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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연 Jul 13. 2023

바지가 너무 짧은 것 같아

미지근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살은 예년보다 더 따갑고 눈부신 느낌이었다. 이제 겨우 어깨를 넘길 정도로 기른 머리카락을 질끈 묶어 올리고 등교를 했다.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있는 교실에는 고작 선풍기 4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이 지나고 제일 더운 시간이 되어야 에어컨을 틀어줬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더워 죽겠다며, 에어컨을 틀어 달라고 떼를 썼다. 목소리가 큰 아이들의 아우성에 살며시 목소리를 얹어 떼쓰기에 동참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종이 울리자마자 급식실로 냅다 달려갔다. 어차피 번호순으로 먹는 걸 알면서도 다들 목숨이라도 달린 것처럼 뛰었다. 친한 친구들과 둘러앉아 밥을 허겁지겁 먹고서는 에어컨 바로 밑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급식실은 점심시간 내내 에어컨을 틀어놓기 때문에 예비 종이 울릴 때까지 앉아 있곤 했다. 점심을 먹고 활력을 되찾은 남자아이들은 더워 죽겠다면서도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여자아이들은 곳곳에 무리 지어 앉아서 저마다 중요한 이슈를 중심으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날은 언제나 그렇듯이 동방신기 최고론과 슈퍼주니어 대세론을 두고 또다시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을 때였다. 축구를 하겠다며 나갔던 반장이 대뜸 뛰어왔다. 그러곤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부르더라는 말만 남기고 다시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왁자지껄 떠들던 친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해졌다. 다들 무슨 일인지 몰라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교무실에 불려 갈 만큼 잘못한 일은 없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 쿵쾅대는 심장을 안고서 서둘러 교무실로 내려갔다. 무거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자 선생님이 반갑게 웃으시며 나를 부르셨다. 미소를 띤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교무실이라는 공간에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고 긴장이 됐다. 잠깐 앉아 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침을 꼴깍 삼키고 종종걸음으로 앞에 가 앉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아주 다정한 얼굴로 내 손을 잡으시며 말씀하셨다.


"연아, 다른 게 아니라, 지금 입고 있는 바지가 너무 짧은 것 같아. 여름이라 더운 건 알지만 이렇게 민소매랑 짧은 반바지는 위험할 수도 있어서 선생님이 얘기하는 거야. 연이는 다른 친구들보다 성숙한 편이라서 남자애들이 호기심으로 쳐다보거나 만지려고 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앞으로 이렇게 짧은 옷은 입지 말고. 선생님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남자애들이 뭐. 무슨 호기심? 만져? 나를 왜?'


선생님이 하시는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성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던 그 당시에는 선생님의 의도를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민소매와 짧은 바지를 입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부끄러운 마음을 숨기려고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당시 키가 160cm 정도였는데, 교실에서 가장 뒷줄에 앉을 정도로 남녀를 통틀어 큰 편에 속했다. 익숙하지 않은 브래지어를 매일 차고 다녔고 갓 초경을 시작했었다. 아직 여자아이들의 대부분이 스포츠 브라를 입고 월경을 하지 않을 때였다. 오래된 일이라 선생님의 말씀이 명확하게 다 기억나지는 않았다. 다만, 다른 아이들보다 성숙한 몸을 가진 나를 남자아이들이 만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만은 선명하게 기억이 남았다.     


그러니까 입지 마.

그러니까 하지 마.

그러니까 그때는 내 잘못인 줄 알았다.     


이 일이 있고 난 후에 엄마가 옷을 사주실 때면 다른 곳에 가자고 졸랐다. 또 선생님께 불려 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옷에 욕심이 없던 애가 어린애 같은 옷 말고 다른 옷을 입고 싶다고 하니, 엄마는 그저 사춘기가 왔다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6학년이 되자 몸은 더 성장했고 내 몸이 점점 더 부담스러워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성숙해지는 몸이 보기 싫었고, 더 이상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버스에서 덩치가 큰 남자를 마주칠 때면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후로는 몸을 최대한 가리고 다녔다. 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게 되자 가리는 건 더 쉬워졌다. 여중, 여고를 다니면서도 여름에는 카디건을 걸치고 겨울에는 니트 조끼를 껴입었다. 사복은 주로 큰 사이즈의 후드티와 맨투맨을 입었다. 그렇게 엄마에게는 말하지 못한 채 청소년이 되었고 어른이 되었다.     


결국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남자아이들이 나를 만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이 한 말은 뇌리에 깊이 박혀 어른이 될 때까지 못살게 굴었다.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내내 불안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이후 본 세상에서는 그보다 더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는 짧은 바지를 입어서 선생님에게 죄송했고, 조신하지 못한 아이가 된 것만 같아 부끄러웠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성인이 된 지금은 안다. 앞으로도 내 잘못일 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어떻게 입을지는 개개인의 자유고 심지어 입을지 벗을지도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몸을 가리고 다녔다. 벗는 것보다는 입기를 선택했고 드러내기보다는 감추기를 선택했다. 내 잘못은 아닐지언정 누군가는 나를 먹잇감으로 삼을 수도 있음을 알기에,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위험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했다. 짧은 바지를 입어서가 아니라, 짧은 바지를 입은 여자여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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