 대한 조언과 이제까지 본 사람들 챙겨줘서 고맙다는 응원을 받을 수 있구나.


그냥 나는 이런 걸 하면서 ‘내가’ 무얼 하고, ‘나는’ 이걸 원한다 하며 나를 너무 많이 생각했는데 나를 내려놓으니까 진짜 보이는 게 있구나, 그러면서 진짜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원하는 것을 만날 수 있구나.

​​​

이 프로모션이 끝나고 다시 한 번 회고글에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알게 된 내가 하는 일와 가치와 그걸 하는 나의 SWOT 분석과 실천 방안을 정리했다.



내 마음대로 SWOT 분석


내가 할 수 있는 실천방안


1. 맡고 있는 서비스에 앞으로 들어올 문의와 불편을 빠르게 처리될 수 있게 하고, 관찰하여 문의의 유형을 정리하여 팀에 기여하기
2. 매일 에디터님들이 올려주시는 우리 브랜드의 글 읽기 (실제로 나중에 다른 선배가 다독 독자를 뽑는 이벤트를 기획하셨는데 내 이름이 내내 5위 안에 있어서 뿌듯했다. 하지만 공정성 문제로 상품은 받지 못했다.)
3. 브랜드가 말하는 서비스/콘텐츠가 잘 인지되는지 관찰, 뭐 하나를 만들지는 못해도 누가 뭐 하나를 만들면 반응을 관찰해서 돕기


내가 아직 할 줄 아는 게 포장 뿐이라면 포장이라도 잘해야 겠다, 아니 포장의 가치를 찾아야 겠다고 방향을 바꿨다. 그러니 내가 포장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무시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포장 잘하려면 제품 특성을 잘 알아야 하고, 크기나 무게는 어떤지, 사용상 주의점은 없는지, 같은 물건도 어떻게 표현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어떤 포장은 제품을 전혀 못 나타내고 어떤 포장은 포장만으로 제품을 잘 표현한다. 때로는 보호하기도 하고, 때로는 못볼 것을 드러낸다. 사람들이 이거 참 좋아할 텐데 모를 만한 건 언어나 상징으로 표현한다. 포장은 의미 없거나 쓸모 없는 게 아니었다.


지금 이건 내가 만들지 못했지만 그러면 나는 일단 잘 보고 표현해서 이게 매대에 놓였을 때 잘 보이게 하고 선택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집까지 갈 때까지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적어도 내가 포장지를 만드는 정도일 땐 그렇게 해야지.






애 많았어요, 애 쓰셨습니다.



그 많은 말들 중 나는 유독 센터장님의 ’애 많으셨어요’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 후로 일하는 내내 애 많았다라는 말을 즐겨 쓰고 있다. ’애‘가 ’사랑 애‘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사랑과 애정을 다한 일에 가장 위로가 되는 끝인사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신입사원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좋아하는 게 있는데, 프로젝트 결과보고 보내고 개인 회신으로 받는 메일이다.

보여주거나 형식이 아니라 서로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서 보내는 것 같다. 1-2줄이어도 충만하다.






내 인정욕구가 정말 능력만 향하는 것일까?


돌아보니 능력보다 노력을 인정받았을 때 진짜로 마음이 차올랐다. 인정을 받는다고 좋은 게 아니라 인정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게 좋은 거였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게 필요했다.

사실 야근이니 뭐니 하는 건 안하면 좋고 하면 나쁘다 이런 문제가 아니었다. 누구랑, 무슨 일로 하면 좋고 이유 없이 하면 나쁘다는 거였다.


나는 좋은 곳을 원해서 좋은 곳을 가려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일하는 시간이 좋아서, 그런 시간을 인생에서 많이 늘려가고 싶어서 열심히 하는 거였다.



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반지

“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반지” 라는 말을 기억한다. 오래 함께 가려고 깎이는 거라면 그걸 참을 가치가 있다. 나는 정말 금덩이면 충분할까? 혼자서도 가치 있으면 충분한 걸까?


아니다.  아니었다.



부록 : 신입사원 때 저장해두고 자주 꺼내본 회고와 메모와 사진들



바탕화면에 늘 주차해둔 나의 parking lot과 혼자 실수 쓰면서 고쳐야지 했던 일지들


​‘연기를 못하는 사람보다 우습게 아는 사람이 더 싫어요’
역량이 부족해도 잘하고 싶다면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것, 용기내는 것부터 시작하기


내 주변에도 남궁민 같은 선배들이 많길 바랐다. 하지만 없다면 내가 그런 선배가 되어주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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